우리은행의 올해 탁상달력에 등장하는 초등학생의 통일 염원 미술 작품에 대해 자유한국당 측이 “대한민국 안보불감증의 자화상” “민주노총 달력인 줄 알았다” 등의 비난을 쏟아냈다. 해당 작품에 북한 인공기가 등장하고 태극기가 인공기보다 아래에 있어 북한과 대한민국이 동등한 나라인 것처럼 묘사돼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지난해 우리은행이 주최한 제22회 ‘우리미술대회’에서 주요 미대 교수들로 이뤄진 심사위원단이 평가한 유치·초등부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우리미술대회는 매년 문화체육관광부 후원으로 열리는 큰 규모의 행사로 매년 우리나라 예술계를 이끌어갈 인재를 배출하고 있다.

우리미술대회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신하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부학장은 2일 미디어오늘에 “아이들의 순수한 시각과 자유로운 표현 능력으로 그려진 그림”이라며 “이 작품을 심사하면서 행복한 미소를 보였던 심사평이 전부”라는 뜻을 전해왔다.

▲ 지난해 우리은행이 주최한 제22회 ‘우리미술대회’에서 유치·초등부 대상을 받은 작품. 그림=우리미술대회 수상작갤러리
▲ 지난해 우리은행이 주최한 제22회 ‘우리미술대회’에서 유치·초등부 대상을 받은 작품. 그림=우리미술대회 수상작갤러리
신 위원장은 지난해 5월 최종 심사평에서도 “유치·초등부의 대상 작품은 평화를 의미하는 ‘쑥쑥, 통일나무가 자란다’를 표현했다. 나무에는 작은 가지와 잎을 자연스럽게 배치하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행복한 미소가 느껴진다”고 밝혔다.

신 위원장은 이어 “아마도 다가올 미래에 이 평화로운 통일나무가 스스로 움트고 자라서 행복한 미래의 통일을 바라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는 긍정적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면서 “나무와 의미 있는 내용, 주제들이 자연스럽게 동화된 표현에서 행복한 느낌으로 그림을 봤다”고 술회했다.

하지만 해당 작품에 대한 논란은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달 28일 페이스북에 이 작품이 삽입된 우리은행 올해 탁상달력을 문제 삼으면서 촉발됐다.

김 의원은 “우리은행 2018년 탁상달력 그림이다. 나는 민노총 달력인 줄 알았다. 우리은행, 왜 이러나?”라며 “태극기가 인공기보다 아래에 있다. 대한민국과 북한이 같은 뿌리를 가진 동등한 나라냐”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홍준표 한국당 대표도 지난 1일 신년인사회에서 “지금 인공기가 은행 달력에도 등장하는 그런 세상이 됐다”고 논란에 불을 지폈다. 장제원 수석대변인도 “2018년 대한민국에서 친북 단체도 아니고 우리은행이라는 공적 금융기관의 달력에 인공기 그림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대한민국 안보불감증의 자화상을 보는 듯하다”고 논평했다.

반면 이 작품을 접한 누리꾼들 사이에선 ‘한국당이 초등학생의 순수한 통일 염원 미술 작품마저도 정치적 색깔론에 이용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미래 통일을 바라는 아이들의 순수한 시각과 자유로운 표현 능력’을 높이 평가한 심사위원단과 달리 북한 인공기를 그렸다는 것만으로 한국당이 우리은행 측을 ‘친북 단체’로 매도했기 때문이다.

▲ 지난해 5월2일 대선을 앞두고 자유한국당 경남도당은 공식 페이스북에 “선거독려 합시다”라며 인공기가 그려진 사진을 게재했다.
지난해 5월2일 대선을 앞두고 자유한국당 경남도당은 공식 페이스북에 “선거독려 합시다”라며 인공기가 그려진 사진을 게재했다.
게다가 지난 정권에서 열린 각종 통일 포스터 대회에서도 인공기가 자주 등장한다는 누리꾼들의 제보도 이어졌다. 특히 한국당의 경우 경남도당에서 지난해 5월2일 대선을 앞두고 공식 페이스북에 “선거독려 합시다”라며 인공기가 그려진 사진을 게재해 경남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고발당하기도 했다.

사진에는 5월4일·5일 사전선거투표 하는 방법과 9일 선거투표 하는 방법이라며 투표용지를 본뜬 표가 그려져 있고, 표 2번에는 태극기와 함께 홍준표 후보의 이름을, 1번(문재인)과 3번(안철수)엔 후보 이름 표기는 안했지만 인공기를 넣어 놨다. 창원지검 공안부는 지난해 8월 고발된 한국당 경남도당 관계자들을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남정수 민주노총 대변인은 김종석 의원이 ‘민노총 달력’이라고 언급한 점에 대해 2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태극기와 인공기가 같이 그려진 동심의 통일에 대한 순수한 표현조차도 종북 딱지를 붙이려 하고 민주노총과 전교조를 세우고 싶어 하는 한국당의 욕망 표출로 보인다”며 “지방선거를 앞두고 문재인 정부와 힘 대결에서 안보 프레임과 색깔 논쟁으로 계속 끌고 가려는 의도적 구도”라고 지적했다.

한편 김 의원은 이날 미디어오늘에 보낸 문자에서 “나는 초등학생이 그 그림을 그렸다는 것보다는, 수십 개의 당선작 중에 그런 그림을 선정한 우리은행의 결정을 문제 삼은 것”이라며 “그 그림은 대한민국과 북한을 같은 뿌리를 가진 대등한 국가로 표현하고 있다”고 재차 주장했다.

김 의원은 “헌법에 남북통일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을 추구하게 돼 있다”면서 “이 그림은 남북한의 일대일 통합을 상징하기 때문에 공공기관이 홍보물에 게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봤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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