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범행을 반성하지 않는다”며 구형했던 징역 12년을 2심에서도 동일하게 적용한 가운데, 이 부회장은 “선대 못지 않은 훌륭한 업적을 남긴 기업인 이재용이 되고 싶었다”며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했다.

특검은 27일 오후 서울고법 형사13부(정형식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삼성 뇌물 사건’ 결심 공판에서 이 부회장을 비롯한 최지성 전 실장,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 등 모든 피고인에게 1심 때와 같은 징역형을 구형했다. 이 부회장에겐 징역 12년, 황 전 전무에겐 징역 7년, 나머지 피고인들에겐 징역 10년의 중형이 구형됐다.

▲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27일 오후 점심을 먹고 항소심 결심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 들어서고 있다.ⓒ민중의소리
▲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27일 오후 점심을 먹고 항소심 결심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 들어서고 있다.ⓒ민중의소리

특검이 구형한 추징금은 78억9430만원이다. 이 부회장을 비롯한 피고인 5인에겐 △뇌물공여죄 △특경가법상(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횡령 △특경가법상 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등이 적용됐다. 이 부회장은 국회에서의증언·감정등에관한법률 위반(허위증언) 혐의도 사고 있다.

공판 말미 최후 변론 기회를 받은 이 부회장은 “재판장님, 외람되지만 내가 갖고 있었던 인생의 꿈을, 목표를, 기업인으로서의 꿈을 말씀드리고 싶다”면서 “능력을 인정받아 이병철·이건희 회장 같이 성공한 기업인으로 이름 남기고 싶었지 재산 욕심, 지분 욕심, 자리 욕심 같은 건 추호도 없었다”고 결백을 주장했다.

“대한민국에서 저 이재용은 우리 사회의 제일 빚이 많은 사람이라 생각한다”며 말문을 연 이 부회장은 “좋은 부모를 만나 좋은 환경에서 익숙하게 자랐고 최상의 교육을 받았다”며 “삼성이라는 글로벌 일류 기업에서 능력있고 헌신적인 선후배들과 같이 일할 수 있는 행운까지 누렸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내 꿈은 삼성을 이어 받아 열심히 경영해 제가 받은 혜택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우리 사회와 나눌 수 있는 참된 기업인으로 인정받고 싶은 것 뿐”이라면서 “대통령이 도와준다고 성공한 기업인이라는 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을 했겠느냐. 이것만은 정말 억울하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은 또한 “경영혁신과 신사업발굴을 통해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사회는 물론이고 임직원들로부터도 진정한 리더로 인정받고 싶었다”면서 “이런 내가 왜 뇌물을 줘가며 경영권 승계를 청탁하겠느냐.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모든 법적 책임과 도덕적 비난은 내가 받겠다”며 1심에서의 입장과 다소 온도차를 보였다. 1심 당시 이같은 변론을 편 피고인은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이었다. 그는 1심 최후변론에서 “삼성에 책임을 물으신다면, 판단력이 흐려진 나에게 물어주고 다른 피고인은 오로지 내 판단을 믿고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변론을 마치기 전 “여기 계신 분들(피고인들)은 회사 일을 열심히 하시다가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이라면서 “최지성 실장님과 장충기 사장님에게 최대한 선처해주도록 부탁드린다. 가능하다면 두 분을 제발 풀어주고 그 벌을 저에게 다 달라”고 밝혔다.

특검 “정치·경제권력 특권, 더 이상 이 나라에 통용 안돼”

특검팀은 구형량에 대해 “이 사건 재판이 건강한 시장경제의 발전과 민주주의를 위한 발걸음이 될 것을 기대한다”며 “뇌물 액수, 대가로 취득한 이익, 그룹 계열사의 피해 규모, 횡령액 중 상당 금액이 아직 변제되지 않은 점, 재산국외도피 액수, 범행을 부인하고 반성하지 않는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날 공판에 모습을 드러낸 박영수 특별검사는 “총수 부재로 인한 삼성 위기론, 특검 수사에 근거없는 비판으로 재판에 영향을 끼치려 한 여러가지 시도도 있었다”며 “특검은 시장 경제와 민주주의 근간을 바로 잡고, 대한민국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신념과 사명감으로 이 사건 수사와 재판에 임했다”고 말했다.

삼성 피고인 측이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204억 원, 승마지원금 79억 원,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 16억 원 등을 공익적 후원금이라고 주장하는 데 대해 박 특검은 “대기업이 기업의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양과 질은 그 나라 자본주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척도”라며 “최서원을 위해 고가의 말을 사주고 거액 자금을 공유한 행위, 사익 추구를 위해 만든 법인에 거액을 불법 지원한 행위를 사회공헌활동이라고 하는 건 진정한 사회공헌활동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판했다.

박 특검은 이어 “삼성그룹이 앞날을 걱정한다고 하지만 정작 걱정하는 것은 삼성그룹이 아니라 이재용 개인의 그룹 지배력 손실과 경제력 손실”이라면서 “대통령과 부정한 거래를 통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성사시킴으로써 얻게 된 이재용 피고인의 그룹 지배력과 경제적 이익은 다름 아닌 뇌물의 대가”라고 밝혔다.

박 특검은 또한 “피고인들이 전적으로 삼성그룹, 주주들, 국가와 국민을 생각한다면 먼저 이 사건 범행을 깊이 반성하고 사과해야 할 것”이라면서 “정치권력과 함께 대한민국을 지배해왔던 재벌들의 특권이 더 이상 이 나라에 통용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성공적 평창동계올림픽 개최” 언급된 뇌물 사건 법정

삼성 측 변호인단은 전 피고인들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1심 판결문을 혹독하게 비판하며 변론을 시작했다.

변호인단은 “유감스럽게도 1심 재판부조차 이 사건을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라 결론지었지만 정작 판결문엔 결론만 있을 뿐 합당한 근거가 없다”며 “결국 1심 판결문도 앞 뒤 논리가 맞지 않는 희한한 글이 되고 말았다”고 밝혔다.

▲ 박근혜 전 대통령이 7일 오전 경기도 평택 고덕 국제화계획지구 내 부지에서 열린 삼성전자 반도체 평택공장 기공식에 참석, 기공 발파식을 마친 뒤 이재용 부회장과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박근혜 전 대통령이 7일 오전 경기도 평택 고덕 국제화계획지구 내 부지에서 열린 삼성전자 반도체 평택공장 기공식에 참석, 기공 발파식을 마친 뒤 이재용 부회장과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변호인단은 “모든 언론들의 이 사건 재판 보도의 요지는 한결같이 ‘오늘도 스모킹 건(smoking gun)은 없었다’는 것이었다”며 “심지어 삼성에 비우호적 성향의 언론조차도 마찬가지였다”고 강조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최일선에서 활동하고 있어야 할 피고인들의 지금 처지가 너무도 안타깝다”는 지적도 나왔다.

변호인단은 “피고인 이재용의 부친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IOC 위원을 역임하며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기나긴 시간 동안 혼신의 노력을 다해, 마침내 그 성과를 거뒀다”면서 “삼성그룹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해 천억 원 이상을 후원했고 대한빙상연맹 회장사로서 동계올림픽 열기 조성과 선수 후원 등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변호인단은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에 대해 “피고인들은 대통령 요청에 따라 스포츠·문화 분야 후원을 한 것이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 줄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변호인단은 끝으로 “재판장님과 두 분 판사님께서 이 사건 판결문을 통해 확정하는 사실관계는 곧바로 대한민국 현대사로 영원히 기록될 것”이라며 “부디 항소심 판결을 통해 대한민국 헌법과 형법, 그리고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인 증거재판주의와 무죄추정원칙이 살아 있음을 확인시켜 주길 바란다”고 발언했다.

‘삼성 뇌물 사건’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은 오는 2월5일 오후 2시에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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