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호의 MBC 노영방송 오명 벗을 수 있나?” 월간조선 2018년 1월호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최근까지 주요 정기간행물 중 유일하게 ‘JTBC 태블릿PC 조작설’을 보도하고 있는 월간조선은 이번 호에서 “최승호 사장은 2008년 광우병 시위를 촉발한 프로그램을 제작했다”고 보도했다. 사실이 아니다. 최 사장은 2008년 당시 MBC스페셜 PD로, PD수첩 광우병 편 제작과는 연관이 없다.

정말 괴담방송이었다면 당시 PD수첩 제작진이 이명박·박근혜정부 사법부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제작진은 정부가 제기했던 각종 소송에서 모두 승소했다. 반면 2008년 이명박정부는 임기 첫해 한 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하며 붕괴 직전까지 갔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PD수첩 무력화를 중심으로 한 MBC장악에 나섰다.

MBC 김재철 경영진은 2011년 대법원의 최종 무죄 판결이 나자 조중동 지면과 자사 메인뉴스를 통해 PD수첩 사과방송을 냈다. 당시 사과방송은 이명박정부 국가정보원의 ‘MBC정상화’ 문건에 따라 이뤄진 작업의 연장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월간조선은 최근호에서 이 같은 맥락은 전하지 않고 MBC의 사과방송 자체를 강조하며 최승호 사장 이하 현 경영진에 대한 흠집 내기에 몰입했다.

▲ 최승호 MBC사장이 지난 8일 첫 출근한 모습. ⓒ이치열 기자
▲ 최승호 MBC사장이 지난 8일 첫 출근한 모습. ⓒ이치열 기자
월간조선은 2005년 한국사회를 흔들었던 PD수첩 황우석 논문조작 사건 보도를 언급하며 당시 최승호 PD수첩 책임PD가 취재윤리 위반을 이유로 감봉1개월 처분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황우석 주장만 앵무새처럼 받아 적다가 PD저널리즘이 밝혀낸 진실에 무너졌던 대다수 언론의 ‘취재윤리’에 대해서는 역시 언급이 없었다. 월간조선 보도의 목적은 PD수첩 광우병 편과 황우석 편 당시 보수언론이 만들었던 ‘사회적 혼란’이 마치 ‘노영방송’의 폐해인 것처럼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조선일보는 여전히 ‘MBC 노영방송’ 프레임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선일보는 최승호 사장이 임명된 지난 7일 전화인터뷰를 통해 최 사장에게 ‘MBC가 노영방송이 될 것이란 우려’에 대해 물었다. 최 사장은 “노영방송이라는 프레임에 반대한다”며 “모든 경영판단과 결정은 회사가 하는 것이고 노조는 의견 수렴의 창구가 되는 것인 만큼 노조가 의견을 개진하고 경영진이 판단하면 된다”고 답했지만 조선일보는 애초부터 최 사장 답변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조선일보는 지난 8일 ‘장악 끝난 MBC’란 제목의 사설에서 “역대 정권 대부분이 공영방송을 장악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노골적인 것은 본 적이 없다”며 “고용노동부 조사와 검찰수사까지 동원돼 임기가 2년 넘게 남은 MBC사장을 끌어내리고 새 사장을 임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사설에는 박근혜정부 노동부와 사법부가 인정한 MBC경영진의 부당해고·부당징계·부당전보 등 부당노동행위 주요 피의자가 김장겸 사장이라는 중요한 사실이 누락돼 있다.

조선일보는 대신 2008년 PD수첩 광우병 편을 언급하며 “온 나라가 괴담 광풍으로 지새웠다. 그래도 최 사장은 얼마 전 광우병 PD수첩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을 하도록 만든 공이 있다고 했다. 그런 방송을 하겠다는 예고편으로 들린다”고 주장했다. MBC가 괴담방송을 할 것이라는 우려로 포장된 저주에 가깝다. 당시 PD수첩 방송으로 국민들은 식량주권과 먹거리안전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할 수 있었고,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높이게끔 정부협상력도 높일 수 있었다.

▲ 12월12일자 TV조선 보도화면 갈무리.
▲ 12월12일자 TV조선 보도화면 갈무리.
‘노영방송’ 프레임은 그간 MBC보도에 불편했던 보수세력을 중심으로 2000년대 이후 지속되어왔다. 국정원이 장악한 MBC에서 한 때 노영방송 프레임은 사라졌다가 다시금 번질 태세다. 이 프레임은 언론이 보도하면 자유한국당과 같은 극우보수 정치인들이 인용하고, 이를 다시 언론이 재인용하는 식으로 강화되곤 했다. 이번 월간조선 1월호는 다시금 이 프레임에 불을 지펴보겠다는 것이다.

월간조선은 2012년 김재철 사장 퇴진을 위한 170일 파업에 참여하고 비제작부서로 쫓겨났던 기자들이 보도국장·정치부장·경제부장 등 주요 보직을 맡은 사실을 언급하며 “국장·부국장급 후속 인사에도 친親 최승호 인맥과 함께 노조에서 활동했던 핵심 인물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조능희 기획편성본부장과 이근행 시사교양본부장 등이 MBC노조위원장 출신이란 점을 강조했다. 최 사장 또한 2003년 MBC노조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사실 이 점이 그들이 말하는 ‘노영방송’의 핵심근거다. 노조위원장을 하면 업무능력이 있어도 사장이든 본부장이든 보직을 맡아선 안 된다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당장 홍준호 조선일보 대표이사 발행인 역시 조선일보 4대 노조위원장 출신이다. 그는 노조위원장 시절 촌지 문화에서 벗어나자며 취재비 현실화를 이끌었다. 편집국장과 논설주간을 거친 양상훈 조선일보 주필은 6대 노조위원장 출신이다. 그러나 아무도 조선일보를 ‘노영신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 코리아나호텔.
▲ 코리아나호텔.
이진석 조선일보 논설위원은 지난 12일자 칼럼에서 MBC정상화작업을 두고 “정권 바뀔 때마다 음지가 양지 되고, 양지가 음지가 되는 일이 MBC의 연례행사처럼 벌어진다. 시청자인 국민은 정권마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방송을 보게 된다. 이런 방송에 계속 공영이란 말을 붙여줘야 하는지 의문이다”라고 주장했다. 적어도 조선일보 또한 이명박·박근혜정부 MBC가 보수편향이었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는 셈인데, 이 주장도 앞으로의 MBC를 ‘노영방송’으로 가둬놓기 위해 무리한 측면이 있다.

“MBC 보도는 언론의 상식과 거리가 멀었다. MBC가 주장한 감찰 내용 누설은 누설이라는 표현을 쓰는 게 민망한 수준이다.” “MBC가 다른 언론의 국정농단 취재 과정의 뒤를 캐며 범법 행위인 양 몰아가고 있다. 그래서 MBC는 언론이라기보다 흥신소에 가깝다는 말까지 나오는 서글픈 현실이다.”

‘MBC, 언론인가 흥신소인가’란 제목의 2월21일자 조선일보 기자수첩이다. 박근혜정부 MBC는 양지에서 음지로 바뀌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MBC보도는 사회적 흉기였다. 조선일보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10년 전 프레임을 주술처럼 반복해서는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다. 이미 시청자들도 주술에 ‘내성’이 생겼다.

조선일보가 MBC를 두고 ‘노영방송’이라 부르짖던 그 시절 MBC는 신뢰도와 영향력 등 각종 지표에서 적수가 없는 1위였다. 조선일보가 ‘MBC 노영방송’ 프레임을 꺼내든 것을 보니 한편으론 다시금 MBC가 과거의 명성을 회복할 시기가 다가온 것 같아 기쁜 마음도 든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