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행법규’ 위반은 무효다. A와 B가 어떤 합의를 했든 그게 공공질서에 반하는 것이라면 무효가 된다는 뜻이다.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노동법은 강행법규다. 노동법에 위배된 행위는 무효다. 이는 의견이 아니라 사실이다.

최근 언론이 노동법 위반 사실을 확인하고도 무효가 아니라고 한 목소리를 낸 사건이 있다. 주식회사 파리바게트 제빵기사 불법 파견 사건이다. 고용노동부 근로감독 결과 파견법 5·6조 등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됐음에도 일부 매체는 ‘고용노동부가 무리한 법 적용을 했다’거나 ‘불법파견을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는 논조를 4개월 동안 유지했다.

▲ 파리바게트 불법파견 사태 관련 보도 헤드라인 모음. 디자인=이우림 기자
▲ 파리바게트 불법파견 사태 관련 보도 헤드라인 모음. 디자인=이우림 기자

파리바게트 사태의 핵심은 파리바게트가 자신이 고용하지 않은 가맹점 제빵기사들에게 일상적으로 업무 지시를 내리고 그들의 근태를 관리한 것이다. A가 인력 파견업체 B를 통해서 노동자를 사용할 때, A는 파견노동자에게 업무 지휘 명령을 직접 할 수 없다. A가 직접 지시를 한다면 A는 그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 이는 파견법의 내용이다. 파리바게트는 파견법 조항을 어겼고 고용노동부는 그런 파리바게트에게 시정지시를 내린 것이 이번 사태의 핵심이다.

미디어오늘이 지난 9월21일부터 12월19일까지 ‘파리바게트 사태’ 관련 보도를 분석한 결과 ‘경영자유 주장→불법파견 불가피성→기업 위기론→고용노동부 때리기→노노갈등’의 보도 추이를 보였다. 9월21일은 고용노동부가 파리바게트 제빵·카페 기사 고용 구조를 ‘불법파견’이라 결론내렸다고 공개한 날이다. 이날을 기점으로 기사가 대량 생산되기 시작했다.

“노동법 위반에 ‘기업 자율’ 거론할 필요 없다”

▲ 9월22일 한국경제 지면 사설
▲ 9월22일 한국경제 지면 사설

‘사적자치’ ‘경영자율권’이란 용어는 9월21일부터 보도에 등장했다. “사적자치 부정한 고용부의 ‘제빵기사 불법파견’ 판정”(한국경제 9/21자 사설), “제빵기사 직접고용 지시, 경영간섭 아닌가”(서울경제 9/21자 사설) 등이 대표적이다. 고용노동부 시정 지시를 기업의 자유를 해하는 권리 침해로 본 것이다. 한국경제는 해당 사설에서 “근본적으로 행정이 사적 자치의 영역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닿는다”고 지적했다.

손승주 노무사는 지난 19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일부다처제’를 예로 들며 “일부다처는 사적자치일 수 있다. 그런데 그게 허용되는 행위인가? 그걸 막는 게 강행법규”라며 “불법파견을 강행법규(노동법)로 막고 있는데 ‘사적자치’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논리”라고 지적했다.

‘가맹사업법상 문제가 없다’는 분석도 마찬가지다. 한국경제는 9월21일 사설에서 “가맹사업법은 제빵기사에 대한 본사의 교육 훈련과 가맹점 경영지원을 허용하고 있다”며 “도급과 파견의 경계가 모호한 현실에서 파견법이 너무 경직돼 있다는 비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불법 파견 고용 문제에서 가맹사업법은 고려할 대상이 아니다. 고용노동부는 파리바게트가 “가맹사업법상 가능한 품질관리를 위한 지도를 하는 수준을 넘어서 인사·노무 전반에 지휘·명령을 행사했다”고 일관되고 명확하게 지적했다. 파견노동자 고용 문제는 ‘파견법’ 내에서 기준을 찾아야지 가맹사업법은 불필요하다.

“직고용이 최선이 아니”라는 의문의 보도

▲ 12월6일 서울경제 지면 기사
▲ 12월6일 서울경제 지면 기사

‘파리바게트는 불법파견을 할 수밖에 없다’는 옹호도 있다. 매일경제는 9월21일 “민간부문 첫 강제 정규직화…‘25일내 5400명 고용하라니…‘“ 기사에서 파리바게트 내 불법파견 구조가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라 분석했다. ’가맹점 폭발→제빵기사 고용 수요 증가→제빵기사 직업 훈련 협력업체 등장→편의 위해 본사 개입, 알선‘의 흐름을 제시했다.

서울경제는 지난 6일 ”직고용이 최선 아닌데… 정부 강행에 상처뿐인 법정다툼 될 듯“에서 “고용시장이 달라졌는데 여전히 20년 전의 파견법을 적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파견법 5조는 청소·경비 등 32개 업종에 한해서만 최대 2년까지 파견을 허용하고 지켜지지 않을 경우는 불법이다. 기사는 이 같은 파견노동자 보호 조항이 우리 경제 실정과 맞지 않다는 취지다.

이런 보도에서는 ‘중간 착취 배제’ 등 노동법이 보호하는 대원칙에 대한 이해가 보이지 않는다. 중간 착취 배제는 근로기준법 조항 중 하나다. 중간 착취는 지주와 소작농 사이의 마름이 소작료를 떼가는 구조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에 개입해 노동자가 받아야 할 몫의 일부로 중간 이득을 취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파견’일 수 있다.

그럼에도 파견이 허용되는 이유는 ‘파견법’이 제정돼있기 때문이다. 합법의 테두리를 만들어놓고 이를 만족하면 허용하는 식이다. 파견법 준수는 그래서 중요하다. 파견법이 △파견업종 △파견기간 △파견업체 자격 등을 엄밀하게 규제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무엇보다 ‘실정이 이렇다’고 해서 불법이 정당화되진 않는다. 손 노무사는 “누군가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해서 살인이 정당화되지 않듯 불법파견도 마찬가지”라며 “‘실정’은 형사사건을 예로 들면 감형 사유가 될 지언정 무죄의 근거가 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망한다’ ‘해고된다’ ‘모두가 원하지 않는다’

▲ 9월23일 머니투데이 1면 기사
▲ 9월23일 머니투데이 1면 기사

“파리바게뜨 파장…문닫는 협력사·인건비 떠안는 가맹점”(아시아경제 9/22) “도산위기 몰린 파리바게뜨 협력사의 절규”(머니투데이 9/23) “가맹점 타격·제빵사 실직·본사 휘청… 모두가 불행한 길”(매일경제 11/30)

파리바게트 제빵기사 직접 고용과 관련해 언론은 “정부만 밀어붙인다”는 프레임을 짰다. 가맹점주(프랜차이즈)는 결국 인건비·부담금이 늘어나 반대하고 협력업체(인력 파견업체)는 폐업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기에 반대하고 제빵·카페기사 당사자는 일자리가 줄어 들 수 있어서 모두가 반대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원칙은 효율성도 합법의 테두리 내에서 추구해야 한다는 점이다. 언론이 불법을 시정할 때 드는 비용보다 어떻게 최적의 대안을 찾을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미다.

고용 문제의 책임은 사용자에게 있다. 즉 파리바게트 불법파견의 책임은 원청 파리바게트에 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존재할 땐 상생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하고 이 책임은 파리바게트에게 있다. 즉 일자리 감소, 비용 증가에 대한 우려는 파리바게트에 물어야지 그 책임을 고용노동부에 전가할 수 없다. 고용노동부는 “파리바게트의 직접 고용 의지만 있다면 필요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며 처분 연장 가능성도 전달했다.

▲ 12월2일 서울경제 지면 기사
▲ 12월2일 서울경제 지면 기사

“제빵기사 70%가 직접 고용에 반대한다”는 내용을 전달한 기사는 무성의한 보도다. 파리바게트는 지난 1일 “제조기사 5309명 중 70%인 3700여명이 가맹본부 직접고용에 반대한다”며 직접 고용이 아닌 ‘3자 합작회사’를 통해 불법 파견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 밝혔다. 파견법은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노동자가 직접고용을 원하지 않을 경우 사업주의 직접고용 의무가 사라진다는 조항을 두고 있다.

경험칙에 반대되는 주장이 있다면 검증 취재에 나서야 함에도 이 시기 파리바게트가 발표한 주장을 그대로 받아쓴 보도가 다수 나왔다. 불안정 일자리를 가진 제빵기사 절반 이상이 자발적으로 파견에 동의하는 것은 사회 일반 상식과 맞지 않다. 경향신문, 한겨레 등 일부 언론 취재 결과 모 협력업체가 제빵기사들에게 ‘상생 기업 동의서’를 쓰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전적시킨다고 압박한 사실, 반강제적으로 동의서를 쓴 후 다시 철회 의사를 밝힌 제빵사가 190여 명에 달하는 사실 등이 추후 드러났다.

근거없이 ‘두들겨 맞은’ 고용노동부

▲ 12월13일 조선일보 지면 기사
▲ 12월13일 조선일보 지면 기사

고용노동부를 향해 “노조 손을 들어주는 정부”(서울경제 9/29)라거나 ‘530억원 과태료 폭탄을 안기는 정부’(아시아경제 9/29)라는 비판도 여러 차례 나왔다. 불법행위에서 비롯된 과태료를 ‘폭탄’이라고 표현하거나 파견법에 따른 결정을 ‘친노조 성향’이라고 색깔론을 입히는 행태가 두드러졌다.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은 사회적 요구가 있을 경우 수시 근로감독을 실시하게 돼 있다. 근로감독 결과 파리바게트는 자신이 고용하지 않은 파견 제빵기사들의 채용·평가·승진 등에 관여했고 출근시간, 매장 관리 등을 카카오톡으로 수시로 지시했다. 파견법 5조를 위반한 것으로 파견법 6조 1항은 “불법 파견의 경우 사용사업주가 해당 파견 근로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정한다. 노동부는 이 법을 적용해 ‘5300명 직접고용’ 시정 조치를 내렸다.

매일경제는 11월29일 “과태료 530억원을 일단 내고 행정소송을 하기에는 부담이 지나치게 크고, 반대로 과태료를 내지 않고 버티는 것은 더욱 부담스럽다”며 고용노동부의 직접고용 명령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논조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불법파견 사실을 확인했음에도 고용노동부가 직접고용 명령을 내리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과도 통한다. 고용노동부의 직무유기를 옹호하는 논리로 귀결될 수 있다.

4개월 간 혼란 지속… 책임은 원청 파리바게트에

▲ 12월19일 매일경제 지면 기사
▲ 12월19일 매일경제 지면 기사

고용부는 20일 직접고용 시정지시를 이행하지 않은 파리바게뜨에 1차로 162억7천만원의 과태료 납부를 통지했다. 직접 고용 지시를 내린 5309명 중 직접고용 포기 확인서를 제출하지 않은 제빵·파견기사 1627명에 대한 과태료다. 파리바게트는 4개월 동안 불법 파견 문제 해결에 제대로 된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노노갈등 프레임은 이같은 지지부진한 상황의 책임을 노동조합에 전가한다. 파리바게트 사태에서도 지난 12일 제빵기사 복수노조가 생겼다는 첫 보도가 나온 후 “양대노총 힘겨루기로 번진 파리바게뜨 사태”(한국경제 12/13), “한노총 對 민노총 세 불리기 경쟁중”(조선일보 12/14), “한노총·민노총 연대로 더 꼬이는 파리바게뜨”(매일경제 12/19) 등의 기사가 연이어 보도됐다.

조선일보는 특히 지난 12일 “정부 섣부른 개입에 제빵사들 우왕좌왕…파리바게뜨, 양대 노조 勢싸움 장으로” 제목의 기사에서 “회사 하나를 양대 노조의 세력 다툼장으로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며 “진짜 제빵기사의 고용을 흔드는 게 누군지 생각해볼 일”이라고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파리바게트가 지난 4개월 간 직접고용 대안을 마련하지 않아 발생한 부작용은 외면하고 최근 들어선 두 노조에 책임을 전가하는 논리다.

민주노총 산하 화학섬유산업노동조합 파리바게뜨지회는 지난 8월 설립됐고 지난 12일 한국노총 공공연맹 중부지역공공산업노동조합 산하 파리바게뜨 노조가 추가로 설립됐다. 두 노조는 지난 18일 파리바게트 본사에 공동으로 직접 고용을 요구할 것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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