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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핸드메이드 코스메틱 브랜드 ‘러쉬코리아’(LUSH Korea, 영국 본사는 러쉬로, 한국 지사는 러쉬코리아로 표기)가 후원한 시민단체 목록이다. 러쉬는 자연에서 얻은 재료를 활용하여 화장품을 만드는 영국계 핸드메이드 화장품 회사다. 화장품 브랜드가 왜 시민단체들을 후원하는 것일까.

▲ 18일 서울 강남구 러쉬코리아 본사에서 만난 한주희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팀장이 본사 사무실 안에 마련된 후원단체 팸플릿이 놓인 공간에서 설명하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 18일 서울 강남구 러쉬코리아 본사에서 만난 한주희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팀장이 본사 사무실 안에 마련된 후원단체 팸플릿이 놓인 공간에서 설명하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미디어오늘이 지난 18일 만난 한주희 러쉬코리아 브랜드 커뮤니케이션&PR 팀장은 러쉬의 이러한 사회참여가 타 화장품 브랜드와 가장 차별되는 지점이라고 꼽았다. 또 이를 여러 SNS 플랫폼을 통해 알리며 미디어의 역할을 시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 화장품을 바르면 아름다워진다’는 광고가 아니라, ‘우리 화장품을 사용하면 당신과 세상이 함께 아름다워진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그래서 화장품 회사들의 필수라고 여겨지는 세일이나 광고를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여러 캠페인을 통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채널을 통해 고객들을 직접 만나고 있다.”

시민단체 후원은 그 캠페인의 일부다. 러쉬코리아는 2013년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Korea Animal Rights Advocates)에 1074만 원을 기부하는 것으로 ‘채러티팟’(Charity Pot) 활동을 시작했다. 영국 본사 러쉬에서는 이미 2007년부터 해오던 활동이다. 러쉬의 500여 개 제품 중 하나인 ‘채러티팟’을 구매하면 부가세를 제외한 모든 판매금이 시민단체 후원금으로 모은다. 러쉬코리아에서 후원을 할 적절한 시민단체를 고르고, 수익을 전달한다. 시민단체와 함께 영상을 만들고 콘텐츠를 홍보하기도 한다.

“러쉬는 환경, 인권, 동물 보호라는 세 가지 가치를 중점으로 두고 캠페인을 펼친다. 채러티팟은 직접 이런 가치에 맞는 활동을 하는 시민단체에 후원을 하는 방식이고, 이 외에도 다양한 자체 캠페인을 펼친다.”

▲ 러쉬코리아에서 진행한 '고 네이키드' 캠페인 활동 사진. 출처=러쉬코리아 홈페이지.
▲ 러쉬코리아에서 진행한 '고 네이키드' 캠페인 활동 사진. 출처=러쉬코리아 홈페이지.
지난 4월22일 지구의 날에는 ‘Go Naked!(고 네이키드!, 벗자는 뜻)’라는 캠페인을 벌였다. 과대포장에 반대하는 의미로 직원들이 속옷에 앞치마만 두르고 거리를 활보했다고 한다.

“본사와 매장 직원들, 참여를 원한 고객들이 모여 대학로, 강남, 명동, 이태원 등에서 옷을 벗고 행진했다. 과대포장 금지와 환경보호에 대한 각자 메시지를 담은 피켓을 들고서 말이다. 한 고객은 ‘시내에서 이렇게 벗고 피켓을 들고 걸어 다닌 경험이 처음’이라며 의미 있었다고 말했다. 러쉬 제품들은 포장 자체를 하지 않은 것들이 많다. 포장을 하더라도 재활용한 경우가 많다.”

러쉬는 영국 본사가 만들어질 때부터 이런 기조를 중심으로 뒀다. 러쉬 공동창립자 마크 콘스탄틴(Mark Constantine)은 바닷가에 죽어있는 새의 배 속에 플라스틱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환경에 이로운 화장품을 만들고자 했다고 한다.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창업자들이 모여 러쉬는 동물실험금지, 공정무역, 과대포장 금지 등 윤리를 중시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 러쉬의 다양한 슬로건들.
▲ 러쉬의 다양한 슬로건들.
러쉬코리아는 이런 캠페인을 위해 SNS 채널을 여러 개 운영하고 있다. 러쉬코리아 공식 페이스북은 4만6000명 정도의 팔로워를 두고 있다. 그 외 친환경적 삶에 대한 콘텐츠를 올리는 ‘러쉬 라이프’, 윤리적 산업, 인권, 동물 복지, 환경 관련 기사를 링크해주는 ‘러쉬 타임즈’, 제품을 만드는 사람과 그 과정을 이야기하는 ‘러쉬키친’, 문화 소식을 전하는 ‘고릴라아트하우스’, 캠페인 관련 단체들의 목소리를 담는 ‘솝박스’ 채널이 있다.

“제품을 홍보하는 채널이라기보다, 윤리적 소비를 이야기하고, LGBT 인권을 이야기하는 등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어서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다른 브랜드에 비해 ‘좋아요’가 많은 편은 아니다. 그런데 윤리적인 이야기를 하는 회사로 따지면 상위가 아닐까 생각한다.”

제품을 만드는 데도 다른 브랜드보다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한주희 팀장은 “제품 원료를 사 오는 것부터 고민이 시작된다. 라벤더를 사용한다고 하면, 라벤더가 어떻게 얻어졌는지, 만드는 과정에서 아동 노동 착취는 없었는지, 공정 과정에서 동물실험은 안 했는지 신경 쓴다”며 “모든 과정에서 ‘윤리’에 대해 고민 한다”고 말했다.

▲ 18일 서울 강남구 러쉬코리아 본사에서 한주희 팀장이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18일 서울 강남구 러쉬코리아 본사에서 한주희 팀장이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피곤한 이 과정들을, 직원들은 특별하게 여기고 자부심을 느낀다고 한다. 한주희 팀장이 러쉬코리아의 기업문화에 대해 글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한주희 팀장은 지적 콘텐츠 퍼블리싱 스타트업 ‘퍼블리’(PUBLY)에서 ‘My LUSH Life: 이상한 회사의 앨리스’라는 디지털 콘텐츠를 발행하기 위해 펀딩을 시작했다. 아직 마감까지 한 달 정도가 남았지만 이미 목표액인 100만 원을 넘겼다.

“책에 러쉬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나 업계 간의 문화 차이에 대한 생각도 넣었다. 러쉬를 선택한 이유는 기업의 가치가 윤리적이라는 것도 있었지만 사람들 때문이기도 하다. 러쉬가 강조하는 윤리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하는 노력과 함께, 자유로운 기업 문화 때문에 러쉬를 사랑하는 이들이 많이 모인 게 특징이다.”

▲ 퍼블리에서 진행된 한주희 팀장의 디지털 콘텐츠 'My LUSH Life: 이상한 회사의 앨리스'발행 프로젝트.
▲ 퍼블리에서 진행된 한주희 팀장의 디지털 콘텐츠 'My LUSH Life: 이상한 회사의 앨리스' 프로젝트.
윤리적 기업임을 강조하는 만큼 기업 내 불합리한 차별도 없애려고 노력한다. 한주희 팀장은 “러쉬에서는 염색하는 것, 문신하는 것, 퀴어인 것 모두 아무 상관이 없다”며 “물론 자신이 퀴어인 것을 말하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자신이 퀴어임을 드러내고 이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도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여전히 많은 한국 기업에서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기는 이들이 많은 상황이다.

“러쉬코리아는 매년 열리는 ‘퀴어 퍼레이드’에도 5년째 참석하고 있다. 올해에도 백여 명의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퍼레이드에 참여했다.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고 차별받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회사 내에서 이런 캠페인이 일회성이 아니기 때문에 입사 당시 이런 생각에 동의하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한주희 팀장은 “물론 이런 회사 분위기가 싫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라면서도 “하지만 우리는 일을 하면서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는 것에 동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러쉬를 사랑하는 직원들이 많은 이유도 분명 이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브랜드는 미디어다: 2004년 ‘파이낸셜 타임스’의 톰 포렘스키(Tom Foremski)가 “모든 브랜드는 미디어 기업이다”(Every company is a media company)고 말한 지 십여 년이 지났다. 이제는 ‘브랜드 저널리즘’을 하지 않는 기업을 찾기 힘들 정도다. 그렇다면 모든 브랜드가 미디어인 시대에, 기업들은 ‘미디어화’에 얼마나 역량을 쏟고 있는지 미디어오늘이 살펴본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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