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등 보수야당이 ‘동성애 혐오’ 프레임으로 지지층 결집을 꾀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도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성적 지향’을 삭제하자는 개정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김 의원이 인권위법을 개정하려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성소수자 단체뿐만 아니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법조인들도 인권위법의 목적을 근본적으로 위반하는 것이라며 반대 의견을 냈다. 이에 김 의원은 인권위법에서 ‘성적 지향’을 삭제함으로써 생기는 문제점에 대해 공감하며 대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면 왜 김 의원은 이 같은 논란을 뻔히 예상하고도 현행 인권위법상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 사유에 해당하는 ‘성적 지향’ 규정을 삭제하려고 했을까.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 사진=김도연 기자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 사진=김도연 기자
김 의원이 지난달 21일 동료 의원들에게 공동 발의를 요청한 인권위법 일부개정법률안의 골자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간접고용 등 비정규직이 불합리한 차별을 받는 경우도 인권위가 진정을 받아 사건을 조사·처리할 수 있도록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에 ‘고용형태’도 추가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아울러 김 의원은 “현행법상의 ‘성적 지향’이라는 표현이 동성애를 옹호하고 동성애에 대한 긍정적인 가치판단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오해가 발생하고 있어 이를 삭제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 의원은 이 법안이 법제실 검토도 마쳤다고 밝히며 동료 의원들에게 공동 발의를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인권위법에서 ‘성적 지향’ 문구를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법에서 모든 성적 지향을 존중해야 한다고 규정한다면 예를 들어 소아성애 등 범죄자들도 존중해야 하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의학계에서 유전과 호르몬, 환경적 영향의 결합으로 결정된다고 하는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은 성적 취향(sexual preference)과 전혀 다른 개념이다. 동성애자 반대론자들이 우려하는 소아성애와 같은 ‘성적 취향’은 이미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등 현행법으로도 처벌하고 있는 범죄 행위다.

지난 6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수자인권위원회가 낸 의견서에 따르면 성적 지향이란 성적으로 또는 정서적으로 어떤 성별에 이끌리는지를 지칭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성적 지향인 동성애는 이성애와 마찬가지로 가치중립적인 개념이며 이성애보다 열등하다거나 부정적이라고 판단할 수 없다.

장서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8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성적 지향은 보통의 이성애·동성애·양성애를 의미하는 것으로 소아성애 등 주장은 사실상 객관적 사실을 오도하려고 쓰는 말”이라며 “성적 지향은 성소수자 인권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국제인권규범에서 통용되는 개념어이고,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 금지가 소아성애 등까지 포함하는 개념이 전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 지난 7월15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18회 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하는 기독교단체 회원들이 동성애 반대 피켓 시위를 벌였다. 사진=민중의소리
 지난 7월15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18회 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하는 기독교단체 회원들이 동성애 반대 피켓 시위를 벌였다. 사진=민중의소리
또한 인권위법 개정론자들은 동성애 반대 표현 중 차별·증오 발언이 아닌 단순한 의견표명까지도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로 오해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권위법에서 규정하는 ‘성적 지향’ 차별행위는 성소수자가 고용과 교육·훈련, 재화·용역·교통수단·상업시설·토지·주거시설의 공급이나 이용 등과 관련해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 혐오 표현(hate speech)까지 제재하진 않는다.

장서연 변호사는 “성소수자에 대한 적개심이나 폭력을 선동하고 차별을 조장하는 혐오 표현에 대한 제재는 현재 인권위법에서 규정하고 있지 않고 외려 입법 미비 상황”이라며 “인권위법이 단순히 동성애에 반대하는 의견표명까지 문제 삼는 게 아니다”고 반박했다.

민변 소수자위도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금지와 성소수자의 인권은 대한민국헌법과 법률에서 보장하고 있고, 대한민국이 가입·비준한 국제인권조약에서 인정하는 권리”라며 “그러나 국내 특정 종교인들이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적개심을 부추기고 있고, 일부 정치인들이 이처럼 소수자 집단에 대한 혐오와 폭력 행위에 문제의식 없이 동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행 인권위법은 이러한 차별을 방지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므로 성소수자를 포함한 모든 인간에 대한 존중, 인권과 정의를 위한 의정활동을 해 주길 바란다”며 “우리는 (김경진 의원의) 개정안이 합리적 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조장할 위험성이 크다고 판단하므로 발의 철회를 촉구한다”고 당부했다.

이에 대해 김경진 의원실 관계자는 “성적 지향을 삭제할 경우 나올 문제점이 있을 수 있어 우리가 중간자적 입장에서 대안을 찾아보려고 한다”며 “아직 성적 지향 삭제를 확정한 것은 아니고 당내에서 공감하는 분들과 의견수렴을 좀 더 하고 내용을 다듬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내용으로 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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