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여자들이 좋아하는 여행지’

이번 싱가포르 출장을 앞둔 내게 지인들이 해준 말이다. 정말 그랬다. 싱가포르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단박에 알아차릴 정도였다. 셀카를 마구 찍고 싶을 정도로 건물 하나하나가 개성 넘쳤다. 야경에 빛나는 건물을 바라보며 감탄사와 함께 셔터를 연신 눌렀다. 같이 간 사진기자의 기술력이 더해져 난 인생작품 여러 장을 남길 수 있었다.

본래 계획했던 현장취재를 마치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싱가포르를 둘러보기로 결정했다.

체력 좋은 두 여자가 선택한 것은 이틀 내내 도심을 걷는 일이었다. 우리는 숙소가 있던 시청 근처부터 배 모양의 거대한 호텔로 유명한 ‘마리나 베이’, 강을 배경삼아 맥주 한잔 마시는 운치가 있는 ‘클락 키(Clarke Quay)’, 싱가포르의 명동 ‘오차드’, 해변이 아름다운 ‘센토사’, 그리고 싱가포르 속 외국정취가 느껴지는 ‘차이나타운’과 ‘리틀인디아’, ‘부기스’까지 장장 20시간을 걷고 또 걸었다.

처음 우리는 여고생 같았다. 특이한 건물이 눈앞에 튀어나올 때마다 “저 건물 너무 멋지지 않아요? 이 앞에서 사진 한 장만…”과 같은 대화를 나눌 뿐이었다. 하지만 이내 감탄은 경이로움으로 번졌다.

이틀 내내 그 많은 빌딩사이를 샅샅이 돌았지만 단 한 번도 똑같은 모양을 한 건물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다. 아니 똑같기는커녕 닮았다고 생각한 건물조차 없었으니까.

느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랬다. 싱가포르에는 동일한 디자인의 건물이 없다. 이곳 현장 건설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다른 건물과 디자인이 같으면 설계 허가가 잘 나지 않는다. 그는 “각각의 개성과 아름다움을 갖춘 싱가포르의 건축물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기존 디자인과 차별화할 수 있을까, 설계가와 건축가의 깊은 고민의 산물”이라고 전했다.

▲ 싱가포르 거리 풍경. 사진=이승주 기자 제공
▲ 싱가포르 거리 풍경. 사진=이승주 기자 제공
▲ 싱가포르 야경. 사진=이승주 기자 제공
▲ 싱가포르 야경. 사진=이승주 기자 제공

“직접 보실 것 뭐 있어요. ○○브랜드 평면, 아시잖아요.”

지난 3년여 한국에서 부동산시장을 취재하던 중 중개업자에게 곧잘 듣던 말이다. 한 번은 강남 재건축 투자심리를 취재하려고 마치 이곳 아파트를 사려온 양 연기하며 취재한적 있다. 집을 직접 살펴보겠다는 내게 강남에서 중개 꽤나 했다는 한 업자는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아파트 브랜드만 알면 구조가 어떻게 생겼는지 뻔한데 뭣 하러 수고스럽게 직접 확인까지 하냐는 것. “동·호수랑 가격만 체크하면 된다”며 “계약 전 하자여부 확인 차 한 번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일축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자이니 힐스테이트니 래미안이니… 한국에서는 아파트 브랜드만 말하면 내·외관을 금세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을 정도다. 서로 우리는 다른 디자인으로 브랜드를 차별화했다고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좀 더 얇은가 혹은 길쭉한가, 어떤 색을 칠했는가의 차이일 뿐 거기서 거기인 성냥갑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들 사이에서 그나마 다채로움을 형성했던 단독주택이나 연립·다세대 등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3년 부동산 규제 완화를 틈타 분양시장이 호황기를 맞았다. 전국 곳곳에는 공급과잉이 우려될 정도로 신규 아파트가 대량 분양했다. 특히 서울에서는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이 탄력을 받으면서 낡은 주택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대규모 아파트를 짓기 시작했다. 골목정취와 지역색을 간직한 집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이내 성냥갑 아파트 수천가구가 빼곡하게 채워질 것이다. 지난 3년간 분양했던 아파트가 올해부터 공사를 마치고 본격 입주민을 맞는다. 올해 입주물량은 44만여 가구로 역대 최다수준이다.

▲ 이승주 뉴시스 기자
▲ 이승주 뉴시스 기자

대규모 아파트가 이내 도심 곳곳을 가득 메울 것이다. ‘성냥갑 공화국’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귀국 후 출장 사진을 하나씩 넘겨본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과연 한국에 여행 간다는 친구에게, 외국인들은 뭐라고 말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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