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은 올해도 변함없이 기사도 쓰고 책도 썼다. 특히 2017년은 두 공영방송의 파업으로 미디어 이슈가 확산되는 해였다. 특히 MBC 기자와 PD들의 책이 화제가 됐다.
가장 큰 화제를 모은 책은 김민식 MBC PD의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위즈덤하우스, 1월11일 발간)다. 미디어 이슈를 전면으로 다룬 것은 아니지만 판매부수 13만부를 기록했다. 이 책에는 김민식 PD가 영어를 공부한 방법 외에도 연애나 결혼 등 인생 이야기도 담겨있다. MBC 파업 국면에서 선두에 섰던 김민식 PD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가 책의 판매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출판사 ‘위즈덤하우스’ 측은 “그동안 영어 공부법을 다룬 책은 많았지만 문법이나 독해방법에 관한 것이 많았는데, 이 책은 독특한 방식의 공부법을 알려줘서 독자가 주목했다”며 “또한 MBC 파업으로 저자 개인에 대한 관심도가 높았고, 저자가 적극적인 활동을 해서 판매부수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창작과 비평에서는 MBC 박성제 기자가 쓴 책 ‘권력과 언론’도 펴냈다.
이 외에도 임명현 MBC 기자는 ‘잉여와 도구’(정한책방, 9월15일 발간)라는 책에서 10년간 MBC에서 발생했던 방송장악 과정을 드러냈다. 임 기자는 해직기자들과 같이 ‘잉여’가 된 언론인 외에도 망가진 MBC에서 계속해서 뉴스를 만들어낸 ‘도구’같은 기자들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관련 기사: MBC 파업에 차마 우리가 말하지 못했던 것들)
‘적폐청산’ 염원과 함께 읽은 책들
올해 큰 호응을 얻은 ‘기자의 책’은 주진우 시사인 기자의 ‘주진우의 이명박 추격기’(푸른숲, 7월31일 발간)다. 판매부수가 8만부다. ‘적폐 청산’이 현 정부 과제로 꼽히면서 파면 당한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 외에도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요구도 거세졌다. ‘주진우의 이명박 추격기’는 사회변화를 꿈꾸는 대중의 열망을 제대로 건드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관련 기사: ‘이명박 전문기자’ 주진우의 드라마)
푸른숲 출판사 측은 “시의성 있는 주제와 함께, 책과 비슷한 내용의 ‘저수지 게임’이라는 영화 개봉이 겹치면서 판매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며 “또한 저자 역시 적극적으로 이슈를 홍보했다”고 밝혔다.
‘최순실 게이트’의 포문을 열었던 기자 중 하나로 평가받는 김의겸 한겨레 기자와 한겨레 특별취재팀은 ‘최순실 게이트’(돌베개, 4월21일 발간)라는 책을 펴냈다. ‘최순실 게이트’는 한겨레 특별취재팀이 ‘최순실’의 존재를 폭로하고 국정 개입과 농단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청와대와 재벌 기업이 어떻게 공모했는지 등 게이트 취재의 모든 과정을 되짚었다.
문재인 정부 등장 이후 ‘적폐청산’ 핵심대상으로 거론되는 검찰과 사법부에 대한 비판을 담은 책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창비, 7월20일 발간) 역시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 책은 현재 JTBC 보도국장인 권석천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쓴 ‘대법원 비하인드 스토리’다. 권석천 국장은 이 책에서 ‘이용훈 코트’(대법원, 2005~11년)에서 ‘독수리 5남매’라고 불린 김영란, 박시환, 김지형, 이홍훈, 전수안 대법관들의 판결 내용을 풀어냈다. (관련 기사: “대법원에서 13:0이 나오면 정의를 추구하지 않게 된다”)
최근 2~3년 동안 베스트셀러 목록에 빠지지 않는 분야가 페미니즘이다. 올 해 모든 분야를 통틀어 가장 많이 팔린 책 중 하나가 ‘82년생 김지영’이었던 것도 이런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언론 역시 페미니즘 이슈를 적극적으로 기사화했으며 심층분석, 비평기사를 내놓았다.
대중문화를 페미니즘 관점으로 비평한 최지은 전 ize기자의 ‘괜찮지 않습니다’(RHK, 9월22일 발간)는 벌써 3쇄를 넘겼다. 출판사 RHK 측은 “최근 끊임없이 페미니즘 이슈가 터지고 있고, 출판계에서도 페미니즘 관련 서적을 꾸준히 출판하고 있는데 그 흐름에 맞는 책”이라며 “특히 국내 기자가 국내 사례를 취재해 쓴 책으로, 독자들이 더 실질적인 이야기라고 느껴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근우 전 ize기자 역시 페미니즘 관점을 포함해 다양한 관점으로 대중문화를 비평한 ‘프로불편러 일기’(한울, 2월13일 발간)를 펴냈다.
현직 기자는 아니지만 18년 동안 동아일보에서 기자로 활동한 김희경 작가의 ‘이상한 정상 가족’(동아시아, 11월21일 발간)은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를 비판한 책이다. 출간한 지 한 달 정도 지난 현재 4000부 이상이 팔렸다. 동아시아 출판사 측은 “저자는 18년간 일간지 기자를 하고 6년간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일했는데, 기자식 글쓰기가 몸에 배어 어렵지 않으면서 간결하게 핵심을 잘 표현했다”며 “책은 마치 탐사보도처럼 사례와 통계, 연구 결과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며 아동학대와 저출산, 미혼모 문제의 공통원인인 ‘가부장주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정확하게 짚어냈다”고 설명했다.
오래동안 취재한 분야를 책으로 펴낸 기자들
한 분야를 오래동안 취재해 온 기자들은 결과물을 책으로 출판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도쿄 특파원을 지내고 현재는 한겨레21 편집장을 맡고 있는 길윤형 기자는 5년 동안의 일본 취재기 경험을 ‘아베는 누구인가’(돌베개, 10월1일 발간)라는 책을 통해 풀어냈다.
특유의 문학적 문체로 주목받는 이문영 한겨레 기자의 ‘웅크린 말들’(후마니타스, 11월20일 발간) 역시 이 기자가 취재해 온 현장을 담았다. 이 기자는 광부, 구로공단 노동자, 알바생, 에어컨 수리기사 등 한국에서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해 있는 이들을 주목했고 그들의 삶을 책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