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새해 대통령 박근혜가 “통일은 대박”이라고 외칠 무렵, 조선일보는 대대적인 ‘통일이 미래다’ 캠페인을 시작했다. 1년 뒤, 재단법인 ‘통일과 나눔’이 탄생했다. 재단 이사장은 친박 핵심인사였던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이었다. 그는 1975년 박정희 독재정부 시절 조선일보 청와대 출입 기자였고 당시 ‘영애’ 박근혜와는 주말에 테니스를 치던 사이였다. 그렇게 통일나눔펀드가 등장했다.

당시 공공기관과 지자체에서 반강제적으로 통일나눔펀드에 가입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관제 펀드’ 논란이 불거졌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선 4968명 전 직원이 펀드에 일괄 가입하기도 했다. 이무렵 조선일보 한 기자는 “통일과 나눔 기부 약정자를 부서 당 수십 명씩 찾아오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기업별로 통일나눔펀드 할당량이 내려올 것이란 흉흉한 소문까지 돌던 와중에 이준용 대림산업 명예회장은 그해 8월 2000억 원 대 재산을 통일나눔펀드에 기부하며 ‘판’을 키웠다.

▲ '통일과 나눔' 페이스북에 올라왔던 홍보 카드.
▲ '통일과 나눔' 페이스북에 올라왔던 홍보 카드.
시간이 흘러 박근혜는 탄핵되었고, 그의 ‘통일 대박’ 구호와 함께 통일나눔펀드도 잊혀졌다. 지금, 펀드는 어디서 어떻게 쓰이고 있을까.

2016년 ‘통일과 나눔’ 재무보고 현황에 따르면 2016년 10월14일에서야 이준용 명예회장의 대림코퍼레이션 주식 343만7348주가 재단으로 기부됐다. 해당 주식의 지난해 배당금은 60억 원 대로 알려졌으며 현금 가치는 2868억1231만원이다. 전체 통일나눔펀드의 96%를 차지하는 압도적 비중이다. 하지만 이 주식은 당장 돈으로 바꿔 쓸 수 없다. 비상장 주식이기 때문이다. 재단 쪽에선 상장을 원하고 있다. (관련기사=대림산업 회장이 조선일보 펀드에 2000억 기부한 사연)

대림 주식에 현금 기부금 69억7400만원을 합쳐 지난해 재단 수입은 2962억4700만원 수준이었다. 3000억 원에 가까운 수입으로 재단은 무엇을 했을까. 재무보고에 따르면 △통일공감대확산 3억1000만원 △글로벌 통일역량 강화 1억9000만원 △탈북민 지원 1억4000만원 △통일학술연구 1억 원 △남북 동질성회복 9800만 원 등 지난해 사업비 지출은 총 9억 원 수준에 그쳤다. 이어 인건비나 임대료 등에 해당하는 운영관리비로 11억을 썼다.

따져보면 재단은 이 많은 돈을 거의 쓰지 않고 있다. 조선일보의 영향력과 박근혜정부의 ‘통일대박’ 기조로 끌어 모았던 펀드 대부분의 사용처가 여전히 불명확하다. ‘통일과 나눔’ 재단 관계자는 “지난해 22곳의 개인 및 단체에 10억 원 가량을 지원했고 올해는 46곳의 개인 및 단체를 상대로 20억 원 가량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017년 통일나눔펀드 지원 사업에 선정된 개인과 단체들의 경우 사업별로 500만~1억 원을 지원받는데 선정배경과 예산, 구체적 사업 내역 등은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 2017년 통일과 나눔 펀드 지원사업 대상. 구체적인 사업 내용과 금액은 확인이 어렵다.
▲ 2017년 통일과 나눔 펀드 지원사업 대상. 구체적인 사업 내용과 금액은 확인이 어렵다.
재단 관계자는 “내년에는 기금 규모를 더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기부금이 함부로 쓰이지 않기 위해 신중하게 집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통일과 나눔’ 재단 이사회 내부에서도 기금이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올해 지원 사업으로 선정된 대한노인회의 ‘통일공감대 형성’ 사업의 경우 독일 통일 당시 서독 노인들이 어떻게 통일에 기여했는지 알기 위해 대한노인회 회원들이 내년 4월 독일에 방문하는 일정으로, 여기에 펀드가 집행된다. 앞서 대한노인회 회원 72만명이 통일나눔펀드에 동참한 바 있다.

올해 ‘통일과 나눔’ 주요 사업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 70주년 기념사업 △통일 대비 북한 개발 전략 연구 프로젝트 △대림산업 이준용 명예회장 기념사업 △신영균 탈북민 장학기금 등이다. 재단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와 관련해 기념메달과 기념 다큐멘터리, 기념 도서, 기념비를 제작할 예정이다. 지난해에도 재단은 통일 기원 메달을 판매했다. 이밖에도 탈북민 창업활성화포럼이나 탈북청소년을 위한 기초영문법 교재 개발비용 등에도 펀드가 투여된 바 있어 기금집행의 적절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관련기사=조선일보 통일나눔펀드 2232억은 어디로 갔을까)

재단 관계자는 “K스포츠재단과 미르재단으로 공익재단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우리의 경우 지금껏 문제된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통일과 나눔’ 재단은 2015년 출범 이후 170만 명이 기부에 참여해 총 3137억 원을 모금했다고 밝히고 있다. 모금액 규모와 모금과정에서 벌어졌던 논란을 감안해 지속적인 사회적 관심과 감시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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