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공작 사건에서 위장 사무실을 만들어 검찰을 농락했던 국가정보원이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 때도 똑같이 위장 사무실을 만들어 검찰 수사를 방해한 후 자축연까지 열었다는 내부 고발이 나와 파문이 일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사건 변호인단은 7일 오후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 수사를 방해한 국정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6일 변호인단이 국정원 내부 고발자로 추정되는 직원으로부터 받은 편지 내용을 공개했다.

민변 변호인단은 △당시 수사에 관여했던 국정원 직원의 성명과 직급, 현재 근무지까지 상세히 기재돼 있다는 점 △직원들의 구체적 업무내용과 전보 경위, 예산 결재 라인 등 내부 직원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이 언급된 점 △하급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한 윗선의 무책임이 내부고발 동기라는 점 등을 비춰볼 때 제보자와 고발 내용이 매우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제보자가 민변 변호인단에게 보낸 A4 5장 분량의 편지 내용을 보면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때만이 아니라 서울시 공무원(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 때도 국정원은 압수수색에 대응한 세부 계획서를 만들고 위장 사무실을 설치했다.

▲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사건 변호인단 김용민 변호사가 7일 오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정원 내부 고발자로 추정되는 직원이 보낸 편지 내용을 설명했다. 사진=강성원 기자
▲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사건 변호인단 김용민 변호사가 7일 오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정원 내부 고발자로 추정되는 직원이 보낸 편지 내용을 설명했다. 사진=강성원 기자
이 제보자는 “2014년 3월 검찰에서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에 대한 증거 수집을 위해 대공수사국 수사3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을 때도 위장 사무실을 만들어 허위 서류를 제출했다”며 “이때에도 유우성 담당팀(처장 3급 이재윤)에서 기획→상부 결재→시설 설치→검찰 압수수색팀 안내→자축연 순으로 끝났다”고 밝혔다.

이어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응한 세부 계획서는 김아무개 직원이 기안, 4급 권세영 과장이 수정·보완 완성한 후 이재윤 단장과 담당국장에게 재가를 받아 위장 사무실을 만들고 검찰청 검사와 수사관들을 안내했다”며 “위장 사무실은 수사3처 사무실 일부에 칸막이를 새로 설치하고 블라인드를 세우는 방식이었다. 그냥 뚝딱 만들었고, 사무실 완료 후 서천호 2차장도 왔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당시 검찰 압수수색 후 간첩 조작 사건 수사를 무마하기 위해 허위 자살 기도 의심을 받고 있는 권세영 과장에 대해서도 이 제보자는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편지 내용에 따르면 권 과장은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상황이 불리해지자, 유서를 남기고 번개탄을 피워 자살을 시도했다가 살아난다. 당시 남재준 전 국정원장은 권 과장에 대해 국정원 직원을 대표하는 것처럼 영웅시하기도 했다.

제보자는 “그런데 권 과장은 막상 주위 동료, 선배들에게는 조직에서 자신을 해임시키면 여러 불법 사항을 폭로해 동반 자폭하겠다고 입에 달고 다녔다”며 “그것 때문인지 멀리 제주도까지 전출을 갔다”고 말했다.

또 제보자에 따르면 권 과장은 당시 검찰 조사 때도 사무실이나 복도에서 “나를 건드리면 압수수색 때 위장 사무실을 운영한 것을 검찰이나 언론에 다 까발린다. 알아서 해라”고 공공연하게 경고하기도 했다.

제보자는 이 같은 폭로 내용을 민변 변호인단 뿐만 아니라 검찰에도 보냈다고 밝히면서 “조직이 이렇게 만신창이가 된 이상 곪고 썩어 터진 것을 하루속히 도려내 버리고, 자신의 책임을 전가하는 부끄러운 선배들은 더는 발을 못 붙이게 하는 새로운 기상을 세웠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변호인단은 이 편지 내용을 국정원 내부 감찰실에도 전달했고 국정원 감찰실도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답했다. 서울중앙지검은 7일 “유우성씨 사건 당시 국정원이 위장 사무실을 마련해 압수수색에 대응하고, 허위 서류를 제출했다는 취지의 진정서가 지난 6일 접수돼 공안2부(부장 진재선)에 진정 사건을 배당했다”고 밝혔다.

민변 변호인단은 “아직도 국정원은 이 사건에 대해 ‘일부 수사관들의 무리한 수사가 있었을지는 몰라도 고의적인 조작이나 증거 은폐는 없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며 “안하무인으로 증거를 조작하고 위장 사무실을 만들어 검찰을 기망하는 국정원의 막무가내식 범죄를 뿌리 뽑기 위해서라도 엄중한 수사와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변호인단은 편지엔 등장하지 않지만 당시 이런 모든 수사 내용을 보고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남재준 전 원장을 비롯해 국정원 수사관 8명에 대해 검찰에 고발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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