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새해 예산안이 진통 끝에, 지난 5일 간신히 통과됐고. 이후 언론에서는 이번 예산안의 규모와 의미를 분석하고 문재인 정부의 내년 국정운영방안을 전망하고 있다. 그리고 언론의 이런 다양한 분석 속에는 이번 예산안 협상을 이끌어온 원내 정당들의 손익계산도 포함돼 있다.

언론이 분석한 대차대조표는 비슷하다. 최악은 자유한국당이다. 이 당은 자신들이 거세게 반대하던 법인세 인상을 막을 뻔 했지만 막지 못했다. 원내지도부가 예산안을 합의했는데 소속 의원들이 ‘야합’이라 부르는 촌극도 찍었다. 본회의를 보이콧 하겠다고 해놓고 본회의가 열리자 국회의장 단상에 몰려가 “왜 우리 없이 본회의를 여느냐”고 따진 장면은 코미디 같았다.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한국당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지금 한국당은 보수 정당 책임을 망각한 정치적 배임을 저지르고 있다. 민주당이 한국당은 없는 것처럼 취급했다는데 실제가 그렇다”고 주장했다. 지속적으로 초대기업·부자 증세를 반대하고 복지 확대를 반대해 온 조선일보이기에, 사설에선 허탈감이 느껴진다.

언론이 바라본, 최대 이익을 본 정당은 국민의당이다. 존재감도 실리도 다 챙겼다는 것이 언론의 평가다. 사실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이 대척 관계에 놓인 상황에서 국민의당이 캐스팅보터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현실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자유한국당과의 협상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봤고 결국 국민의당을 공략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이니, 국민의당에 대한 평가는 후했다. JTBC 뉴스룸은 4일자에서 국민의당에게 “예선정국 캐스터보터”라는 평가를 내렸다. 중앙일보도 같은 날 “국민의당이 40석의 힘을 보여줬다”며 “존재감도 실리도 챙겼다”고 했다. 조선일보 역시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이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사이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고 평가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도 7일 김어준의 tbs라디오에 출연해 “예산이 이번에 성공적으로 통과됐다”며 “(역할을) 제대로 했죠, 그래서 모든 국민과 특히 언론이 국민의당의 존재감이 확인됐고 국민의당 때문에 예산이 통과됐다는 찬사를 받아본 것은 모처럼 받아본거에요”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렇다. 국민의당은 국회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충분히 활용했고 난항에 부딪힌 예산안을 통과시킨 1등 공신이 됐다. 국민의당 입장에서는 모처럼 존재감도 확인했다. 덕분에 7일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1.2%p 지지율이 오르며 5.8%를 기록하기도 했다. 오차범위 내(95%신뢰수준 ±2.5%p)의 의미 없는 상승폭이지만, 원내 지지율 꼴찌정당은 탈출했다.

▲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와 이용호 정책위의장, 이언주 원내수석부대표가 지난 7월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자료를 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사진=노컷뉴스
▲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와 이용호 정책위의장, 이언주 원내수석부대표가 지난 7월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자료를 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사진=노컷뉴스
그런데, 이것은 ‘정치’의 관점에서 봤을 때 그렇다. 원내 정당간의 역학관계를 살펴보면 분명 국민의당은 잘했다는 소리를 들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뉴스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국민들이다. 국민들의 입장에서도 과연 국민의당이 존재감을 드러냈다는, 그런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판단은 국민의당이 캐스팅보터로서 주도한 이번 예산의 변화과정을 봐야 내릴 수 있다. 사실 이번 예산안 수정안 중에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복지예산의 축소와 SOC(사회간접자본) 예산의 증가였다. 세부 내역을 보면 보건·복지·고용분야의 예산은 146조2천여억원에서 144조7천여억원으로 삭감된 반면, SOC 예산은 17조7천여억원에서 19조가량으로 늘었다.

물론 SOC가 불필요한 예산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여러 언론에도 보도됐듯 SOC예산을 늘리는 과정에서 이른바 ‘쪽지예산’이 횡행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한 예산에서 국민 다수를 위한 예산을 줄이는 대신, 자신의 선거를 위한 선심성 예산이 늘어난 셈이 됐고, 일부 국민의당 의원들은 자당의 지위를 활용해 심하게 지역구를 챙겼다는 보도도 나왔다.

예를 들자면, 국민의당 이용호 정책위의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신의 지역구인 순창의 밤재 터널과 옥정호 수변도로 공사를 위해 기재부 담당 예산국장에게 (이 예산을 편성하지 않으면) “예산합의를 통째로 깨버리겠다”는 말을 했다고 스스로 폭로했다.

국민의당 국회 예결위 간사였던 황주홍 의원은 8일 기자들에게 광주일보의 보도 내용을 메일로 보냈다. 여기에는 “국민의당 예결위 간사인 황주홍 의원이 내년도 정부 예산 심의에서 광주~완도 고속도로 건설 사업 예산을 무려 1000억원이나 증액하면서 정치권의 화제가 되고 있다”, “단일 사업으로 한 해에 1000억원이나 증액한 사례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 천억은 어디서 나온 돈일까?

반면 정부 원안에서는 전 아동에게 월 10만원의 아동수당을 지급하기로 되어 있던 ‘아동수당’이 소득 상위 10%를 제외한 수정안으로 통과됐다. 이로 인해 아동수당 지급을 위해 들여야 할 사회적 비용은 더 커지게 됐다. 상위 10%를 가려내는 일이 번거로운데다가 얼마 간 차이도 나지 않는 소득에 10만원을 받고 못 받고가 갈리게 됐으니 형평성의 문제까지 제기됐다.

법인세도 정부 원안은 2000억 초과 대기업에 한해 최고세율 25%를 매기도록 되어 있었다. 하지만 국민의당과 자유한국당이 반대해 최고세율 구간이 2000억에서 3000억 초과로 늘어났다. 이에 25%의 법인세율을 물어야 하는 기업 수는 129개에서 77개로 줄었고 연간 세수 효과도 3000억원 가량 줄어들었다. 정부의 세수가 그만큼 감소한 것이다.

결국 국민의 입장에서 국민의당의 행위를 ‘성공’으로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일부 언론은 국민의당의 행위에 후한 평가를 내렸다.(물론 쪽지예산이 폐해에 대해 지적하는 기사들도 역시 있었다) 정치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기 때문이다.

물론 지역구 국회의원이 지역구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반론도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지역구만 챙기고 이를 통해 다음선거를 노리는 일부 국회의원들의 행태에 죄없는 국민들의 삶만 붕괴돼왔다. 결국 국민의당의 존재감은, 기자에겐 오히려 선거제도 개편의 필요성으로 다가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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