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편은 축제인데 여긴 초상집이네요.”

한 YTN 기자의 말이다. 노사 협상이 결렬된 다음날인 8일 오전 8시부터 서울 마포 상암동 YTN 사옥 1층에는 100여명의 YTN 구성원들이 모였다. 최남수 YTN 사장 내정자와 박진수 언론노조 YTN지부장 간 ‘언론 적폐청산’ 협상 결렬에 항의하며 YTN 경영진과 최 내정자 퇴진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노종면 기자는 보도국장 내정을 거부했다. 비슷한 시각, 길(상암산로) 건너 보이는 MBC에서는 해직언론인 출신 최승호 신임 사장이 첫 출근을 했고, 해고자 복직 노사 공동선언이 진행됐다.

이날 최 내정자는 지난달 5일부터 진행된 노사 협상 결렬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노조는 ‘지난 9년 중 3년 이상 보직을 맡은 간부들에 대한 보직 보류(최 내정자 표현으로 ‘배제’)’를 요청했다. 이 기준에 해당하는 간부들의 보직을 ‘YTN 미래발전위원회’ 조사 결과로 혐의가 풀릴 때까지 보류해달라는 요구였다.

▲ 8일 오전 서울 상암동 YTN 본사 1층에서 언론노조 YTN지부 조합원들이 모여 언론적폐청산을 위해 결의를 모으고 있다. 사진=YTN지부 제공
▲ 8일 오전 서울 상암동 YTN 본사 1층에서 언론노조 YTN지부 조합원들이 모여 언론적폐청산을 위해 결의를 모으고 있다. 사진=YTN지부 제공

최 내정자는 “문제 행위가 드러나면 그때 인사조치하는 게 맞다”며 “미리 무더기로 보직 배제를 하는 것 자체가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인사전횡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최 내정자는 “보직 3년 이상 간부들의 무조건적 보직 배제와 임원 한 분과 실장 한 분의 인사조치를 요구한 것은 기준과 제도가 아니라 특정 임원과 간부들을 겨냥한 여론몰이식 조치여서 제 양심과 원칙 상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권준기 YTN지부 사무국장은 “9년 중 3년일 뿐”이라며 “이 안을 가지고 갈 때도 법률자문도 받았고, 동료들에게도 물었는데 회사는 억지주장이라도 하는 듯이 얘기했다”고 비판했다. 권 국장은 “최 내정자는 ‘김호성 상무가 억울하다고 한다. 류제웅 기획조정실장과 함께가겠다’고 한다”며 “우리는 최 내정자와 함께 갈 수 없다”고 말했다. 노조는 이번 입장문 자체가 사실상 김호성 상무와 류제웅 기획조정실장의 입장이라고 보고 거세게 반발했다.

노사 협상은 보도국장 내정자로 지정된 노종면 기자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최 내정자는 노 기자나 자신에게 보낸 메시지를 입장문에서 공개했다. 핵심 내용은 그간 YTN 보도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향후 보도공정성을 담보해달라는 요구들이다. 최 내정자는 “의아하게 생각하는 점은 노 내정자가 요구한 사항이 노조를 통해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이라며 “노 내정자는 보도국의 인사권을 보도국장이 행사한다는 미디어 기업의 기본 원칙을 무시한 주장까지 했다”고 지적했다.

▲ 박진수 전국언론노조 YTN 지부장, 김호성 YTN 상무, 최남수 YTN 사장 내정자. 사진=미디어오늘
▲ 박진수 전국언론노조 YTN 지부장, 김호성 YTN 상무, 최남수 YTN 사장 내정자. 사진=미디어오늘

이날 오전 노 기자는 이에 대한 입장을 냈다. 노 기자는 “최 내정자가 ‘오프’를 전제하고 주고받은 문자를 일방적으로 공개해 유감을 넘어 인간적인 자괴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노 기자가 오프를 전제한 것은 외부 기관 또는 방해세력의 개입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노 기자는 “마치 내가 사적으로 요구사항을 보내고 이를 노조를 조종해 관철하려 했다는 식으로 상황을 왜곡하고 싶은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최 내정자는 박진수 지부장이 자신에게 보인 태도도 문제삼았다. 최 내정자는 “고성과 모욕적인 발언 등 저로선 참기 힘든 태도를 보였다”며 “그럼에도 YTN의 조기정상화와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 성실하게 협상에 임해왔다”고 밝혔다.

이날 집회에서 현덕수 기자는 최 내정자의 과거를 전하기도 했다. 현 기자는 노조위원장이던 지난 2008년 MB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국면에 들어가면서 ‘최남수 선배’의 집을 찾아가 회사를 지켜달라고 부탁했지만 그가 회사를 떠났다는 일화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관련기사 : “복직기자를 ‘사장 입성 위한 도구’로 쓰는 것 같아”]

현 기자에 따르면 2001년 최 내정자는 미국으로 연수를 떠났다가 회사로 돌아오지 않고 삼성화재로 갔다. 상사와 마찰이 있어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곳에서 나와 2005년 YTN으로 돌아왔다. 현 기자는 “어떤 이유에서든 그 분이 능력이 있으면 좋은 쓰임새가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기획실에서도 근무했고, 보도국 경제부장에도 올랐다”며 “2008년 1월 보도국장 선거가 있었는데 그는 3배수 후보로 올랐다. 그를 잠시 믿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 기자의 부탁에도 최 내정자는 회사를 다시 떠났고, 최근 사장 내정자로 복귀했다.

현 기자는 “2008년 이후 9년 가까운 세월 이후 누구 하나의 도움도 없이 투쟁하고 싸웠다”며 “최남수와 같은 이력을 가진 사람은 이런 조직의 새로운 리더십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YTN 노조는 곧 비상대책이 필요함을 선언하고 언론 적폐 청산 투쟁의 수위를 높여갈 계획이다. 오정훈 언론노조 수석부위원장도 “YTN지부가 다시 9년 전 파국으로 가는 걸 원치 않는다”며 “단결된 힘으로 싸운다면 빠르게 사태를 해결하고 부적격자 사장을 퇴출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지의사를 밝혔다.

▲ 8일 오전 서울 상암동 YTN본사 7층에서 김호성 상무(오른쪽)에게 YTN노조 조합원들이 항의하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 8일 오전 서울 상암동 YTN본사 7층에서 김호성 상무(오른쪽)에게 YTN노조 조합원들이 항의하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이날 집회를 마치고 YTN 구성원들은 7층 임원실을 찾아 김호성 상무를 만났다. 박 지부장은 “내정자가 지금 YTN 사람이냐”며 “이게 김 상무 입장이지 회사 입장이냐”고 따져 물었다. 현 기자는 “당신이 어떻게 그 자리에 올라갔느냐. 후배들 짓밟고, 조준희 전 사장 뒤에 숨어서 상무되는 게 그렇게 중요하느냐”라며 “어떻게 복직협상할지 전화 한통 할 줄 알았다. 9년 동안 뭐했느냐”고 말했다. 이어 “이사회에서 최남수에게 표결을 던진 게 온당한 행위인지 답해 달라”고 덧붙였다. 이에 김 상무는 “일 합시다”라며 답을 피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