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화유기’에서 ‘역대급’ 방송사고가 일어난 뒤 또다시 한국 드라마 제작 현장의 열악함이 문제로 꼽히고 있다. ‘화유기’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가 추락해 의식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방송이 강행되면서 비난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화유기’ 스태프인 A씨는 MBC아트에 소속된 현장 미술팀장으로, 지난 23일 추락사고로 의식을 잃고 현재 큰 부상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방송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 “현재 ‘화유기’ 방송사고와 해당 추락사고가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런 사고가 있음에도 CJ E&M이 방송을 강행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26일 오후  CJ E&M측은 “내용 확인 후 입장을 발표하겠다”는 말만 전했다.

 CJ E&M tvN의 경우, 지난해 드라마 ‘혼술남녀’ 조연출이었던 고 이한빛 PD가 장시간 노동 등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는데도 변화가 없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 tvN '화유기' 2화에서는 스턴트맨들의 와이어가 그대로 노출되는 방송사고가 일어났다.
▲ tvN '화유기' 2화에서는 스턴트맨들의 와이어가 그대로 노출되는 방송사고가 일어났다.
지난 24일 밤 9시 ‘화유기’ 2화에서는 와이어에 매달린 스턴트맨의 와이어가 그대로 노출되는 방송사고가 일어났다. 이뿐 아니라 사고 화면이 나온 뒤 tvN ‘윤식당’, ‘막돼먹은 영애씨’ 광고 등으로 10분 넘게 다른 화면이 나타나고, 급하게 방송이 종료됐다.

tvN 측은 24일과 25일 두 차례 보도 자료를 통해 “화유기의 CG 작업은 촬영과 편집이 완료된 분량을 최대한 빨리 전달해 작업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며 “화유기가 다른 작품보다 요괴, 퇴마를 주제로 하는 만큼 CG 분량이 많고 난이도가 높아, 2화 후반부 CG 완성본이 예정된 시간보다 지연 입고돼 사고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tvN 측은 “이러한 방송사고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전체 제작 현황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작업 시간과 인력을 충분히 확보해 시청자 여러분께 양질의 프로그램으로 보답하겠다”고 전했다. 이번 사고로 인해 ‘화유기’는 31일 방송 예정이던 ‘화유기’ 4화를 1월6일에 방송하기로 결정했다.

역대급 방송사고인 만큼 ‘화유기’ 사고 이후 tvN의 방송제작 환경에 대한 지적이 쏟아졌다. 익명을 요구한 ‘화유기’ 한 제작진은 “거의 모든 장면에 CG 처리를 해야 하는데 사전 제작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며 “화유기의 촬영이 다른 드라마들보다 한 달 정도 먼저 시작됐다고 하지만 캐스팅과 편성문제가 걸려 시간이 촉박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시간이 촉박했으나 현장은 그대로 굴러갔고, 제작진들 사이에서는 사고가 예정돼 있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고 밝혔다.

▲ tvN '화유기' 포스터.
▲ tvN '화유기' 포스터.
심각한 방송사고에 인터넷 커뮤니티와 트위터 등 SNS에는 ‘화유기’ 박홍균 PD에 대한 비난이 일기도 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트위터 글을 종합해보면 박 PD가 MBC에서 재직할 때부터 드라마 ‘늑대’, ‘선덕여왕’, ‘뉴하트’ 등에서 무리한 촬영 방식을 고수했다는 것이다.

2006년 MBC ‘늑대’의 경우 애초 16부작이었으나 배우 문정혁과 한지민이 추격신 도중 스턴트 차량에 의해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4부작으로 조기 종영됐다. 2009년 ‘선덕여왕’ 당시 ‘미실’로 출연한 배우 고현정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촬영 현장의 열악함을 알리기도 했다. 당시 고현정은 “세트장이 더럽고 식사가 부실하고 같은 장면을 하염없이 반복했다”고 말했다. ‘선덕여왕’이 방송됐던 당시 드라마 커뮤니티에서는 박PD에 대한 항의 글이 쏟아지곤 했다. 2011년 ‘뉴하트’에서 배우 지성 역시 “2~3분 나오는 수술신을 24시간 찍었다”고 인터뷰했다. 이런 글들이 SNS에서 퍼지면서 ‘역대급 사고 화유기 PD가 박볼트로 불리는 이유’(세계일보) 같은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박볼트’는 박 PD의 별명으로, 영화 해리포터의 유명한 악역 ‘볼드모트’에 빗댄 것이다.

하지만 방송 관계자들은 개인 PD에 대한 비난보다 열악한 드라마 제작 현장에 대한 시스템 점검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MBC드라마PD협회장을 지낸 이은규 전 MBC 드라마국장은 “개인 PD 문제를 시스템보다 더 큰 문제인 것처럼 언급하는 것은 가십 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며 “방송국에서 드라마를 방영할 여건이 안 되는데도 밀어붙인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은규 전 국장은 “CG가 들어가는 드라마는 특히 방송사고가 많은 편”이라며 “CG가 많이 들어가는 등 전형적 형식이 아닌 드라마의 경우, 사전제작이나 반(半)사전 제작으로 가는 방향이 맞다”고 말했다.

특히  CJE&M의 경우, 지난해 10월 드라마 ‘혼술남녀’의 조연출이었던 고 이한빛 PD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드라마 제작 현장의 장시간 노동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이후  CJE&M 측은 제작 시스템을 선진화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번 방송사고로 인해 또다시 열악한 드라마 제작 환경이 도마에 올랐다.

전진희 청년유니온 기획팀장은 “화유기 사고는 한국 드라마 제작 현장의 열악함을 그대로 보여준 방송사고”라고 말했다. 전 팀장은 “더 이상은 사람의 노동력을 갈아 넣어 촬영의 질을 보장할 수 없게 됐다”며 “화유기의 편성을 중지하고 사전 제작 등을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방송 업계 종사자들의 열악한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는 오픈 채팅방 ‘방송갑질 119’에서도 ‘화유기’ 관련 제보를 받기 시작했다. ‘방송갑질 119’ 스태프인 서명숙 작가는 “‘화유기’ 현장에서 스태프분들의 노동환경 역시 무척 급박하게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고 이한빛 PD 대책위원회외 방송제작 현장의 노동환경 개선에 협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고가 터진 점이 매우 유감스럽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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