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등을 특별사면 대상자에 포함시키지 않으면서 시민사회와 노동계의 반발이 예상된다. 내년 지방선거와 개헌 문제를 앞두고 지지층 결집이 절실한 상황에서 특별사면 문제가 균열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29일 “2017. 12. 30 자로 강력범죄 부패범죄를 배제한 일반 형사범, 불우 수형자, 일부 공안사범 등 6444명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특별사면은 “형사처벌이나 행정제재로 어려움을 겪고 이는 일반 서민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정상적인 사회생활로 조기에 복귀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하는데” 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당초 법무부에서 사면 대상자로 검토했던 밀양 송전탑 시위,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시위 등에 참여해 사법처리를 받았던 자도 사면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다만 용산참사 당시 사법처리를 받았던 철거민들에 대해 “사회적 갈등 치유 및 국민 통합 차원에서 수사 및 재판이 종결된 공안사건 중 대표적 사건”이라며 “각종 법률상 자격 제한을 해소시키는 사면 복권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정치인으로는 유일하게 정봉주 전 의원이 사면 대상에 포함됐다. “장기간 공민권 제한을 받아온 점 등을 고려해 복권”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번 사면을 통해 다가오는 한해에 국민 통합과 민생 안정을 위한 계기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했지만, 이번 특별사면이 국민통합에 부합하느냐 문제를 놓고 공방이 예상된다.

‘촛불 정권’인 문재인 정부의 정체성도 화두에 오를 수 있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은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 무죄 선고를 받았고 내란 선동 혐의만 인정돼 9년형을 선고 받았다. 보수 정권 하에서 정국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한 희생된 공안탄압 피해자라는 시각이 있다.

한상균 위원장은 평화적 집회를 박근혜 정부 공권력이 폭력 집회로 물들이면서 정권 탄압의 대표적인 희생자로 남아있다. 백남기 농민이 사망한 사건에 대해 공권력의 사과 입장이 나온 것만 봐도 한 위원장 구속은 단순한 사법처리라고 볼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 국정 지지도가 70%를 상회하고 있지만 야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이 대립각을 세우면서 국회가 사실상 스톱된 상태다. 어떤 식으로든 야당과의 협치가 불가피한 상황. 일각에서 이번 특별사면에 이석기 전 의원과 한상균 위원장 등을 포함시켰을 때 ‘좌파정권이 종북 세력을 풀어줬다’는 공세가 거세지면서 정국이 경색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온 이유다.

문재인 정부가 시민사회와 노동계는 대화가 가능한 집단으로 보고 설득할 자신이 있지만 야당은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이번 특별사면에서 완급조절을 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지난 21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상생연대실천 노사와의 만남’ 행사에서 “딱 1년만 정부를 믿고 힘을 실어달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도 이번 특별사면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다만,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작업 속도로 보면 집권 초 1년이 개혁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 수 타이밍인데 이번 특별사면이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야당의 공세를 예상하고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한 고육책이라고 하지만 집권 초 문재인 정부 지지가 높을 때 색깔을 분명히 해야한다는 주장이 거세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지난 26일 국무위원들과 만찬 자리에서 “지난 7개월 반 정도 기간 동안 우리가 해온 일은 말하자면 촛불민심을 받들어서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 또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일은 1년, 2년 이렇게 금방 끝날 수 있는 일은 아니다”라고 했지만 이번 특별사면으로 적폐청산 의지를 의심받을 수 있다. 적폐의 탄압으로 법적처벌을 받은 양심수를 피해구제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인 사면을 외면해놓고 적폐청산 작업이 탄력을 받을 수 있겠느냐라는 물음이다.

이번 특별사면에 대한 반발이 내년 지방선거에 끼치는 영향도 고심해야 한다. 정의당이나 진보 세력의 정당 부상 등 새로운 정치적 개편이 일어날 수 있다. 집권 2년차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 도전자가 많아질 수 있다는 얘기인데 이번 특별사면이 시작점이 될 수 있다.

물론 내년 지방선거 이후 8. 15 특별사면을 통해 진보 세력과 화해를 시도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두고 야당의 공세가 주춤할 때 8. 15에 맞춰 한상균 위원장 등을 사면하는 방안이다. 지방선거 압승이라는 전제가 깔려있긴 하지만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변수는 개헌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방선거와 개헌 투표를 동시에 치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개헌 작업은 지지부진하다. 개혁특위에서 개헌의 큰 방향조차 나오지 않았다. 권력구조 문제에 대한 이견이 여전하고 더욱이 선거구 개편 문제는 꺼내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지방분권을 실현하고 국민 기본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원포인트 개헌을 할 수 있지만 쉽지 않다.

지방선거를 압승하더라도 개헌 투표를 진행하지 못하면 문재인 정부의 정체성은 퇴색될 수 있다. 이번 특별사면도 야당의 협치를 구해 개헌 작업을 서둘러야 하는 상황에서 야당의 심기를 건들지 않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8. 15 사면 국면에서도 개헌 작업이 지지부진하면 야권의 눈치를 볼 수 있다.

최영일 시사평론가는 “촛불 정권이라고 스스로 자평하고 자임했는데 이번 특별사면을 보면서 실망감은 분명히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문재인 정부는 연초 야당의 공세를 방어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이해된다. 시민사회와 노동계도 문재인 정부를 믿고 유보해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최 평론가는 “하지만 내년 중반기 8. 15 사면이 라스트 타임이 될 것”이라면서 “진보 개혁성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단호한 적폐 척결 의지를 명징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정치는 공포라는 요소가 있다. 정의로운 정부는 나쁜세력, 기득권 세력을 쳐낼 수 있다는 공포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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