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늘리기’라는 프레임
보수언론은 특히 공무원 증원에 초점을 맞췄다. 정부가 무리한 대선공약을 지키기 위해 ‘공무원 밥통 늘리기’를 오기로 밀어붙인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불필요한 자리에서 시간을 보내는 공무원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냐며 힐난했다(5일 조선일보 사설). 소방·치안 등 안전과 민생 등 늘어나는 공무원의 실제 구성은 도외시한 채, 공무원 일반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 선입견에 기댄 전형적인 ‘프레임 만들기’였다.
그러나 보수언론은 이렇게 말하기 쉬운 양비론도 이번에는 강조하지 않았다. 4일 여야 3당의 협상안이 타결된 후에도 여전히 예산안 자체에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중앙일보는 법정기한을 얼마 넘기지 않고 타결된 건 “불행 중 다행”이지만 “문제투성이 슈퍼 예산에 기가 막힐 뿐”이라고 했다(5일 사설). 조선일보는 ‘양보와 타협’을 평가하기는커녕 타협에 합의한 야당에 화살을 돌렸다.
통과되자 야당에 화살
이어 예산안이 본회의를 통과하자 야당 비판은 극에 달했다. 우선 국민의 당에 공격을 퍼부었다. 여야 합의안을 지킨 국민의 당에게 ‘위장 야당이 맞다’고 하고(중앙), 예산안 처리는 정부여당과 국민의 당이 짬짜미한 결과(동아일보)라는 것이다. 호남지역 예산 증액 등을 밀실에서 흥정해 야합했다는 것인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따로 비판하면 될 일인데, 여태껏 스스로 중도 정당을 표방해온 제3당에 예산안 통과의 책임을 지우는 것은 번지수가 틀려 보인다. 국회가 막판에 선심성 지역예산을 끼워 넣는 작태는 어제오늘 일도, 여야 가릴 일도 아닌 제도개선 대상인데 이걸 가지고 절차적 정당성을 시비 삼기는 어렵지 않은가. 절차로 따진다면 오히려 의총을 열어 합의안을 거부하고 투표에 참가하지 않은 자유한국당이 더 문제 아닌가.
반드시 막아내었어야 했다고?
그렇다면 자유한국당은 어째야 했을까? 이들 신문의 논조에서는 전략을 잘 세우고 반대논리를 치밀하게 펼치라는 피상적 주문 외에는 읽히지 않는다. 오히려 “보수야당으로서는 반드시 막아냈어야 할 예산”(중앙 7일)이 통과됐으니 ‘정체성을 망각한 정치적 배임행위’를 저질렀다(조선 7일)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법정기한에 연연하지 않는 파행적 투쟁이 연상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그렇다면 이들에게는 혹시 의회 민주주의의 소양이 결여되어 있는 건 아닐까?
주지하다시피 현실정치는 정책 기조와 가치가 다른 정치세력들의 협상이 이루어지는 장이다. 독재가 아닌 한 자신의 정체성을 온전히 관철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국민의 선택에 따라 보수, 진보와 같은 정치세력들이 정부를 떠맡거나 의회를 구성한다. ‘큰 정부’ ‘적자 재정’ ‘소득주도 성장’ ‘보편복지’를 표방하는 정부-여당이나 ‘작은 정부’ ‘균형 재정’ ‘기업주도 성장’ ‘선별복지’를 옹호하는 야당 모두 양보와 타협 없이는 의회 민주주의하에서 자신들의 정책을 구현할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오늘날 야당에게 보수의 정체성을 강도 높게 주문하는 언론들은 여야 간의 대립을 격화시켜 자신들의 입지를 도모하려는 것 같다. 아니면 정말 “자유한국당은 없다”는 단언처럼 혹시 보수언론들이 야당을 대체하려나.
※ 이 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행하는 웹진 ‘e-시민과언론’과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