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탄저균 백신 수입 언론 보도가 점입가경이다. 한 극우매체의 미확인 보도로 시작돼 청와대가 국민 안전은 뒷전이며 탄저균 테러에 대한 대책이 전무해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는 논란으로 확산 중이다.

논란은 극우매체 뉴스타운의 기고글에서 촉발됐다. 지만원 박사는 <청와대 식구들, 탄저균 백신 수입해 주사 맞았다>라는 기고글에서 “청와대는 지난 6월 6일, 현충일에 식약청에 공문을 보내 백신 주사약 수입을 명령했다. 대통령과 청와대 근무자들을 위한 치료용으로 사용할 것이라 수입 목적을 기재했다. 지난 7월 26일에는 청와대가 이 분야 전문가들을 모아놓고 회의까지 했다고 한다. 어느 날 백신은 도착했고, 아마도 500명이 이 백신 주사를 맞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만원 박사의 글은 지난 10월 13일 김상훈 자유한국당 의원이 밝힌 내용에 근거하고 있다. 김 의원은 당시 “청와대 경호실은 지난 7월 7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공문을 보내 치명률이 높고 사회경제적인 영향력이 크나 국내에 허가된 치료제가 없어 해외 도입이 불가피한 약품을 구매해 유사시에 대비하고자 한다며 미국산 탄저백신인 이머전트 500도스(인분) 구매요청을 하면서 법적절차, 구매방법 등을 검토해 신속히 구매할 수 있도록 적었다”며 탄저균 백신 구매 협조 공문 내용을 공개했다.

지만원 박사는 이 내용을 근거로 청와대가 탄저균 백신을 수입했을 것이라고 기정사실화했고 특히 “아마도 500명이 이 백신 주사를 맞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지만원 박사는 “청와대에는 핵무기에 안전한 벙커시설이 있다. 여기에 더해 탄저균 백신 주사를 맞았다. 백신 주사는 한국에 없다. 수입을 해야만 한다. 수입 능력이 있는 자기들만 살고 5천만 국민은 죽어도 좋다는 것”이라며 “특별히 탄저균에 대한 백신을 주문했다는 것은 북한이 탄저균을 사용할 것이라는 귀띔을 해주었다는 말이 된다. 청와대 빨갱이들에게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남한 인구를 탄저균으로 깨끗이 청소할 테니 너희들 500명은 백신 주사 맞고 살아 남아라’ 이런 뜻일 것”이라고 비난했다.

지만원 박사가 기고글을 쓴 시점인 23일 확인된 것은 △청와대가 탄저균 구매를 요청했다는 점 △구매를 요청한 이유는 국내 치료제가 없어 유사시를 대비하고자 했다는 점 등이다.

하지만 지만원 박사는 청와대 참모진 500명이 백신 주사를 맞았다라고 확신하면서 마치 국민 안전을 내팽개치고 청와대를 자신만 살아남으려는 파렴치 집단으로 몰아버렸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반론도 받지 않은 악의적인 해석의 보도라고 적극 해명했지만 언론은 탄저균 백신 도입 실체에 의뭉스러운 시선이 있다면서 탄저균 노출에 대책이 없는 청와대 무능력 논란까지 확대시켰다. 극우매체의 보도가 주목을 받은 것은 청와대 참모진이라는 사용처 때문이었지만 청와대가 해명을 내놓은 뒤 해명 내용을 논란의 쟁점 근거로 활용하는 ‘이상한 보도’가 쏟아진 것이다.

청와대는 지난 24일 해명 자료에서 △지난 11월 2일 탄저 백신 350명분을 해외에서 도입해 국군병원에 보관 중이라는 점 △2015년 오산 주한미군 기지 탄저균 배달 사건 이후 테러에 대비하기 위한 치료 목적으로 한 백신 구입이라는 점 △백신 도입은 박근혜 정부인 2016년 초 추진돼 올해 예산에 반영된 사업이라는 점 △생물테러 대응 요원 예방 및 국민 치료 목적의 1000명분 탄저 백신도 도입했다는 점 등을 설명했다.

청와대 해명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참모진 500명이 백신을 맞았다라는 주장의 사실 여부는 온데간데 없이 청와대 해명에 꼬리를 붙여 ‘탄저균 백신 도입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국민 치료 목적의 탄저균 수입 대책이 부족하다’거나 ‘탄저균에 대응한 정부의 대책이 부족하다’는 식의 보도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 참모진이 백신 주사를 맞지 않았다는 건 사실에 가깝다. 애초 치료목적의 백신이기 때문에 예방 주사격으로 맞았다라는 주장은 맞지 않고, 예방 주사라고 하더라도 수차례 투약을 해야 효과를 볼 수 있는 탄저균 백신 주사의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500명 청와대 직원용이라는 의혹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뉴스타운의 보도가 사실상 추측에 가까운 상상의 산물로 판명되고 있지만 언론은 청와대 해명을 가지고 불을 지피고 있다.

일례로 일부 언론이 탄저균 테러에 대한 국민들의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의 치료제를 왜 수입하지 않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지만 이미 지난 10월 국정감사 당시 탄저균 국내 백신 개발 현황을 김상훈 의원이 공개한 적이 있다. 김 의원에 따르면 지난 1997년부터 탄저 백신 개발을 시작했고 올해 조건부 임상시험 단계에 있다. 그리고 오는 2019년 개발완료를 목표로 민간기업이 개발 중에 있다.

하지만 이런 현황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국민이 청와대에 분노하는 것은 백신 도입 자체가 아니다. 유사시 국가 지도부의 궤멸을 막으려면 백신 도입은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는 북한의 생물학 테러가 현실이 됐을 때 국민을 위한 어떤 대책이 마련돼 있느냐는 것이다. 고작 국민 1천 명만 치료인지 접종인지를 받을 수 있을 뿐이다. 청와대의 해명에는 이런 현실적 문제를 극복할 대안에 관한 언급은 전혀 없다. 그저 사실을 가리기에 급급했다”(매일신문)는 보도를 내놓고 있다.

이 같은 보도가 성립하려면 2010년 이후부터 계속된 탄저균 대책과 관련한 질문을 되돌아봐야 한다. 지난 2011년 10월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 출석해 ‘북한의 화생방무기에 대한 백신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이기 때문에 시한을 정확히 못 박지 않고 있다. 개발만 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개발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또한 “과거 협의가 있었지만 탄저균 백신은 우리 질병관리본부에도 있고 우리가 개발하는 능력이 되기 때문에 자체 개발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의 발언은 탄저균 백신이 개발되지 않았지만 자체 개발할 계획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당시 적극적으로 탄저균 백신 개발이 시급하다고 문제를 제기한 언론보도는 나오지 않았다.

▲ 평택시민행동이 험프리 미군기지에의 생화학 실험실(주피터 프로젝트) 도입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시민행동 제공. 사진 제휴=민중의소리.
▲ 평택시민행동이 험프리 미군기지에의 생화학 실험실(주피터 프로젝트) 도입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시민행동 제공. 사진 제휴=민중의소리.

2016년에도 탄저균 백신 문제가 제기됐다. 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우리 군은 북에서 무기로 사용될 우려가 큰 천연두와 탄저 백신이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고 유사시에는 정부 비축량을 빌려서 사용할 계획으로 확인됐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탄저균 백신 문제는 이전 정권에서도 단골 소재처럼 백신을 도입하라거나 자체 백신을 개발하라고 요구하면서 준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왔던 사안이다.

하지만 뉴스타운 보도에 대한 해명으로 치료 목적의 백신을 구입했다고 하자 오히려 국민 안전 수준의 백신을 수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 안전을 무시하고 대책이 전무한 청와대라고 비난하고 있는 셈이다.

만일 청와대가 탄저균 백신을 전혀 수입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청와대도 탄저균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언론보도가 이어졌을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언론이 탄저균 백신이 부족한 게 정말 문제라고 한다면 미군 기지에 생화학 무기실험 프로젝트가 도입된 사실에 대해서도 따져 물어야 한다.

지난 2015년 11월 부산항 8부두에 위치한 미군기지에 생화학 무기실험인 ‘주피터 프로젝트’가 도입되고 최근 평택 미군기지에서도 극비리에 도입을 추진 중인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주피터 프로젝트는 탄저균을 포함해 생화학 무기인 보튤리늄 A형 독소도 실험대상으로 포함돼 있다.

생화학 무기 실험이 한반도 한 가운데서 벌어지고 있고, 사고 발생 시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인데도 언론의 반응은 냉담했다. 생화학무기 실험이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는 사실은 주권의 문제와 결부돼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논란이 될 것으로 봤지만 이상하리만큼 조용히 넘어갔다.

이번 청와대의 탄저균 백신 도입 논란 역시 언론의 문제제기가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으려면 수년 동안 계속된 탄저균 백신 요구에도 예산이 반영되지 않고 왜 개발이 늦었는지 꼼꼼히 따져보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아울러 미군기지의 생화학무기 실험 문제도 주권침해여부를 포함해 국민 안전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적으로 보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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