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가 광고를 방불케 하고 있다. 주요 방송사들이 일제히 농협이 출시한 ‘고기 자판기’ 홍보성 리포트를 쏟아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지난달부터 이달 4일까지 지상파·종합편성채널 뉴스를 모니터한 결과 MBC·KBS·채널A·MBN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농협의 ‘무인 고기 자판기’를 노골적으로 홍보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가장 노골적인 건 MBC와 채널A였다. MBC뉴스데스크는 지난달 22일 “고기도 자판기로…편하고 값싸게”를 보도했다. 배현진 앵커는 “한우와 국내산 돼지고기를 파는 자동판매기가 처음으로 등장했다”면서 “무인 판매이기 때문에 가격이 착해진 게 최대 장점”이라고 소개했다. 리포트에서는 소비자가 자판기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시연장면’을 내보낸 데 이어 세부적인 상품까지 클로즈업하며 화면에 노출했다.

▲ 농협의 '고기 자판기'를 노골적으로 소개한 MBC와 채널A의 메인뉴스 화면 갈무리.
▲ 농협의 '고기 자판기'를 노골적으로 소개한 MBC와 채널A의 메인뉴스 화면 갈무리.

채널A 역시 24일 뉴스A에서 “‘20% 싸게’ 한우 자판기 놓는다”기사를 통해 기자가 직접 자판기에서 상품을 구입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상품을 노출했다. 채널A는 “특히 저렴한 가격이 장점”이라며 “상위 등급인 등심 100g을 마트 가격보다 20% 저렴한 수준으로 살 수 있다”고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KBS와 MBN은 노골적이지는 않았지만 우회적으로 홍보성 리포트를 내보낸 점은 같았다. KBS 뉴스9는 지난 4일 부정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우 농가의 위기 극복 사례로 ‘고기 자판기’를 다뤘다. KBS는 “핵심은 가격이다. 점포 운영비와 인건비를 절감해 한우 가격을 40% 가까이 낮췄다”고 강조했다.

MBN 뉴스8은 지난달 28일 “상담부터 고기도 판매…자판기의 진화” 리포트에서 ‘진화된 자판기’의 사례 중 하나로 ‘고기 자판기’를 소개했다. 이 리포트 역시 “시중보다 20% 싼 가격에 한우 등심부터 양념 고기까지 메뉴도 다양하다”는 대동소이한 설명이 이어졌다.

이처럼 소재는 물론 가격을 강조하는 내용까지 유사한 홍보성 리포트는 농협의 보도자료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농협은 지난달 22일 보도자료를 내고 “점포 운영비 등 유통비용을 최소화하여 한우고기 소비자가격을 20% 이상 인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힌 바 있다.

▲ KBS와 MBN은 각각 '한우 농가의 위기극복 방안'과 '자판기의 진화' 사례를 조명하면서 농협의 고기 자판기를 홍보하는 리포트를 내보냈다.
▲ KBS와 MBN은 각각 '한우 농가의 위기극복 방안'과 '자판기의 진화' 사례를 조명하면서 농협의 고기 자판기를 홍보하는 리포트를 내보냈다.

물론, 이 같은 보도가 한우농가를 위한 ‘공익적 성격’이 있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이와 관련 민언련은 “보도자료를 그대로 영상으로 만들어주는 이런 의심스럽고도 게으른 방법이 아니더라도, 한우농가의 어려움을 설명하고 알릴 방법은 있었을 것”이라며 “기자가 만드는 것이 보도가 아닌 광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이 같은 보도는 방송심의규정 위반 소지가 있다. 방송심의규정은 △방송프로그램은 방송광고와 명확히 구별되도록 할 것 △특정 상품, 서비스, 기업, 영업장소 등에 대해 자막과 음성, 소품 등을 통해 광고효과를 주는 것 금지 △ 정보전달을 목적으로 상품 등을 소개하더라도 특정업체 또는 특정상품 등을 과도하게 부각시켜 경쟁업체나 경쟁상품 등에 불이익을 줄 수 있는 내용 방영 금지 등이 명시돼 있다.

광고와 보도의 경계가 모호한 리포트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SBS는 지난 5월 ‘8뉴스’에서 “숨은 기능 찾는 재미도 ‘쏠쏠’…유머까지 갖춘 음성 비서” 리포트에서 삼성 스마트폰 음성비서 서비스 ‘빅스비’를 소개했다. 이 리포트에는 4명이 나와 해당 기능을 사용하는 모습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모두 삼성 홍보팀 관계자로 드러났다.

삼성이 신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제품 기능을 시연하는 홍보성 리포트가 쏟아지기도 한다. 지난 8월 민언련 모니터 보고서에 따르면 JTBC를 제외한 모든 지상파 방송사와 종편이 삼성 갤럭시8 제품 소개를 메인뉴스에서 다뤘다.

홍보성 보도 자체도 문제지만 그 이면에는 음습한 거래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15년 공개된 ‘MBN 미디어렙 영업일지’에 따르면 2014년 12월6일 MBN ‘경제포커스’는 공기업들의 자원외교 실패사례를 집중적으로 보도하면서 예외적으로 한국전력은 성공사례를 부각했다. 알고 보니 MBN과 한전이 협찬을 맺은 대가였다.

해당 문건에는 농협도 등장한다. MBN은 ‘경제포커스’에서 농협 하나로마트로부터 3000만 원을 받고 하나로마트에서 판매 중인 과일과 해산물 등을 방송 소품으로 썼다. 또 농협이 MBN과 협찬을 맺고 교양 프로그램에 관련 아이템을 내보낸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앞서 19대 국회 때 배기운 민주당 의원실이 농협이 돈을 주고 언론사가 기사를 써주는 형식의 기획보도 사업에 한해 많게는 30억 원이 넘는 예산을 집행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협찬은 방송사와 광고주가 직거래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어도 밝혀내기 힘든 상황이다. 방통위는 지난 6일 정책과제를 발표하고 “협찬이 투명하게 거래되고, 건전한 제작재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협찬제도 개선방안을 2018년까지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협찬의 기본원칙 수립, 금지항목 설정, 협찬 세부내역 방통위 제출 의무화 등이 개선안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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