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취재를 못하게 막고 그래!” 6월 항쟁을 다룬 영화 ‘1987’에는 동아일보 기자들의 모습이 비중 있게 다뤄진다. 고 윤상삼 기자를 모티브로 한 윤 기자는 권력에 맞서는 취재를 하고, 동아일보 편집국 구성원들은 그에 호응해 “사람이 고문 받다 죽었는데 보도지침이 무슨 소용이냐”며 보도지침을 깬다.

동아일보는 이런 과거가 자랑스러운 듯 영화를 조명하면서 자사의 업적을 연일 강조하고 나섰다. 

지난 14일 동아일보는 2면 톱기사 “‘물고문’ 진실 파헤친 東亞의 기자정신, 역사를 바꾸다”를 통해 “집요하고도 용기 있게 진실을 캐냈던 동아일보 기자들의 노력이 영화 속에서 조명됐다”면서 “장기 탐사 보도를 통해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바꾼 동아일보 기자들의 노력”을 강조했다. 지난 29일 동아일보는 “민주화의 분수령이 된 특종은 6월 민주항쟁을 거쳐 대통령 직선제로 이어졌다”고 보도했다.

▲ 지난 14일 동아일보 2면 톱기사.
▲ 지난 14일 동아일보 2면 톱기사.

지난 14일 채널A ‘뉴스A’ 역시 “진실을 은폐하려는 정권에 맞서 박종철의 죽음이 물고문에 의한 것임을 밝혀낸 당시 동아일보의 연이은 특종이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다뤄진다”고 영화를 소개하면서 황호택 고문을 인터뷰한다. 24일 신동아는 “동아일보 전·현직 기자들의 활약으로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면서 “영화에서 중앙일보 기자나 편집국은 두어 차례만 등장한다. 반면 동아일보 기자들의 활약상을 응집한 윤상삼 기자는 주요 등장인물로 맹활약을 펼친다”고 강조했다.

실제 당시 동아일보는 박종철의 사망 원인이 ‘고문’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고문 문제를 집중 보도하면서 6월 항쟁의 도화선 역할을 했다. 그러나 2017년의 동아일보가 30년 전 동아일보를 언급하며 ‘동아의 기자정신’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을 자격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때 동아일보는 지금의 동아일보와는 다르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이여” 칼럼을 통해 반향을 이끌어낸 김중배 당시 논설위원은 1991년 편집국장 시절 사주의 ‘신 보도지침’에 맞서다 경질됐다. 자본논리에 포획된 신문의 현실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전두환 정부 때 국회의원을 지내고 노태우 정부 때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김학준은 동아일보 사장과 회장을 역임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이부영 전 의원을 비롯해 독재정권에 맞선 동아일보 해직기자들은 아직도 복직되지 못했다.

오늘날 보도 역시 당시와는 거리가 멀다. 동아일보는 2008년 촛불집회, 2009년 용산참사, 2014년 세월호 참사 등 권력에 맞선 이들을 공격하는 보도를 쏟아냈다. 한때 ‘좌익용공’으로 몰린 대학생의 억울함을 씻었던 동아일보는 박근혜 정부 때는 멀쩡한 사람을 간첩으로 조작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역사를 바꾼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조선일보와 JTBC, 한겨레 등 언론이 ‘보도 경쟁’을 하는 가운데 동아일보는 이렇다 할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 영화 1987 속 윤 기자(이희준).
▲ 영화 1987 속 윤 기자(이희준).

2008년 촛불집회 당시 동아일보의 한 논설위원은 노보를 통해 이렇게 지적했다. “주변 독자들은 ‘동아일보가 정신 차려야 한다’는 소리를 만날 때마다 합니다. (중략) 권력에 대한 감시를 충실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애국하는 길이고 동아일보를 살리는 길입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빨리 동아일보의 정신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이 같은 반성조차도 듣기 힘들다. 

지금 동아일보에 필요한 건 과거의 영광을 홍보하는 게 아니라, 왜 과거의 영광을 지금 찾아볼 수 없는지를 돌아보는 일이 아닐까. ‘1987’을 소개한 신동아는 마지막 대목에서 “‘1987’은 현재의 동아일보 기자들에게도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게 해주는 거울 역할을 수행한다”고 썼다. 동아일보 기자들은 ‘1987’이라는 거울을 통해 무엇을 보고 있을지 궁금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