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공여, 횡령 등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심에서 횡령으로 인정된 80억 원을 변제한 사실이 알려져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2심 최후 진술에서 감정을 자극하는 발언을 다수 내놓은 것을 종합해 볼 때 재판부를 향한 감형 호소로 비춰지는 대목이다.

법조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항소심 공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1심 재판부가 유죄로 인정한 횡령금액 80억 9095만 원을 피해 기업인 주식회사 삼성전자에 개인 자금으로 변제했다.

횡령금액은 삼성전자가 2015년 9월부터 2016년 7월까지 최순실씨의 차명회사 ‘코어스포츠’에 지급한 64억 6295만원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지급한 16억 2800만원을 합친 것이다. 모두 이 부회장이 최씨 측에 공여한 뇌물로 인정된 금액이다.

▲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27일 항소심 결심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 들어서고 있다.ⓒ민중의소리
▲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27일 항소심 결심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 들어서고 있다.ⓒ민중의소리

이 부회장은 오는 2월에 있을 항소심 선고에서 감형 가능성을 기대해 변제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특검이 특정한 433억 원 뇌물 공여 혐의를 전면 부인하면서 뇌물 혐의에서 순차적으로 적용된 횡령 혐의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횡령 무죄’를 주장하면서 1심에서 유죄로 선고된 횡령금액은 우선 변제한 셈이다.

1심 때와 다소 상이해진 이 부회장의 항소심 최후 변론에서도 재판부를 향한 감형 참작 호소가 읽힌다.

이 부회장은 지난 27일 항소심 최후 변론 자리에서 ‘내 인생의 꿈은 참 된 기업인이 되는 것’이라는 취지의 문장을 대여섯 차례 읊었다. 1심 최후 변론에서는 특별히 강조되지 않았던 내용이다.

그는 “내가 가지고 있었던 인생의 꿈을, 인생의 목표를, 기업인으로서의 꿈을 말씀드리고 싶다” “내 꿈은 내가 받은 혜택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우리 사회와 나눌 수 있는 참된 기업인으로 인정받는 것 뿐이다” “경영혁신과 신사업발굴 통해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우리 사회는 물론이고 임직원들로부터도 진정한 리더로 인정받고 싶다” 등의 발언을 했다.

“저 이재용은 우리 사회에서 제일 빚이 많은 사람이라 생각한다”는 겸양의 표현도 등장했다. 이같은 취지의 발언은 1심 최후 변론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다.

이 부회장은 최후 진술을 시작하며 “좋은 부모를 만나고 좋은 환경에서 익숙하게 자라 최상의 교육을 받고, 삼성이라는 글로벌 일류 기업에서 능력있고 헌신적인 선후배들과 같이 일할 수 있는 행운까지 누렸다”며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에 보답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살아왔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또한 “모든 법적 책임과 도덕적 비난을 받겠다”며 1심 때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책임감을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1심 때 “너무 부족한 점이 많았다. 챙겨야 할 것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고 이게 모두 내 탓이었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항소심에서 “재판장님 한 가지 청이 있다. 같이 재판받는 다른 피고인에 대한 선처 부탁”이라면서 “여기 계신 분들은 회사 일을 열심히 하다가 이 자리 서게 된 것이다. 준엄한 재판을 받는 내가 감히 해도 되는 부탁인지 모르지만, 최지성 실장님과 장충기 사장님에게 최대한 선처해주시도록 부탁드린다”며 감정적인 측면에 호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삼성그룹의 ‘평창 동계올림픽 후원’ 사실도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새롭게 강조됐다. 뇌물공여 혐의로 기재된 K스포츠재단 출연금 및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을 의식한 대목으로 보인다.

삼성 변호인단은 최후 구두변론에서 “삼성그룹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해 1000억 원 이상을 후원했다”면서 “그 밖에도 피고인들과 삼성은 그동안 우리나라 스포츠 발전과 이를 통한 국위선양을 위해 정말 많은 노력과 후원을 해왔다”고 말했다.

변호인단은 “피고인들은 대통령 요청에 따라 스포츠, 문화 분야 후원을 한 것이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 줄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며 “이제 평창 동계올림픽이 한 달 반도 채 남지 않았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최일선에서 활동하고 있어야 할 피고인들의 지금 처지가 너무도 안타깝다”고 강조했다.

공범으로 기소된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도 최후 진술에서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며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 실무팀을 맡아 수 년 간 두 번의 유치 실패를 겪었다”며 “혼신의 힘 끝에 독일, 프랑스를 많은 격차로 물리치면서 유치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그는 “어렵게 유치한 평창 동계 올림픽 개막식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막상 그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직장까지 잃고 이 자리에 선 것이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며 “도저히 믿기지 않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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