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0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에서 공사 재개 결론을 내렸다. 공론위가 토론, 숙의를 거듭할수록 위원들의 생각은 공사 중단에서 공사 재개 쪽으로 기울었고 특히나 젊은 층은 신고리 공사 재개 쪽으로 20%대에서 56%나 바뀌었다고 한다…(중략)결국 공론화 위원들은 공포대신 과학과 논리를 선택한 것이다. 우리와 달리 넘치는 에너지 자원, 뛰어난 신재생에너지 기술을 가진 이 나라들이 왜 원전 건설을 위해 이렇게 애를 쓸까?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원자력만큼 깨끗하고 효율적인 에너지원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맑은 하늘, 깨끗한 공기를 미래세대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화력발전보다 원자력발전을 건설해야 한다.”

지난달 22일 경북연합일보 독자기고란에 실린 ‘괴담 공포는 진실 과학을 이길 수 없다’는 제목의 글이다. 글쓴이는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에 주소지를 두고 있는 김아무개씨다. 독자투고란에 적힌 내용대로라면 김씨는 경주시에 살고 있고 원자력 발전의 이점이 많다며 찬성하는 일반 시민이다.

과연 김씨는 순수한 시민의 입장에서 글을 쓴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해당 글을 쓴 사람은 한국수력원자력주식회사 제2발전소 3호기 발전 3팀 소속의 김아무개씨로 확인됐다.

미디어오늘이 한국수력원자력의 ‘언론사 독자투고 실적 알림’이라는 문건을 정보공개청구한 결과, 한국수력원자력이라는 소속을 밝히지 않고 지역 언론사 독자투고란에 원자력 찬성 글을 집중 보내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 소속 직원임에도 주소지와 이름만 나와 있는 글을 언론사에 제출해 마치 원자력에 찬성한 일반시민이 글을 싣고 있는 것처럼 한 것이다.

특히 지난 10월20일 신고리 5·6호 공론화위원회가 공사 재개 결론을 내리기 전후 원전 건설에 대한 갑론을박이 치열한 상황에서 독자투고란을 활용해 찬성 여론을 높이기 위한 작업으로 해석할 수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 경주시에 살고 있는 김아무개씨가 지역신문에 기고한 원전 찬성글. 확인결과 김씨는 한국수력원자력 소속 직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 경주시에 살고 있는 김아무개씨가 지역신문에 기고한 원전 찬성글. 확인결과 김씨는 한국수력원자력 소속 직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지난 11월 언론사 독자투고 실적으로 제1발전소 소속 직원 3명, 제2발전소 직원 8명 등 모두 11명이 글을 실었다고 보고했다. 확인 결과 11명 중 소속을 밝히지 않고 일반 시민처럼 주소와 이름만 써서 보낸 독자투고는 5건이었다.

5건 글 제목은 ‘독자적인 국내 원전기술, 수출 기회 넓혀야’(세명일보), ‘새로운길, 원전 해체 연구소’(경북연합일보), ‘성급한 탈원전 정책에 대한 우려’(경안일보), ‘신재생에너지 개발과 원자력 발전’(경북연합일보) 등이다. 모두 원전 기술의 안전성을 강조하고 탈원전 정책에 대한 우려를 담았다.

일례로 ‘경주시 양북면 어일리’라고 주소지를 적고 경안일보에 독자투고를 한 차아무개씨는 “탈원전 정책을 강하게 추진한 독일의 전력요금은 우리나라의 3배에 육박하는 수준이고 그마저도 70% 이상의 전력을 원자력에 의존하는 프랑스에서 전기를 수입해 이용하는 실정”이라며 “현재 상황에서 당장 원전을 줄이는 것은 시기상조이다. 에너지 자원은 부족하고 전력 수요는 많은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원자력 에너지보다 적합한 것이 있을까”라고 주장했다. 차아무개씨는 한국수력원자력 발전운영팀 소속으로 확인됐다.

경주시 양남면 읍천리 전아무개씨는 경북연합일보에 독자투고한 글에서 “신재생에너지 개발을 통해 원자력발전을 대체할 수 있을 때까지 원자력발전은 계속돼야 하며 안전성 입증이 이루어진다면 원자력발전소를 계속운전할 수 있도록 정부는 승인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씨는 한국수력원자력 방사선안전팀 소속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올해 1월 언론사 독자투고 시행 계획안을 세우고 이에 따라 월별로 실적을 취합해 보고했다.

올해만 직할·대외협력처 소속 2명, 제1발전소 소속 9명, 제2발전소 소속 30명, 제3발전소 소속 28명 등 모두 69명이 지역신문에 원전 정책의 장점을 설명하고 탈원전 정책을 반대하는 글을 실었다. 69명 중 소속 직원임을 밝히고 글을 싣는 경우도 있었지만 주소지만 밝히고 일반 시민처럼 글을 기고한 행태는 3분의 1를 차지했다.

이 같은 행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은 광고주로 있는 한국수력원자력의 입김을 지역 언론들이 무시못한 탓도 크다. 언론 매체의 독자투고란이 정부기관의 여론몰이용 창구로 전락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국 처장은 “독자투고의 글을 받는 건 언론사들의 편집권 문제이기 때문에 뭐라고 할 수 없지만 지방에서 큰 광고주인 한수원을 고려하면 글을 반영해야 하는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직원분들 글을 받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며 “특히 광고같은 글을 직원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독자투고를 하는 건 여론을 호도하는 것이고 여론을 왜곡하는 형태가 될 수 있어 정확히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수원 관계자는 “지방지 같은 경우 언론사 형편이 어렵고 지면을 채우지 못하는 일들이 많아 독자투고를 보내달라는 요청이 올 때가 많다. 그러면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독자 투고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거주지와 이름만 적어 보낸 글에 대해 여론 왜곡이라고 하는데 보는 입장에서 다를 수 있다. 직원들도 일반 시민의 자격이 있다. 비판적으로 보면 적절치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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