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마·정영하·강지웅·박성호·최승호·박성제가 돌아왔다.

11일 아침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에는 이들을 반기기 위한 레드카펫이 깔렸다. 언론노조 MBC 본부 조합원 600여 명은 “어서 와, 복직은 처음이지?”라고 쓰인 노란 손수건을 목에 매고 약 300미터 길이의 ‘복직 축하길’을 만들었다.

오전 8시 38분경, MBC 사옥 정문 앞에서 복직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최승호 신임 사장을 비롯한 5명의 복직자들은 길게 늘어선 동료들과 일일이 손을 마주치며 MBC로 들어섰다. 복막암 투병 중인 이용마 기자는 아내와 사장실에 머무르다 1층 로비에서 합류했다.

▲ 박성제·최승호·정영하·강지웅·박성호 등 5명의 복직자가 11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동료들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박성제·최승호·정영하·강지웅·박성호 등 5명의 복직자가 11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동료들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MBC 복직자 6명 전원이 11일 서울 상암동 사옥 로비에 마련된 출근 행사 무대 앞에 섰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MBC 복직자 6명 전원이 11일 서울 상암동 사옥 로비에 마련된 출근 행사 무대 앞에 섰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1층 로비 무대 앞에 선 복직자들은 그동안 MBC를 지켜 온 후배들에게 MBC 사원증을 받았다. 2012년 해고 이후 이용마 2108일, 정영하·강지웅 2079일, 박성호 2022일, 최승호·박성제 2001일 만에 ‘방문증’ 없이 출입할 수 있게 됐다.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은 정영하 기술감독은 “6명이 온전히 같이 서게 돼서 너무 기쁘다. 5년 동안 (동료들에게) 받기만 했는데 잘 갚겠다”고 말했다. 박성호 기자는 “지지해준 시민 여러분이 제 뒤에 함께 들어온 것 같다”고 말했다.

▲ 박성제 기자가 11일 자신에게 사원증을 걸어준 후배 전예지 기자와 포옹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박성제 기자가 11일 자신에게 사원증을 걸어준 후배 전예지 기자와 포옹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복직 선배' 권성민 PD(오른쪽)가 11일 최승호 사장에게 사원증을 걸어준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복직 선배' 권성민 PD(오른쪽)가 11일 최승호 사장에게 사원증을 걸어준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복직자들은 앞으로 MBC가 재건을 넘어 새롭게 태어나도록 힘쓰겠다고 입을 모았다. 박성제 기자는 “개학을 앞둔 초등학생 심정이다. 사람들을 보고 싶은데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된다는 부담감이 있다”고 말했다.

“레드카펫을 지나면서 아이돌과 스타들이 이런 기분이었구나 생각했다. ‘정신줄’ 놓을 뻔 했다”며 너스레를 떤 강지웅 PD는 “여기 서있는 사람들 정년퇴임이 10년도 안 남았는데 분골쇄신해서 고통받았던 후배들이 즐겁게 생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복직자 신분으로 참석한 최승호 사장은 “우리 모두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고 MBC 구성원들을 격려한 뒤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넘칠 수 있도록 많은 분들게 희망을 보여주자”고 말했다. 지난 1일 이용마 기자의 리영희상 수상소감에 빗댄 말이다.

이용마 기자는 “병상에서 물끄러미 벽을 바라보다 12월 대선 예정일을 발견했다. 순간 몸서리쳤다”며 “촛불시민의 위대한 항쟁이 없었다면 우리는 패배감에 젖어 어찌할지 모르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분들의 목소리를 모든 프로그램에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또 “6개월 가까운 파업이 진행되는 동안 주류 언론은 우리를 철저히 무시했다. 억울함을 외쳐도 반영되지 못해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가 많을 것이다. 언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권력에 대한 감시·비판이지만, 동시에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대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용마 복직기자가 휠체어를 탄 채로 6년 10개월 만에 MBC 보도국으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이용마 복직기자가 휠체어를 탄 채로 6년 10개월 만에 MBC 보도국으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11일 복직자들과 함께 출근한 강지웅·최승호 PD가 동료들에게 받은 꽃다발을 들고 사원증을 출입구에 태그하며 들어서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11일 복직자들과 함께 출근한 강지웅·최승호 PD가 동료들에게 받은 꽃다발을 들고 사원증을 출입구에 태그하며 들어서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출근길 행사를 마친 이용마·박성제·박성호 기자는 보도국으로 올라갔다. “이용마 선배의 경우 노동조합 일을 했기 때문에 6년 10개월 만”이라고 왕종명 MBC 기자협회장이 설명했다. 한정우 신임 보도국장이 복직자들을 꽃다발로 맞이하며 “열심히 일하라”고 당부했다.

이용마 기자와 마주한 한정우 국장은 “(지금은) 고상한 저널리즘을 하기에는 많이 어수선하다. 먼저 들어온 성제·성호, 선후배들이 몇 달 안에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놓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렸다 몇 달 안에 다시 보자”고 당부하며 눈물을 훔쳤다.

이용마 기자는 “제 건강 상태를 걱정하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최근에 ‘용궁’ 몇 번 다녀왔다. 상태가 썩 좋지는 않다. 그런데 여러 선후배 동료들을 보니 정말로 힘이 난다.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 같다.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보도국 동료들은 복직자들에게 경량 패딩, 지압 슬리퍼, 가습기, 칫솔·치약 등 ‘회사 생활 필수품’을 상자에 담아 건넸다. ‘MBC NEWS’가 적힌 마이크를 집어 든 복직자들은 바이라인으로 복직 소감을 마쳤다.

“MBC 뉴스 박성제입니다.”
“MBC 뉴스 박성호입니다.”
“MBC 뉴스 이용마입니다.”


다음은 해직자 6명의 출근 소감 전문

① 정영하 기술감독

고마워요. 조금만 생각하면 울먹울먹해서 시선을 어디 둬야 할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금요일부터 그랬어요. ‘해직 막내(가장 늦게 해고된 최승호 사장)’가 큰일을 했습니다. 복직도 시켜주고 MBC를 재건하기 위해, 국민의 품으로 돌리기 위해서 이렇게 나란히 서게 해줬습니다. 용마와 함께하고 있어서 너무 좋고, 6명이 온전히 같이 서 있게 돼서 너무 기쁩니다.

걱정도 많았고 염려도 많았지만 내색하기 힘들었고, 다 잘 될 거라고 얘기는 했지만 겁도 났습니다. 하지만 오늘까지 잘 온 건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를 반겨주는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반갑고 너무 고맙고 지난 5년 동안 받기만 했는데 앞으로 잘 갚겠습니다. 반갑습니다.

② 강지웅 PD

원래 직종이 PD라서 카메라 앞에 서는 건 여전히 익숙하지 않습니다. 레드카펫을 지나오면서 아이돌과 스타들이 이런 기분이었구나, 충격적이었고 정신을 놓을 뻔했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여러분은 믿지 않겠지만 저는 이런 날이 올 거라는 걸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천기누설할 것은 MBC가 이제 다시 예전처럼 좋은 직장으로 돌아갈 것이고 예전보다 더 좋은 직장 될 거라는 점입니다. 어차피 여기 서있는 사람들은 정년퇴임이 10년도 채 안 남았는데 분골쇄신해서 그동안 고통받았던 후배들이 즐겁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MBC는 전 세계 최고의 방송사가 될 겁니다. 모두 믿으시죠? 감사합니다.

③ 박성제 기자

집회에서 5kg 감량했다고 말했는데, 2kg 더 감량했습니다. 이 양복이 가을 양복입니다. 11월 초에 샀는데 겨울에 입어도 무난할 거 같아서 입었습니다. 어제 잠자리에 들면서 박성호 기자가 전화했습니다. ‘형 싱숭생숭하지 않아?’ 우리가 개학 앞둔 초등학생 같다고 말했습니다. 학교 가고 싶은데 가기 싫은 거, 새 친구, 못 봤던 사람 보고 싶은데 가서 공부 열심히 해야 되니까 그런 부담감이 있습니다.

너무 기쁘고 아침에 환영해주셔서 정말 행복한데 지금부터 MBC 지켜보시고 해직 언론인들이 제대로 하겠지, 기대하는 분들이 많아서 부담 큰 것도 사실입니다. 이따 저녁에 환영행사 해주신다니까 모두 다 잊고 행복한 느낌 간직하면서 지내겠습니다. 내일부터 MBC 재건 위해 열심히 하겠습니다.

④ 박성호 기자

5년 10개월 전 처음 해고될 때 직장인으로서 목숨은 잃었지만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는데 약속 지켰습니다. 여러분 덕분입니다. 잘렸을 때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여기 와서 보니까 조합원, 사원 여러분이 함께 해주셨고, 우리를 지지해준 시민 여러분이 제 뒤에 함께 들어온 거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멋있는 말 생각해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 되고, 집에 와서 좋습니다. 저랑 이름 모르고 인연 없는 사람들 많을 텐데 MBC 식구라는 이유만으로 응원과 관심 보내주신 것, 빈말이 아니라 그거 때문에 버텼습니다. 관심과 응원이 사람을 얼마나 일으켜 세우는지 느꼈기 때문에 우리가 받은 것들을 돌려줬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⑤ 최승호 PD

지난 9년 동안 MBC 공동체가 받은 탄압의 정도는 언론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 탄압에 우리 공동체는 끝까지 저항했고 힘 합쳐서 이 순간 만들어냈습니다. 이 순간까지 해직자들 지켜주면서 서로 격려하면서 회유를 이겨내면서 함께 끝까지 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워할 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췄습니다. 우리 모두는 자랑스럽고 대한민국 사회에서 어디 내놔도 뒤지지 않을 공동체입니다. 마침내 정의가 승리하는 모습을 국민께 보여드렸습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넘칠 수 있도록 우리 모습이 많은 분들께 희망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또한 한가지 잊어선 안 되는 부분은 우리 승리에 국민 시민이라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우리 맘속에 들어왔다는 겁니다. 항상 품고 방송으로서 마음 표출하고 마침내 대표 공영방송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지금까지 드라마도 해피 엔딩, 영웅의 드라마지만 정말 MBC가 앞으로 날아오를 때 승리의 대하드라마 완성될 겁니다. 우리 모두 함께 갑시다.

⑥ 이용마 기자

MBC 선후배 동료 여러분 정말 반갑습니다. 이제 조합원 동지 여러분 대신 선후배 그리고 MBC 구성원 여러분이라는 표현을 써야 될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된 새로운 시대입니다. 2012년 3월 해고되던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오늘이 올 것을 의심해본 적 없습니다. 우리는 정정당당한 싸움으로 정의를 대변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꿈이 오늘 실현됐습니다.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는 일인데 막상 현실이 되고 보니까 정말 꿈같습니다. 깨어나고 싶지 않은 꿈, 자다가 꿔본 적 많죠? 정말 다시 깨고 싶지 않은 꿈을 꾸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 병상에서 물끄러미 벽을 쳐다보고 있었어요. 그때 제 눈에 벽에 걸려있던 달력이 들어왔습니다. 올해의 끝을 장식하는 12월, 그 12월에 빨간 날짜가 두 개 있었습니다. 하나는 성탄절이고 하나는 다음주 수요일, 원래 대통령 선거가 예정됐던 날입니다. 그걸 보면서 순간 몸서리쳤습니다. ‘야 이게 예정대로 다음주에 대선 치러진다면 우리에게 아직도 멀었겠구나’. 정말 몸서리가 쳐졌습니다. 그 어렵고 힘든 시절을 우리 함께 싸워서 이겨냈고 결국 이 자리에 우리가 모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잊지 맙시다. 이 자리에 우리가 서게 된 건 엄동설한을 무릅쓰고 나와주셨던 촛불시민들의 위대한 항쟁, 그게 없었다면 우리가 여기 서 있을 수 있었을까요? 아마 아직도 우리는 암담함과 패배감에 젖어서 어찌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촛불 시민들의 항쟁, 그분들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뉴스, 시사, 교양, 드라마 모든 방송 프로그램에 그분들의 목소리가 담길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또 하나, 2012년 170알 파업했던 무려 6개월 가까운 파업을 하던 그때 주류 언론이 우리를 어떻게 다뤘습니까? 철저히 무시했습니다. 파업 100일이 지나도 MBC 파업을 알지 못하는 국민이 상당수였던 당시 비통한 심정, 억울한 심정 하소연할 데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자신의 억울한 목소리를 아무리 외쳐대도 이 사회에 반영되지 못해 고통받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분들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언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권력 감시와 비판이지만 동시에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대변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주위 돌아보십시오. 여러분의 동료입니다. ‘39일 파업’, ‘170일 파업’, ‘72일 파업’ 무려 1년 가까이 길거리에서 허비하면서 싸웠던 동지들이 바로 옆에 있습니다. MBC 구성원이 하나 돼야 합니다. 내 옆에 가장 믿을만 한 동지가 있다는 것, 이보다 든든한 게 어딨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MBC 사상 처음으로 ‘집합적 지혜’라는 게 이렇게 위대하다는 걸 보여주는 회사가 되면 좋겠습니다.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지혜를 빌릴 수 있는 공동체 사회를 만들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꿈 같은 현실이 영원히 지속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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