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6일부터 4월18일까지 차명폰 통화내역을 보니 대통령과 259회 통화했다. 왜 이렇게 자주 통화했나?”(특검)
“자주 할 수 있죠. 통화하면서 (횟수를) 세나요? 검찰이 이슈화해서 그런데, 40년지기라 통화할 수 있다.”(최순실씨)
“무슨 대화를 그렇게 많이 했나?”
“그걸 물어보는건 실례다.”
“(대통령) 업무와 관련된 통화였나?”
“아니다.”

뇌물 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최순실씨가 ‘삼성그룹 433억 원 뇌물 사건’과 관련해 법정에서 최초로 입을 열면서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최씨는 구체적인 기억을 묻는 질문엔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모르쇠로, 특검의 위증 지적엔 “얼마든지 하라”는 맞대응으로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최씨는 20일 오전 서울고법 형사합의13부(정형식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삼성 뇌물 사건’ 항소심 15회 공판 증인으로 출석해 “질문의 키포인트를 말해 달라” “(검찰이) 독일을 한 번 갔다오든가, 말에 대해 연구해보든가…” “유도심문 하지 말고 정확히 물어봐달라” 등의 발언을 하며 특검 측을 수차례 질책하기도 했다.

최씨는 정유라씨 승마 지원 실무를 맡았던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와 2016년 1월11일 24회 연락을 주고 받은 것에 대해 “말 때문에 그랬겠지”라며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1월11일은 황 전 전무가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에게 ‘사장님 그랑프리급 말 170만 유로 허가 기다리고 있습니다’라는 문자를 보내고 박 전 사장으로부터 ‘오케이’라는 답을 들은 날이다. 특검은 이를 정씨에게 비타나V와 라우싱1233 마필을 구매해 주기 위해 삼성전자가 허가를 논의한 정황으로 보고 있다.

“(두 사람이) 왜 그렇게 문자를 보낸 것인지 모르겠다”는 최씨의 말에 특검이 “위증 선서했으니 정확히 이야기하라”고 지적하자, 최씨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모른다”고 말했다.

▲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인물 비선실세로 불린 최순실씨가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결심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민중의소리
▲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인물 비선실세로 불린 최순실씨가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결심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민중의소리

최씨는 자신이 아니라 2015년 독일에서 정씨를 돌봤던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가 말 구매에 관여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박 전 전무는 마필이 구매되기 한 달 전 최씨와 절연을 택한 후 한국으로 귀국했다.

최씨는 이에 대해 “순전히 박원오가 처음부터 개입해서(했다), 박원오가 말을 볼 줄 아니 말이 괜찮은지를 본 다음 결정하니(했다)”면서 박 전 전무에 대해 “(유라 승마) 도와준 게 아니라 자기가 먹고 살기 위해 독일에 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 업무수첩에 ‘승마협회’ ‘이재용 부회장 인사’ ‘올림픽 대비 선수 말 구입’ ‘승마협회 박원오 좌지우지 경계’ 등이 적힌 것에 대해 최씨는 “전혀 대통령에게 요청한 사실이 없다”고 모르쇠로 일관했다.

특검 측이 안 전 수석 수첩을 제시하며 질문을 거듭하자 최씨는 “수첩과 관련해선 증언을 거부하고 싶다”며 “저희 재판에서 여러 번 했었는데 일일이 답변할 이유가 없다”고 받아쳤다. 재판부는 즉각 “본인 재판과 관련해 유죄 판결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지면 거부할 수 있다”며 “단지 안 전 수석 수첩이라 모른다며 답변하지 않는 건 거부 사유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날 신문 과정에 최씨에 대한 질책성 발언으로 여러 번 개입했다. 최씨가 “검찰이 유도신문 한 것인지, 물어보는 게 뭔지 모르겠다”고 특검에 답하자 재판부는 “질문을 잘 들으세요. 질문 정확히 하잖아요”라고 최씨에게 말했다.

“뭘 또 이해가 안돼요. 서로 마찬가진데… (긴 한숨)”(최씨 발언) 최씨와 특검 간 신경전은 신문이 진행되는 내내 이어졌다.

삼성전자가 구매한 그랑프리급 말이 실상 정씨를 위한 게 아니었냐는 취지의 질문에 “아버지가 가방에 들어갔느냐 그런 이야기와 똑같다”며 “‘올림픽 로드맵’에 의한 건지 유라가 타기 위해 (그랑프리급 말에) 시승해본 게 아니다. 알아 듣겠느냐”고 받아쳤다.

특검이 동일한 질문을 하자 최씨는 곧 “아무나 다 시승한다”면서 “잠깐만 쉬면 안될까요? 제가 심장이 많이 좋지 않습니다. 한가지만 더 질문 받고 쉴까요?”라고 묻기도 했다.

최씨는 대통령과 차명폰으로 통화한 이유에 대해 “개인적인 일이라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2015년 7월, 2016년 2~3월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들 간 독대를 알았느냐’는 질문에도 최씨는 “그건 대한민국 대통령을 너무 무시하는 것 같은 질문”이라며 “나는 총수들 면담에 관심도 없다. 얻을 것이 뭐 있다고 관심이 있느냐. 재판장님 좀 쉬어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최씨 조카 장시호씨는 2015년 7월 경 최씨의 자택에서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 간 독대 일정표를 봤다고 증언했다. 최씨는 이에 대해 “장시호 플리바게닝이 너무 심한 사례 같다”면서 “장시호가 기억해내서 내 노트북 밑에 있는 걸 봤다는 것인데, 당시 내가 독일에서 귀국했을 때인데 말이 안된다”고 반박했다.

정호성 전 비서관 또한 최씨에게 독대 일정을 알려 준 적이 있다고 법정에서 증언한 바 있다. 최씨는 이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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