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만큼만 담은 배추김치입니다.”

“햇볕을 받고 있는 벽돌입니다.”

“먹을까 하다가 그냥 지나친 타코야끼 집입니다.”

▲ 무자극 컨텐츠 연구소의 게시물.
▲ 무자극 컨텐츠 연구소의 게시물.
‘무자극 컨텐츠 연구소’는 지난 6월 개설된 페이스북 페이지다. 사진 한 장에 사진 설명 한 줄. 보통 올라오는 콘텐츠는 이렇게 간결하다.

콘텐츠 내용은 어느 집에나 있을 법한 가구, 음식이나 출퇴근길에 흔히 볼 수 있는 풍경들이 대다수다. 그런데 하나의 사진에 달리는 ‘좋아요’ 수는 1000개가 넘는다. 페이지를 오픈한 지 반년도 안됐지만 ‘좋아요’ 수는 5만 명 이상이다. 웬만한 중소 언론사 못지않은 규모다.

▲ 무자극 컨텐츠 연구소의 게시물.
▲ 무자극 컨텐츠 연구소의 게시물.
미디어오늘은 도대체 누가 이런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는지 만났다. 지난 13일 서울 대흥역 인근에서 만난 ‘무자극 컨텐츠 연구소’ 운영자 무씨(가명)는 “세상엔 자극이 너무 많고, 특히 페이스북에는 자극적인 콘텐츠가 너무 많았다”며 “자극이 적은 콘텐츠들을 올려서 자극적인 피드들 사이에 띄워, 일종의 ‘밀어내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가 지금까지 올린 콘텐츠는 총 140개 정도다. 출퇴근 시간이 왕복 2시간이라, 보통 이 시간에 콘텐츠를 올리거나 페이지에 댓글을 다는 등 관리를 한다고 한다. 주말에도 시간을 할애해 댓글을 달기도 한다. 

인기가 가장 많았던 ‘무자극’ 콘텐츠는 ‘심신이 편안해지는 구석자리’라고 써서 올린 지하철 구석자리 사진이다. ‘좋아요’가 3000개 정도 눌렸다고 한다.

▲ 무자극 컨텐츠 연구소의 게시물.
▲ 무자극 컨텐츠 연구소의 게시물.
“아침 출근길에 그 자리가 비어있으면 정말 너무 기쁘다. 다른 분들도 왠지 모르게 그 자리를 선호할 것이다. 그 자리가 비어있는 것을 보고 기분이 좋아서 사진을 찍고 앉았다. 누구의 일상에서든 있는 사진인데 실제로 찍는 사람은 많이 없는 것 같다.” 지하철 구석자리 외에도 ‘먹을 만큼 담은 배추김치’ 같은 사진도 좋은 반응을 끌어냈다.

무씨는 정확히 말하면 ‘무자극’이 아니라 ‘저자극’ 콘텐츠를 올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세상에 무자극이라는 것은 죽음 외에 없다고 생각한다”며 “피로를 유발하는 자극을 모두 차단할 수 없으니, 편안한 느낌과 머리를 비울 수 있는 시간을 통해 균형을 찾자는 의도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저자극 콘텐츠를 선별해 올리지만 ‘너무 자극적이다’라는 피드백을 받은 적도 있다. “두 번 정도 진지한 피드백을 받은 적 있다. 길을 가다가 ‘김삿갓’이라는 소주 광고를 봤는데 카피가 ‘소주 위의 소주’였고, 실제로 소주 광고 위에 붙어 있더라. 너무 웃겨서 그걸 찍어 올렸는데 ‘그냥 짤방 페이지랑 비슷하네’라는 피드백이 왔다. 그 피드백이 자꾸 마음에 걸려서 결국 그 사진을 삭제했다.”

▲ 책으로 만들어진 '무자극 컨텐츠 연구소'를 들고 있는 페이스북 관리자 무씨(가명). 사진=정민경 기자.
▲ 책으로 만들어진 '무자극 컨텐츠 연구소'를 들고 있는 페이스북 관리자 무씨(가명). 사진=정민경 기자.
페이지를 보면 ‘정말 별 거 아니다’라고 생각되지만 이 프로젝트는 페이스북 페이지 흥행을 넘어 출판까지 성공시켰다. 최근 펀딩을 통해 1079만 원을 모았다. 목표한 400만 원을 2배 넘긴 펀딩액이었다. 무씨는 “마지막에 참여를 많이 해줘서 생각한 것보다 많은 돈이 모였다”며 “펀딩을 시작할 때, 팔로워가 4만 명 정도였다. 1%만 돈을 내도 펀딩이 성공할 것 같아서 원대한 꿈을 품고 시작했다”고 말했다.

책 기획을 제안한 출판자 지현씨(가명)는 “원래 ‘무자극 컨텐츠 연구소’ 구독자였고, 못 찍은 사진이 당당하게 올라오기에 재미있어서 구독했다”며 “사진에 딸린 한줄 설명도 잘난체하지 않고 담백해서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지현씨는 “최근 영상 트렌드가 ‘삼시세끼’처럼 담백하고 깔끔한 것인데, 이걸 영상이 아닌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보여준 점도 새롭다고 생각했다”며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보여준 것을 책으로도 옮기고 싶어 출판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지영씨 외에도 이 페이지에서 댓글을 달고 즐기는 독자들은 “정말 별 거 아닌데 괜히 치유가 된다”, “소소한 기쁨이 최고인 것 같다”, “일본영화처럼 느껴진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정도 모금액이면 페이지를 활용해 여러 수익사업을 할만도 했다. 무씨는 “페이지를 통해 광고 요청이 몇 번 온 적이 있긴 하다”며 “하지만 ‘무자극 컨텐츠 연구소’의 페이지 정체성을 해치지 않는 광고는 아직 없었다. 만약 정체성을 해치지 않는 광고가 들어온다면 함께 기획을 해볼 생각도 있다”고 밝혔다.

무씨는 다음 프로젝트로 전시회를 열고 싶다고 밝혔다.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많이 하고 싶다. ‘무자극 컨텐츠 연구소’와 가장 잘 맞는 광고를 경매로 구해본다거나, 만우절 같은 날 자극적인 조미료 광고를 싣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꼭 해보고 싶은 것은 미술관에서 전시를 하는 일이다. 이전 인터뷰에서 ‘책을 내고 싶다’고 말했는데 이뤄진 것처럼 곧 이뤄질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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