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상암 MBC 앞에 깔린 레드카펫을 밟고 6명의 해직 언론인이 복직자가 되어 입장하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티끌이라도 앉을 새라 손으로 카펫을 정리하던 동료들의 모습마저 기사가 될 만큼, 그 순간은 MBC 조합원은 물론이고 지켜보는 많은 시민들에게 남다른 감회와 감상에 젖게 만들었지요. 두 번의 파업을 지켜봤던 10년차 방송작가인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MBC를 기대하며 여러분께 이 글을 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9월 경, 맡고 있는 프로그램에서 새 작가를 뽑기 위해 이력서 몇 통을 받았습니다. 한 작가의 이력이 눈에 띄더군요. 당시 파업 중인 방송사 중 한 곳에서 최근까지 근무했던 작가였습니다. 그 프로그램의 작가들은 제작거부에 동참한다며 불과 며칠 전에 성명서를 발표한 터였습니다. 면접 자리에서 물어봤습니다. 왜 벌써 새 일자리를 구하느냐고요. 그는 겸연쩍게 웃으며 돌아가는 건 어렵지 않겠냐고 되물었습니다. 하긴, 참 어리숙한 질문이었죠. 제작거부란 대부분의 작가에게 사직(辭職)을 의미하니까요. 설사 파업이 끝난다 하더라도 우리를 위한 레드카펫이 준비되어 있진 않겠지요.

▲ 전국언론노조 MBC본부가 지난달 27일 설치한 ‘사장 후보자에게, 질문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게시판에는 방송사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요구하는 방송인들의 호소가 적지 않게 담겨 있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전국언론노조 MBC본부가 지난달 27일 설치한 ‘사장 후보자에게, 질문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게시판에는 방송사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요구하는 방송인들의 호소가 적지 않게 담겨 있었다. 사진=김도연 기자

무려 7년을 해직 언론인으로 지내야 했던 여러분께 드리기는 참 송구한 이야기지만 파업은 저희 같은 방송사 비정규직 스태프에게도 참 추운 겨울입니다. 일자리를 잃는 건 다반사이고, 파업으로 인력이 줄어든 방송사에 남아 일을 계속 하는 이들은 장시간, 고강도 노동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누군가는 언제 방송될지 모르는 프로그램을 계속 만든다고 했습니다. 파업에 참여하는 본사PD가 제작을 지시했기 때문이었죠. 늦여름에 만든 방송은 지금도 나가지 않았고 당연히 그는 임금을 받지 못했습니다.

좀 억울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우리가 목소리를 높일 수는 없었습니다. PD와 기자 등 방송사 정규직 조합원들은 거리에서 ‘방송 정상화’를 외치는데, 세상은 그들의 정의에 귀 기울이고 있는데 우리가 지금 먹고 사는 고단함을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방송이 정상화 되면, MBC가 다시 ‘만나면 좋은 친구’가 되면 우리가 일하는 환경도 달라질까, 라고 자문해보면 좀 착잡하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일터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그 결과는 우리의 몫이 아니라고, 구경꾼 아닌 구경꾼이 된 듯 소외감도 느꼈죠.

▲ 지난 8일 첫 출근하는 최승호 신임 MBC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 지난 8일 첫 출근하는 최승호 신임 MBC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그런데 이번 파업의 끝은 좀 달랐습니다. 해직 언론인에서 극적으로 MBC에 복귀한 최승호 사장은 전에 없던 약속을 해주었습니다. 그는 방송사 비정규직 스태프의 노동조건 개선과 표준 계약서 도입 등 처우개선안을 정책 공약을 내놓았지요. 솔직히 좀 기분이 들뜨더군요. 전 이제껏 그런 정책을 약속하는 방송사 사장을 본 적이 없거든요.

복직한 이용마 기자도 말했습니다. ‘2012년 파업 때를 떠올리며 다짐했다. 아무리 억울해도 하소연할 곳 없는 약자들의 목소리를 담겠다’고. 저는 그 약속을 바로 여러분들의 일터에서부터 시작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만들 ‘공정방송’은 당연히 만드는 스태프들의 공정한 노동이 전제되어야만 하니까요.

지난 파업 때 묵묵히 그 겨울을 함께 견뎠던 동료들이 여러분의 곁에 있다고, 알려드리고 싶어 이 글을 씁니다. 그리고 새로운 MBC를 만드는 데에 저희가 기꺼이 함께 할 거라는 것도 알려드립니다. 최승호 사장의 약속이 보다 빨리, 더 널리 정의롭게 실현되도록 현장의 목소리를 더해 드리고 싶습니다.

프로그램을 만들 때 그러하듯, MBC 정규직 스태프와 비정규직 스태프가 한 팀이 되어 손을 맞잡고 해묵은 숙제를 풀어 가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진짜 ‘새로운 MBC'가 되길, 기대합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