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광주에서 자유한국당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가 있다.

자유한국당 전남도당 당사다. 광주역에서 금남로를 바라보고 왼쪽으로 꺾으면 증흥동에 위치한 자유한국당 전남도당 당사 건물이 나온다.

과거 자유한국당(구 한나라당) 당사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이 곳이 당사인지 헷갈릴 정도로 열려있는 정당 사무실의 모습을 갖추지 못했다. 건물 2층에 자리한 당사 입구는 철제문으로 막혀 있고, ‘한나라당’이라는 간판도 작게 표시돼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자유한국당 당사 앞은 광주 시민들의 단골 집회 장소였기 때문에 건물 전체 창문이 철제로 둘러싸여 있었다.

광주시민에게 자유한국당(구 한나라당)은 분노와 울분을 일으키는 원흉과 같은 존재였다. 5·18이 되면 자유한국당 당사 앞은 광주시민으로 넘쳐났다. 촛불집회를 해도 자유한국당 당사는 필히 거쳐 가야 하는 코스였다.

분노한 시민이 돌과 달걀 등을 당사를 향해 던지면 철제로 둘러싸여 있다고 해도 창문이 깨지기 일쑤였다. 때문에 창문을 수리하지 않고 아예 그대로 놔두기도 했다. 철제로 둘러싸인 붉은 색 벽돌 건물과 깨진 창문을 멀리서 보면 흡사 폐가와 같은 모습으로 보이기도 했다.

최근 자유한국당 전남도당 당사는 새롭게 리모델링을 했다. 일단 간판이 산뜻해졌다. 입구 구석에 작게 자리잡았던 간판은 2층 전면으로 옮겨갔다. 누구나 이곳이 자유한국당 전남도당 당사라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바뀌지 않은 게 있다. 건물 전체 창문은 철제로 둘러싸여 있다. 여전히 자유한국당과 광주시민 사이 괴리가 크기 때문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푸념을 했다. 홍 대표는 지난 8월3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오늘 호남지역을 방문한다. 호남에서 우리가 왜 이렇게 푸대접 받고 홀대를 받아야 하는지 나는 이해하기 참 어렵다”면서 “우리가 5·18 특별법을 만들고, 5·18을 민주화 운동이었다고 규정하고 5·18의 주범인 전두환 노태우를 우리가 처단했다”고 말했다. 나아가 “망월동 국립묘지를 성역화한 것도 우리가 했다. DJ가 한 것이 아니고 YS때 신한국당이 했다. 그렇게 다하고도 왜 우리가 호남으로부터 홀대를 받고 핍박을 받아야 하는지 그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 대표의 발언은 일정 부분 맞다. 5·18 특별법을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이 발의했고, 5·18 묘역 조성을 시작한 것도 YS 정권이었다. 하지만 당시 5·18 특별법을 가장 먼저 발의한 건 야당이었고, 전국의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특별법 통과를 압박해 법 통과가 이뤄졌다.

무엇보다 홍 대표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놓치고 있는 것은 여전히 광주 시민에게 자유한국당은 5·18 주범인 전두환 일당이 만든 민정당의 후신이라는 사실이다. 홍 대표가 호남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할 게 아니라 철저한 반성을 통해 호남의 정서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얘기다.

전두환 신군부의 민정당은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자당으로 변신했다. 이후 신한국당, 그리고 한나라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지난 2012년 대선 때 다시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꾼 뒤 박근혜 탄핵이후 자유한국당이 됐다.

자유한국당 반대로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안이 통과되지 못했다. 13일 국회 국방위원회는 특별법안을 심의했지만 의결을 보류시켰다. 자유한국당이 공청회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면서 돌연 법안 통과 반대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은 줄곧 5·18 특별법 취지에 공감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5·18 당시 광주 시민을 향해 집단 발포한 명령 체계를 밝히고 헬기 사격 여부, 최근 조사 중인 희생자 암매장 의혹을 밝히기 위해 독립위원회를 꾸린다는 특별법에 반대할 이유는 전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법안 통과 막판 공청회를 앞세워 통과를 가로 막았다.

▲ 광주 증흥동에 위치한 자유한국당 전남도당.
▲ 광주 증흥동에 위치한 자유한국당 전남도당.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방위원들은 “국방위 법안소위는 두 법안(5·18 특별법과 군사망 사고 특별법)의 공청회를 생략하기로 했다”면서 “여야 위원의 열띤 토론 끝에 합의된 수정안이 전체회의에 상정됐는데 한국당 위원들이 공청회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법안 처리를 무산시켰다”고 비판했다.

강훈식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광주 시민들의 피맺힌 한을 풀어주고 과거의 잘못된 역사와 단절하기 위해서라도 5·18 특별법은 올해 안에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밝혔다.

5·18 진상규명을 위한 법을 막아놓고도 호남이 왜 자유한국당을 푸대접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자유한국당이 바뀌지 않으면 자유한국당 전남도당 당사의 창문은 영원히 철제로 둘러싸여 있을지 모른다. 덤으로 창문도 계속 깨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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