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그룹이 ‘주 35시간 근무제’를 도입하며 ‘임금하락 없는 노동시간 단축’ 방침을 표명한 데 대해 대형마트 노동자들이 “저임금 노동자의 노동강도를 배로 만들어 재벌들 배를 불리는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마트산업노동조합(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산하)은 12일 오전 신세계백화점 본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가정 양립이 가능한 진짜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한다”며 “신세계·이마트는 월급 총액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과 단축된 노동시간만큼 신규인력 충원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마트는 신세계그룹에 속한 대형마트다.

이들이 기자회견을 연 까닭은 지난 8일 신세계그룹의 방침 발표 이후 저임금 노동자 입장을 반영한 언론보도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전수찬 마트산업노조 이마트지부 위원장은 회견에서 ‘신세계이마트 주35시간 시대 개막’, ‘신세계의 ’착한실험‘, ’정용진 부회장님! 그뤠잇!‘ 등의 기사 제목을 거론하며 “주 35시간이 갖고 올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고통과 절망에 대해 단 한번의 확인도 없이 거의 모든 언론사들이 앞 다퉈 신세계 이마트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옮겨 적었다”고 말했다.

지난 8일 신세계그룹이 발표한 주 35시간 근무제 골자는 △하루 7시간 근무(출근시간에 따라 탄력 적용) △임금 하락 없는 노동시간 단축 △선진국 수준으로 업무 생산성 향상 등으로 오는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근로계약서 상 기재되는 월 소정노동시간은 209시간에서 183시간으로 줄어들게 된다.

▲ 마트산업노동조합(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산하)은 12일 오전 신세계백화점 본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세계·이마트는 월급 총액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과 단축된 노동시간만큼 신규인력 충원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 마트산업노동조합(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산하)은 12일 오전 신세계백화점 본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세계·이마트는 월급 총액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과 단축된 노동시간만큼 신규인력 충원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임금 삭감 없어? 최저임금 인상 무력화 노림수 아니냐”

마트노조는 신세계 안대로 노동시간이 단축된다면 최저임금 인상 효과가 무력화된다는 입장이다. 월 기본급이 늘어나지 않아도 월 소정노동시간이 줄어들면서 시급이 자동적으로 법정 최저임금 기준을 상회한다는 점에서다.

노조가 2020년까지 법정 최저임금(법정 최저시급×월 근로 209시간)과 이마트 월 급여 전망치를 분석한 결과, 무력화 효과는 해마다 심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기준 이마트 월임금은 145만 원(시급 6938원)이고 법정 최저임금은 135만2230원(시급 6470원)으로, 이마트 최저임금 노동자들은 법정 최저선보다 9만7770원을 더 받는다.

노조 전망에 따르면 이 차이는 2018년 8230원으로 줄어든다. 10% 인상 기준으로 계산된 2018년 이마트 월임금 158만2천원에서 157만3770원(7530원×209시간)을 뺀 결과다. 노동시간이 209시간에서 183시간으로 감소함에 따라 이마트 최저임금 노동자의 2018년 시급은 8644원으로 증가한다.

2019년부터는 법정 최저임금이 이마트 월임금을 능가한다. 2019년 이마트 예상 월 임금은 170만6천원(시급 9322원)으로 8800원 최저시급 기준인 법정 최저임금 183만9천원보다 13만3천원이 적다. 2020년엔 차이가 26만 원으로 늘어난다. 2020년 최저시급 1만원을 기준으로 계산되는 209만원(209시간 노동) 월 급여에서 이마트 예상 월급여 183만원(183시간 노동)을 제외한 값이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까지 인상한다는 공약을 세웠다.

노조, 퇴직금·야간수당 축소 전략 의혹 제기

노조 분석에 따르면 퇴직금, 야간노동수당 등 기본급 외 급여도 줄어든다. 위와 같은 예상치로 퇴직금을 분석한 결과 2017년 97만7700원 차이분은 2018년 9만530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이후 법정 최저임금 기준 퇴직금이 이마트 노동자의 퇴직금을 능가해 차액이 2019년엔 159만6천원, 2020년엔 338만 원으로 법정 최저임금 퇴직금이 더 높게 책정된다.

노조는 폐점 시간 1시간 단축도 야간노동수당 감축을 통한 인건비 절감 효과가 더 크다고 주장했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영업시간도 단축됨에 따라 밤 12시에서 11시로 폐점시간을 앞 당기는 점포가 늘어날 전망이다.

올해부터 밤 11시로 폐점 시간을 앞당긴 이마트 동인천점의 경우 마트 폐점을 맡은 직원이 받는 야간수당이 9개월 기준 149만 원 가량에서 44만 원 수준으로 감소했다. 전 위원장은 “이마트는 밤 12시까지 일한 24시 마감조에게 심야수당2라는 교통비를 지급했다”며 “이마트 전체 인건비에서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밤 11시 폐점은 이것을 줄이고자하는 국민 기만 사기극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 신세계그룹 근로시간 단축 방침 관련 보도
▲ 신세계그룹 근로시간 단축 방침 관련 보도

인력 충원없는 노동시간 감소 → 노동강도 증가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사의 민주노총 산하 노조가 결성한 마트노조는 야간노동 축소를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그럼에도 마트노조가 반발하는 이유는 임금총액 보장, 인력 충원 등이 병행되지 않는 노동시간 단축은 진정성 없는 일·가정 양립 대책이라는 점에서다.

마트노조는 이미 주 35시간제를 택하고 있는 롯데마트를 사례로 들었다.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근무하는 이현숙 사무국장은 “보통 마트는 10시에 열지만 신선코너의 경우 7~8시에 출근하고 영업직도 9시 이전에 출근하기도 한다”면서 “일·가정 양립이라면 아이들이 엄마, 아빠를 필요로 할 때 노동자들이 가정에 있을 수 있는 것인데, 인력이 부족해 연차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현장이 마트”라고 말했다.

마트노조 분석 결과 152개 이마트 점포 기준 직고용 인원은 2015년 12월 2만8178명에서 2016년 11월 2만6875명, 2017년 11월 2만5779명으로 2년 새 2399명이 줄었다.

진 위원장은 “마트는 일의 총량이 정해져 있어 영업시간을 단축해도 노동강도는 줄어들지 않는다”면서 “신세계그룹 발표 이후 이마트는 직원들 상대로 노동시간 단축을 설명하면서 인력 충원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노동자 일·가정 양립, 임금 높아져야 가능”

노동시간 축소는 노동계의 오랜 요구사항이었다. 대한민국 연간 노동시간은 2015년 기준 211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 수준 1800시간보다 313시간이 더 많다.

그럼에도 마트노조가 반발하는 이유에 대해 김기완 마트노조 위원장은 “최저임금 노동자들에게 강제 단시간 근무는 임금총액 삭감 외엔 아무 의미가 없다”며 “일·가정 양립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회사와 단체교섭 중인 홈플러스 노조는 5~7시간 단시간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8시간으로 늘리는 조건을 요구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단시간 마트노동자들 대부분이 월급을 충분히 받고 싶어도 일자리가 그렇게 제공되니 어쩔수 없이 택한 것”이라며 “자발적 단시간 노동을 제외하면 대부분 8시간 일하고 싶다는게 저임금 노동자들의 기본 요구”라고 말했다.

진 위원장 또한 “이마트 주 35시간제는 노동강도는 높이고 지급해야 할 임금총액은 줄이고 각종 인건비는 가면 갈수록 줄이는 기막힌 꼼수”라며 “최저임금 1만원시 임금총액 209만원 약속 없는 노동시간 단축은 기만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마트 소속 마트노조 조합원 3인은 이날 기자회견이 끝난 후 회사 측에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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