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근을 통해 선거때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허남식 전 부산시장이 항소심 재판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이 판결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판부가 허 전 시장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측근이 불법수수한 돈을 부산지역 언론인들에게 썼을 것으로 봤다는 점이 눈에 띈다. 허 전 시장 측근이 시종일관 후배 언론인에게 골프접대와 금품을 전달했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금품을 받은 것으로 지목된 언론인들은 법정에서 이를 부인했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특히 1심 재판부는 허 전 시장의 선거홍보를 위해 썼다고 봤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그의 후배 언론인 관리에 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부산고법 형사1부(재판장 김주호 부장판사)는 지난 21일 허 전 시장에 대한 항소심 공판에서 허 전 시장에게 징역 3년, 벌금 30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허 전 시장의 공소사실은 이른바 그의 ‘측근’인 이 아무개씨가 2010년 5월 이영복 엘시티 회장으로부터 사업 청탁을 위해 전달해 달라는 의미로 현금 3000만 원을 받은 후 이를 보고받았으며, 이 돈으로 언론인 접대 등 선거홍보비용으로 사용할 것을 승낙받았다는 것이다. 1심 법원은 이 같은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이씨는 국제신문, 부산일보, 부산매일신문 기자를 지낸 뒤 2004년 8월~2006년 12월 부산 센텀시티㈜ 대표이사, 2008년 4월~2014년 6월 북항아이브리지㈜ 상근감사를 각각 역임했으며, 허남식 전 시장과는 마산고 동창이다.

이 같은 1심 판단과 달리 항소심인 부산고법의 재판부는 이씨가 허 전 시장에게 ‘3000만 원 수수 사실’을 보고했다는 이씨 본인의 진술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이유로 재판부는 이씨가 △허 전 시장에게 ‘이영복 엘시티 회장으로부터 3000만 원을 수수한 사실’을 보고한 건 분명히 기억한다면서도 구체적으로 언제 어디에서 어떠한 방법으로 보고하였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으며 △3000만 원이 불법선거자금이고 불법선거운동에 해당함을 모를 리 없는데도 기억 못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특히 보고 시점과 관련 “2010년  5월 경은 맞는 것 같고, 어린이날을 지나고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는 이씨 진술에 대해 재판부는 허 전 시장이 본격 선거운동을 시작한 2010년 5월7일 이후에는 피고인(허남식)과 직접 만나거나 또는 피고인에게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시간 및 장소가 매우 제한적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실형을 받은 허남식 전 부산시장이 지난 21일 열린 2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지인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실형을 받은 허남식 전 부산시장이 지난 21일 열린 2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지인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주목되는 것은 재판부가 이영복 회장에게 받은 돈 3000만 원을 실제로 언론인들에게 썼는지에 대해 해당 법정에서 검증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언론인에 썼다해도 선거운동 차원이 아니라 이씨의 후배기자 관리용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씨는 법정에서 이 돈으로 허 전 시장을 위한 선거운동자금으로 사용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이씨는 평일에는 부산지역 언론인들에게 술과 식사를 대접하고, 주말에는 부산지역 언론인들과 골프모임을 가졌으며, 일부 언론인들에게는 현금 100만 원이 든 돈봉투를 주기도 하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검찰 조사를 받을 때엔 “부산일보, 국제신문, 부산MBC, KBS부산, KNN, CBS부산,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국민일보, 세계일보, 서울신문 등의 편집국장, 보도국장, 정치부장, 사회부장 및 정치부 기자들을 상대로 식사와 골프대접을 했고, 정치팀장이나 정치부 기자들에게는 100만 원이 든 돈봉투도 전달했다고 진술했다”고 재판부는 판결문에 썼다. 그 중 기억나는 사람으로 “X(부산일보 기자, 식사와 골프 및 돈봉투 제공), Y(국제신문 기자, 식사와 골프 및 돈봉투 제공), W(KNN CP, 식사와 골프 및 돈봉투 제공), Z(부산MBC CP, 식사 제공), L(전 부산MBC 사장, 식사와 골프 제공), M(전 국제신문 사장, 식사와 골프 제공), N(전 KNN 사장, 식사와 골프 제공) 등”이라고 진술했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씨의 진술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허 전 시장 당선을 위해 이씨가 이렇게 언론인에 술과 식사 및 골프접대, 현금 100만 원 돈봉투를 건네 주는 행위는 중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당선무효사유에 해당될 수 있는 것이라며 “그와 같은 사정은 피고인 스스로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재판부는 “별다른 거리낌도 없이 오로지 허 전 시장 당선을 위해 자발적으로 그런 불법선거운동을 했다는 건 일반인의 건전한 상식이나 경험칙에 현저히 반하는 것”이라고 봤다.

이와 관련해 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전현직 언론인 L, M, N, W, X, Y는 △이씨와는 학교 선후배지간, 같은 언론사 근무, 부산지역 언론계 선후배지간 등의 인연으로 알고 지내는 사이이고 △평소 친목모임(서울대 출신 언론인 모임, 부산지역 언론계 선후배 모임, 부산지역 언론사사장단 모임 등)이나 부산지역 기관장 모임 등을 통해 자주 또는 몇 차례 식사 및 골프 모임을 함께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고 재판부는 전했다. 그러나 이들은 2010년 부산시장 선거 당시에 피고인(허남식)의 당선을 도와달라는 명목으로 식사 및 골프 접대를 받은 적은 없으며, 특히 돈봉투를 받은 것으로 지목된 W, X, Y의 경우 “이씨로부터 돈봉투를 받은 적도 없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재판부는 또 이씨가 부산지역 언론인 W, X, Y 이외에 돈봉투를 건네 준 언론인들이 누구인지를 명확히 밝히지도 못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씨는 그 명목이 무엇이든 다수의 부산지역 언론인과 골프를 치고 금품을 주고, 이영복 회장에게 돈을 내게 해왔다는 진술을 여러차례 했다고 재판부는 소개하고 있다. 이씨는 검찰 피의자신문시 자신이 관리했던 언론사 기자들의 수가 100명이 넘는다고 진술했고, 1심 재판 때는 50∼60명 정도라고 진술했다고 재판부는 전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씨는 2008년 경부터 이영복 회장과 골프를 쳤고, 그 이유에 대해 “제가 평소에 후배기자들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같이 골프를 치곤 하는데, 그럴 때는 제가 골프비용을 대야 하지만 경제적으로 그럴 형편이 안 되다 보니까 이 회장에게 연락해 소위 ‘스폰’을 하도록 부탁했다”며 “이 회장과 같이 골프를 칠 때는 이 회장이 라운딩비용도 대 주고, 게임비도 100만 원 정도씩 대 줬다”고 진술했다. 특히 ‘부산시장 선거 당시에도 이영복 회장이 골프비용을 대 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씨는 “2010년 부산시장 선거 때 대 주었다. 제가 언론사 기자들과 골프를 칠 때 돈이 없다보니까 이 회장을 불러서 골프비용을 스폰해 달라고 부탁하곤 했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이씨는 왜 이영복 회장에게 스폰까지 부탁해가면서 모임을 관리하고 후배기자들을 관리하려고 했을까. 이 같은 질문에 이씨는 재판에서 “오지랖 넓은 저, 나서기 좋아하는 저, 그 다음에 남들보다도 좀 더 앞에 나서는 그런 것 때문에 회를 많이 조직했고, 그래서 그 회장을 지금도 맡다보니까 그러한 쓰임새가 필요했던 것”이라며 “거기에 이영복 회장이 응해줬던 것이 여태까지 이어져 온 것”이라고 답변했다. 또한 이영복 회장이 이씨에게 스폰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검찰에서 대체로 인정했다고 재판부는 확인했다.

이런 내용을 토대로 부산고법 재판부는 이씨의 언론인 골프접대 금품제공 진술 등에 비춰볼 때 이씨가 이영복 회장으로부터 받은 3000만 원을 “허 전 시장의 선거운동 명목”이 아니라 “평소 자신이 ‘관리’해오던 부산지역 후배언론인들이나 각종 모임의 관리비용 및 품위유지비용 등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추론했다. 재판부는 “부산지역 후배언론들에게 평소와 마찬가지로 ‘관리’ 차원에서 술과 밥을 사주고 골프비용도 대신 부담해 준 것에 불과함에도, 부산시장 선거 운동기간에 이루어진 것임을 내세워 허 전 시장 선거운동 차원에서 한 것이라 주장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이씨의 신용카드 결제내역에 관한 자료들과 법정에서 이뤄진 각 골프장에 대한 사실조회 회보서 등을 통해, 이씨가 2010년 부산시장 선거운동기간을 전후하여 다수의 부산지역 언론인들과 식사 및 골프모임을 가졌고, 그 대금을 이씨가 전액 결제한 사실이 밝혀졌다 해도 이영복 회장에 받은 3000만 원으로 불법선거운동을 한 것으로 입증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재판부의 이 같은 인식은 시민의 법정서와 거리가 멀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양미숙 부산참여연대 사무처장은 27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허남식 전 시장의 측근이 이해관계에 있는 기업인에게 돈을 받아서 언론인들에게 줬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김영란법이 있건 없건, 선거시기건 아니건 간에 이들이 언론인에게 골프접대를 했다는 것은 시장의 측근이 기업체 돈을 받아 기자 관리했다는 것 아니겠느냐”고 비판했다.

양 처장은 “이씨가 자신의 후배 언론인 관리를 위해 기업체 돈을 받아 개인적으로 썼다는 허남식 전 시장 측의 주장을 재판부만 믿어주고 있는 것”이라며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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