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노사와 대주주는 지난 10월 방송사 최초로 ‘사장 임명동의제’에 합의했다. 대주주의 ‘보도지침’ 등을 막기 위한 장치다. 소유-경영 분리는 모든 민영방송의 숙제다. SBS는 해당 합의문을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했다. 아직 노사 합의단계에 불과한 이 제도에 강제력을 부과하기 위해서다.

SBS는 올해 말까지 재허가 심사를 받는다. SBS는 재허가 심사 채점 결과 647점을 받았다. 650점에 이르지 못했으니 ‘조건부 재허가’를 받을 전망이다. 민영방송인 SBS의 경우 공영방송과 달리 소유-경영 분리, 경영 투명성 관련 세부 실적, 배당실적 등의 ‘현황’과 ‘개선의지’를 각각 평가받는다.

윤세영 전 SBS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사장 임명동의제를 도입하면서 ‘개선의지’는 보였지만 재허가 심사는 지난 4년 동안의 실적을 반영하기 때문에 ‘현황’에서는 낮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다.

▲ 서울 양천구 목동 SBS 본사 모습. ⓒ 연합뉴스
▲ 서울 양천구 목동 SBS 본사 모습. ⓒ 연합뉴스

SBS가 낮은 점수를 받은 항목이 과거 행적이라면 이를 개선하는 방안이 조건으로 제시되는 게 타당하다. SBS의 향후 과제는 소유-경영 분리를 실현해 보도·제작 자율성을 개선하는 것이다. 방통위가 재허가 조건으로 ‘사장 임명동의제’로 채택하면 좀 더 확실하게 보도·제작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 

방통위는 지난 6일 4기 방통위 업무과제를 밝히며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심사 시 보도·제작의 자율성과 중립성, 공적책무 이행 의지 등을 엄정히 심사하고, 재허가‧재승인 조건에 대한 철저한 이행 점검을 실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방통위 안팎에는 사장 임명동의제를 재허가 조건으로 하기엔 부적절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법적 근거가 없어 재허가 조건으로 포함하기 어렵다는 것. 

이와 관련 윤창현 전국언론노조 SBS본부장은 1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보도·제작 자율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라면 방통위가 권장해야 하는데 그런 움직임이 없다”며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방송법은 기본적으로 다른 법들과 충돌할 수 있다. 그래서 특별법이다. 예를 들어 상법으로 회사를 운영해야 하지만 KBS 등은 공영방송이라는 특수성이 있느니 법이 따로 있다. 민영방송에 대해서도 최대 주주지분 제한(40%)이 있지 않느냐. 다 방송의 독립성·공공성을 구현하기 위한 장치다. SBS를 포함한 민방들에는 법적 근거가 없는 재허가 조건들이 수없이 붙어왔다.”

▲ 박정훈 SBS 사장(왼쪽)과 윤창현 언론노조 SBS본부장이 지난 10월13일 사장 임명동의제를 합의했다. 사진=SBS 제공
▲ 박정훈 SBS 사장(왼쪽)과 윤창현 언론노조 SBS본부장이 지난 10월13일 사장 임명동의제를 합의했다. 사진=SBS 제공

윤 본부장은 “SBS 설립 허가 때 창업주 윤세영 회장이 SBS의 세전 이익 15%를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조건을 달았는데 아직도 강제력을 가진다”며 “이는 법적근거도 없고, 다른 방송사에도 없는 조건”이라고 말했다. 법적 근거가 있어야 조건으로 포함할 수 있다는 건 핑계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지금 노사 합의로 도출한 ‘사장 임명동의제’를 방통위 재허가 조건으로 넣어 법에 준하는 강제력을 부여해야 하는 게 타당한 방향이라는 설명이다.

방통위의 이번 정책과제 발표를 보면 방송의 공공성과 독립성이 아닌 방송사업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측면이 있다. 방통위는 그간 지상파들이 요구했던 중간광고 허용을 시사했다. SBS노조는 SBS 대주주와 사측이 ‘청와대에 잘 보이는 대신 중간광고를 얻을 수 있다’는 논리로 보도국을 교묘하게 통제했다고 지적해왔다. 방송사업자들이 다시 중간광고를 따내기 위해 정부의 눈치를 볼 유인을 또 한번 던진 셈이다. 국민들의 시청권보다 방송사업자의 요구를 우선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이 6일 과천정부청사에서 문재인 정부 방통위 정책과제를 발표하고 있다.
▲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이 6일 과천정부청사에서 문재인 정부 방통위 정책과제를 발표하고 있다.

언론노조 등은 민영방송 대주주의 지분제한을 강화해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했다. 하지만 방통위는 4기 정책과제를 통해 지역방송의 소유·겸영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대주주의 권한을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민영방송들의 지역성·공공성·제작자율성 등이 더욱 훼손될 우려가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현 방통위가 SBS 사장 임명동의제를 재허가 조건으로 넣을지 의문이다. 이와 관련 방통위 지상파방송정책과 관계자는 1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SBS 사장 임명동의제 포함) 요구를 충분히 알고 있고, 그 부분에 대해 논의 중에 있다”며 “논의 중간이라 아직 관련 내용을 말하기는 어렵다”고 답했다.

윤창현 본부장은 “방통위가 재허가 조건이 아닌 강제력 없는 권고사항 정도로 가져가겠다면 지난해 촛불혁명과 그속에서 터져나온 방송정상화의 흐름과 동떨어진 건 아닌지 되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방통위를 지켜보는 눈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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