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면 대통령 박근혜씨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이 2014년 하반기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청와대 안가에서 개별 면담을 했다는 구체적인 증언을 내놨다. ‘2014년 독대’와 관련된 모든 당사자가 부인·묵인을 하는 상황에서 법정에서 최초로 ‘목격담’이 제시됐다.

안봉근 전 청와대 제2부속실비서관은 18일 오전 서울고법 형사합의13부(정형식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삼성 뇌물 사건’ 항소심 14회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2014년 하순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 간 독대 의전을 챙긴 경험을 증언했다.

▲ 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 ⓒ민중의소리
▲ 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 ⓒ민중의소리
그에 따르면 2014년 11월 말 ‘정윤회 문건 유출’ 사태가 벌어지기 전인 어느 하순 즈음에 대통령과 일부 대기업 총수 간 독대가 여러 날에 걸쳐 청와대 안가에서 진행됐다. 당시 청와대 안가에서 대통령 수행·의전을 맡은 안 비서관은 독대 당일 대기업 총수 영전도 맡아 그들을 면담 장소로 안내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특검 조사 및 1심 재판에서 일관되게 ‘2014년 독대’ 사실을 부인했으나 안 전 비서관은 이날 “정확한 시기는 기억이 안나지만 청와대 안가에서 이재용 부회장을 영접한 것은 기억이 난다”고 증언했다.

압수된 안 전 비서관의 휴대전화엔 ‘삼 이재용’이라는 이름으로 이 부회장의 전화번호가 저장돼 있었다. 안 전 비서관은 이에 “2014년 독대 당시 이 부회장이 안가에 들어와 서로 인사를 했는데 그때 이 부회장이 연락처가 기재된 명함을 준 듯하다”며 “나중에 필요할 지도 몰라 이 부회장 번호를 저장해놓은 것 같다”고 밝혔다.

안 비서관은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도 독대 당일 청와대 안가에 있었고 독대 도중에 면담 자리에 배석해 이 부회장에게 인사를 했다고 증언했다. 안 전 수석은 이와 관련해 특검 조사 및 1심 재판에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취지의 진술을 내놨다.

안 비서관은 같은 시기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영전한 것과 관련해 “정 회장만 참석하는 줄 알고 준비를 했는데 어떤 분이 정 회장을 모시고 안가를 들어왔고 (다른 총수의 경우) 이런 적이 없어 의아하게 생각했다”면서 “그 분에게 면담 장소에서 나가달라고 하니 정 회장이 난감해하며 ‘건강이 좋지 않아 같이 있어야 한다’고 해 두 사람이 같이 방에 있었던 것이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특검은 이날 청와대 경호처 직원이 검찰 조사에서 ‘최순실씨가 거의 매일 청와대 관저를 출입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2014년 하순 주말에 최씨가 관저를 자주 방문했느냐’고 특검이 묻자 안 전 비서관은 “평일보단 주말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면서 “내가 관저에 근무하지 않아 얼마나 왔는지는 모르겠다”고 밝혔다.

‘4차례 독대 정황’은 특검 수사 기간 때부터 파악된 사실이다. 김건훈 전 청와대 경제수석실 비서관이 안 전 수석의 지시에 따라 작성한 ‘대기업 등 주요 논의 일지’ 문건에 ‘9/12 삼성, 9/15(?) 롯데, 9/16(?) 포스코, 9/17 LG, 10/15 두산, 11/26~27 현대차·CJ’ 라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9/12 삼성’은 2014년 9월12일에 대통령과 삼성그룹 총수가 단독 면담을 했다는 의미다.

이는 재판부에 이 부회장의 뇌물 혐의 심증을 심어줄 수 있다. 삼성 측 피고인들은 2014년 9월15일 첫번째 독대가 ‘5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예정없이 갑자기 진행된 5분 독대가 현안을 청탁하고 대가를 요구하는 자리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 박근혜씨가 지난 2015년 7월7일 경기도 평택 고덕 국제화계획지구 내 부지에서 열린 삼성전자 반도체 평택공장 기공식에 참석해 이재용 부회장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 연합뉴스
▲ 박근혜씨가 지난 2015년 7월7일 경기도 평택 고덕 국제화계획지구 내 부지에서 열린 삼성전자 반도체 평택공장 기공식에 참석해 이재용 부회장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 연합뉴스
특검은 이 시점을 전후로 청와대가 삼성전자 갤럭시5, 갤럭시노트4 등의 ‘스마트폰 의료용 센서 앱 탑재’ 현안을 인식하고 규제완화로 지원한 정황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통령 지시를 적은 안 전 수석 업무수첩 2014년 9월9·10일자 페이지엔 ‘총수면담 아젠다, 창조경제센터 투자계획, 일자리 애로사항… 총수준비, 정부가 시행령 등으로 할 수 있는 리스트, 지자체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리스트’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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