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홍 작가의 눈물을 기억한다. 2012년 그는 MBC를 대표하는 시사 프로그램 ‘PD수첩’ 메인 작가였다. 물론 그해 7월25일 해고 통보를 받기 전까지다. ‘김재철 사장 퇴진’을 기치로 내걸고 170일 동안 파업을 진행한 전국언론노조 MBC본부가 파업 중단을 선언하고 복귀한 직후 그는 해고됐다.

그해 10월 말 서울 여의도 MBC 사옥 인근에서 정 작가와 인터뷰를 가졌다. 17년 방송작가 생활 중 12년을 PD수첩과 함께 한 그였다. ‘용산참사’, ‘한 해군장교의 양심선언’, ‘검사와 스폰서’, ‘4대강, 수심 6m의 비밀’ 등 빛나는 PD수첩 방송들은 그의 손을 거친 것들이었다. 인터뷰 도중 “PD수첩에는 내 인생의 절정기가 녹아있다”며 눈시울이 불거졌던 정 작가를 나는 기억한다.

그때만 해도 권력을 제대로 비판할 줄 아는 저널리스트에 대한 MBC 경영진의 탄압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책임자 중 하나였던 김현종 시사제작국장(현 목포 MBC 사장)은 “PD수첩 작가 해고는 노조 파업에 대해 작가들이 지지 성명을 냈기 때문”이라며 “정의를 바로세우기 위한 판단”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재철 사장, 백종문 편성제작본부장, 김현종 국장 등 ‘언론 적폐’로 불리는 이들의 만행 정도로만 생각했다.

▲ 정재홍 작가는 PD수첩 메인 작가였다. MBC는 2012년 정 작가를 해고했다. 노조 파업을 지지했다는 이유였다. 그로부터 5년 뒤 PD수첩 작가 해고 사태에 국가정보원이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문건이 폭로됐다. 정 작가가 지난 9월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과거 PD수첩 동료들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는 그는 서럽게 울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정재홍 작가는 PD수첩 메인 작가였다. MBC는 2012년 정 작가를 해고했다. 노조 파업을 지지했다는 이유였다. 그로부터 5년 뒤 PD수첩 작가 해고 사태에 국가정보원이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문건이 폭로됐다. 정 작가가 지난 9월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과거 PD수첩 동료들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는 그는 서럽게 울었다. 사진=김도연 기자
정재홍 작가 눈물을 다시 본 건 지난 9월이었다. MB 정부 국가정보원이 MBC 기자·PD들을 ‘블랙리스트’로 분류하고 각종 인사와 방송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던 때였다. 정 작가는 과거 PD수첩 동료였던 최승호 해직 PD, 김환균 언론노조위원장, 이우환 PD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정말 서럽게 울었다. 

국정원은 원세훈 원장 지시로 2010년 3월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 방안’이라는 문건을 작성했다. 김재철 사장 취임에 발맞춰 작성된 이 문건은 ‘좌편향 인물과 문제 프로그램 퇴출→노조 무력화→민영화’로 이어지는 3단계 MBC 장악 시나리오를 담고 있다. 문건에는 “PD수첩 프리랜서 작가까지 교체한다”는 대목이 있었다. 정 작가는 기자회견에서 “언론을 철저히 장악해야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범죄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가 다시 PD수첩으로 돌아왔다. ‘언론 적폐 청산’을 요구한 촛불시민의 뜻대로 김장겸 MBC 사장은 해임됐다. 7일이면 MBC 새 사장이 선출된다. 다시 재개되는 PD수첩은 오는 12일 오후 11시 첫 방송 아이템으로 ‘방송장악’을 다룬다. 글·구성을 정재홍 작가가 맡았다. 오는 28일 오후 11시 방송 예정인 촛불 1주년 특별기획 ‘블랙리스트, 촛불을 만나다’도 정 작가가 글·구성을 맡는다. 정 작가는 기자에게 “정말 열심히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어느 때보다 밝은 목소리다.

해고 뒤에도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도리어 벼려 왔다. 자리를 옮겨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타파의 시사 프로그램 ‘목격자들’에서 방송작가로서 관록을 보여줬다. 감독으로 변신한 최승호 PD가 연출한 영화 ‘자백’과 ‘공범자들’의 각본을 맡아 견제 받지 않는 국가권력의 야만을 스크린 위에 고발했다. 정 작가 복귀는 12일 다시 시작하는 PD수첩을 시청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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