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이하 레진)를 세무조사 해달라는 청와대 청원이 시작된 지 일주일 만에 4만 8000여명이 서명했다. 레진의 △지각비 제도 △웹소설 서비스 일방 종료 △해외 서비스 관련 정산 늦장 등의 문제를 지적한 청원글에 이어 트위터 등 SNS에서 레진에 피해를 입었다는 작가들의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청원글의 반응이 커지면서 레진 역시 공식입장을 내놨지만 논란은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 웹툰 업계 종사자들과 전문가들은 “레진에서 터진 여러가지 문제의 본질은 레진이 ‘작가주의’를 표방해 오면서도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으려고 하는 점과 미숙한 대응 체제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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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짜 마감’ 보다 하루 이틀 빠른 ‘마감’에 못 맞추면 내는 지각비

레진은 웹툰 작가들에게 연재 마감 전 하루나 이틀 전에 자체 마감을 정하고 이 마감에 원고를 내지 않는 작가들에게 지각비를 걷어왔다. 청원 글을 올린 작가 A씨는 “레진은 실제로 업로드 지체로 인한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작가 매출의 일부(최대 9%)를 떼어갔다”며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천만 원대의 지각비를 낸 작가도 있다는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고 썼다.

미디어오늘이 접촉한 레진의 웹툰작가 B씨 역시 지각비를 낸 적이 있다고 했다. B씨는 “원고를 조금 늦게 냈다고 업데이트 시간에 문제가 생긴 것도, 수익에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닌데 몇 만원이 넘는 금액이 빠지다니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며 “월 정산에서 저절로 계산하여 지각비를 가져가는 행태는 도대체 누굴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지각비로 천만 원대를 냈다는 작가는 레진코믹스에서 ‘월한강천록’을 연재했던 회색 작가다. 이 작가는 암에 걸려 투병하는 와중에도 지각비를 냈다고 밝혔다. 회색 작가는 자신의 트위터에 “저는 지금껏 천만 원이 넘는 지각비를 내 왔다”며 “통장을 확인해 보니 레진은 제가 암에 걸린 사실을 알고 난 뒤에도 제 고료에서 지각비를 차감했다”고 썼다.

▲ 회색작가의 트위터.
▲ 회색작가의 트위터.
논란이 커지자 레진은 지각비를 2월1일부터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즉각 폐지가 아니라 작가들은 불만을 제기했다. 현재도 레진의 작가들은 지각비를 내고있는 것이다. 이에 레진은 “지각비를 폐지하기 위해서는 작가들과 별도 서면으로 합의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이유를 밝혔다.

13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레진 측은 “마감이 지켜지지 않으면 독자들에게 신뢰를 잃기 때문에 도입한 제도였다”며 “작가들의 상황을 고려해 월 1회 늦는 상황은 지각비를 부과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또한 레진 측은 회색 작가와 관련된 건에서 “해당 작가에게 복귀일을 미루는 것을 제안했으나 작가가 이를 거절했다”며 “해당 작가의 트위터를 통해 퍼진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아 담당 PD와의 대화를 공개하기도 했다”고 해명했다. 

▲ 레진이 공개한 회색작가와의 대화.
▲ 레진이 공개한 회색작가와의 대화.
2. ‘웹소설 공모전’ 열고, 신입 작가에 연재 제안해놓고 갑작스럽게 웹소설 서비스 중단

“지난 6월, 레진코믹스 웹소설 담당자로부터 연재 제안 메일을 받았다. 개인적 이유로 거절하긴 했으나, 8월 경 레진에서 소속 작가들과 충분한 협의 없이 졸속으로 웹소설 서비스를 종료한다는 공지를 확인했다. 6월 말일에 신규 서비스를 준비한다고 제안을 한 플랫폼이 8월에 신규 서비스는커녕 기존의 서비스를 두 달 남짓한 시간에 운영 문제를 이유로 종료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미디어오늘이 접촉한 웹소설 작가 C씨의 말이다. C씨는 “레진 측의 앞뒤가 다른 해명과 비상식적인 업무 처리에 대해 화가 난다”며 “레진이 대형 플랫폼이 갖추어야 할 체계적인 시스템없이 비상식적인 운영을 해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레진 측은 “이에 대해 정말 드릴 말씀이 없고 죄송하다”면서도 “지속적 수익악화에도 서비스를 이어온 이유는 웹소설 부문의 영업 실적이나 누적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시장을 개척하고 서비스를 발전시키면 언젠가 반드시 작가들과 회사 모두에게 의미 있는 성공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을 기대하며 운영해 왔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레진 측은 “계약종료의 책임이 저희에게 있기 때문에 회수되지 않은 선인세는 당연히 포기하고, 서비스 종료 직전 3개월 평균 정산금액과 최종월 정산액 중 더 높은 액수의 2배를 보상했다”며 “종료 공지일 이전에 일러스트를 보내주신 경우에 사용 여부와 상관없이 100%, 사전 검수를 위한 시안이 제공된 경우에도 단가의 50%를 지급했다”고 설명했다.

▲ 레진코믹스에 대한 청와대 청원글.
▲ 레진코믹스에 대한 청와대 청원글.

웹툰작가 B씨는 미디어오늘에 “레진은 작가들이 항의를 하자 작가들의 전화를 계속 받지 않았다”며 “메인에 웹소설 서비스 중단을 알릴 때도 텍스트로 작게 공지했었다”고 지적했다.

이 작가는 “큰일을 저질러놓고도 반발을 대충 모른 척 무시하고 넘어가다 그게 안 되겠다 싶으니까 그제야 작은 대응 하나 하는 식”이라며 “이게 바로 여태껏 계속 봐온 레진의 행동방식이었다”고 꼬집었다.

3. 해외서비스 정산, 2년 동안 미뤘다

회색작가는 자신의 블로그에 지난 5일 ‘저는 레진코믹스에 2년만에 돈을 받았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작가는 “중국에서 3년 간 연재해 온 작품이 나도 모르는 사이 연재 중단이 됐다”며 “1월에 이를 담당PD에게 물었지만 8월까지 답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 작가는 “레진 측은 유통사에게 돈을 받지 못했다고 했으나 실제로 유통사에 전화해보니 매 분기 정산을 해줬다고 한다”며 “직접 레진에 찾아서 2년간의 밀린 수익을 받았다”고 썼다.

▲ 회색작가의 블로그 글.
▲ 회색작가의 블로그 글.
해당 작가의 폭로 이후 해외 서비스 고료 및 정산을 받지 못했다는 작가들의 폭로가 줄줄이 이어졌다. 이에 레진은 공식 입장을 통해 “고료 문제가 가장 중요함에도 작가님께 사전에 충분히 설명 드리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다”면서도 “실제 중국에서 3년 동안 발생한 작가님의 수익이 같은 기간 한국에서 발생한 수익의 약 0.2% 수준에 그쳤다”고 밝혔다.

레진이 해당 공개 입장을 밝힌 이후 또 논란이 일어났다. 회색작가의 수익을 허락 없이 공개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레진은 공식입장에서 “회색작가님께서 지금까지 레진코믹스 한국 서비스를 통해 정산 및 입금 받으신 실입금액은, 2013년 11월부터 2017년 9월까지 총 3억1000만원”이라며 “3년 동안 매달 꼬박꼬박 총 3억1000만원을 입금해드린 레진코믹스가, 리스크를 안고 굳이 49만원을 드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썼다.

레진 측은 13일 미디어오늘에 “회색작가는 앞서 지난 11월 본인이 지각비로 2천만 원 상당을 냈다고 공개해, 스스로 자신의 정산 수익이 최소 2억 원 상당임을 추정케 한 바 있다”며 “작가가 본인의 최소 수익이 추정 가능하도록 공개한 후, 해외정산 관련해 왜곡된 내용을 확산해 구체적인 작가수익을 밝히게 된 특수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 레진코믹스 홈페이지.
▲ 레진코믹스 홈페이지.
“다양한 문제 터졌지만 본질은 같다”

이처럼 레진에 대한 작가들의 폭로와 레진의 입장 발표, 레진의 입장 발표 이후 또 새로운 논란은 반복되고 있다. 레진과 작가들의 갈등은 깊어만 가고 있다.

성상민 만화평론가는 13일 미디어오늘에 “2015년부터 레진에 대한 문제는 계속해서 제기돼왔는데, 다양한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지만 본질은 같다”며 “레진 측은 ‘레진에 오면 이렇게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며 계속해서 홍보했지만 실제로 작가 관리를 위한 인력 투자 등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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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내놓은 2017년 통계 중 웹툰 플랫폼별 연재중 작품 수를 살펴보면 웹툰 플랫폼 연재 총 작품 수 2760편 중 레진의 작품이 310편으로 가장 많았다. 타 플랫폼보다 2배 정도 많은 연재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적은 인력으로 작가들을 관리하면서 문제가 계속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성상민 평론가는 “지각비 같은 이슈를 보면 레진이 작가들과의 소통이나 인력확충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닌, 리스크를 피해가려는 방식으로만 접근한 것이 보인다”며 “레진은 끊임없이 ‘우리는 다른 웹툰 플랫폼과 다르다’는 것을 홍보해왔지만 정작 작가들의 작업 환경에 대해서는 이해가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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