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SBS 내부에선 자사 뉴스를 ‘보도참사’라고 평가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보도 경쟁력이 종합편성채널 등에 밀렸기 때문이다. 대규모 조직 개편과 인사가 이미 4개월 전에 있었음에도 지난해 12월8일 보도 책임자를 교체하는 등 ‘물갈이 인사’가 진행됐다. 혼란의 시작이었다.

뒤늦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취재에 따라붙었고, SBS ‘8뉴스’도 관련 단독 보도를 쏟아냈다. 정권 교체가 눈앞에 있던 지난 5월2일 ‘문재인-해수부 세월호 인양 거래설’ 보도가 나왔다. 오보로 밝혀지면서 대선 판이 아닌 SBS가 흔들렸다. 관련자들이 징계를 받고 또 보도 책임자들이 교체됐다. SBS 노동조합은 이례적으로 자사 시스템 등을 외부 인사에 공개하며 진상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후 노조가 폭로한 내용들은 심증을 확신하게 하는 내용이었다. 대주주 보도 개입의 다양한 진상들이 터져 나왔다. 대주주가 사과를 했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국정원 개혁위가 언급해 다시 논란이 불거진 2009년 ‘논두렁 시계’ 보도에 대해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진상조사도 함께 진행했다. SBS 노조는 과거를 반성하며 재발 방지를 막기 위한 장치를 고민했다. 방송사로선 처음으로 사장 임명동의제를 쟁취했다. 보도, 편성·시사교양 부문 본부장 임명동의제도 함께 진행했다.

사측은 보도본부장 후보로 심석태 뉴미디어국장을 내세웠다. 1991년 SBS에 입사해 2008년부터 SBS 노조위원장을 맡기도 한 그는 스브스뉴스, 비디오머그 등 뉴미디어 분야의 성과를 이끈 인물이다. 보도본부 구성원 약 250명 중 93%가 투표에 참여해 심 국장이 신임 보도본부장으로 임명됐다. 높은 투표 참여율은 그에 대한 신임인 동시에 새로운 SBS에 대한 구성원들의 열망이다.

▲ 심석태 SBS 신임 보도본부장이 4일 오후 서울 양천구 SBS 본사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심석태 SBS 신임 보도본부장이 4일 오후 서울 양천구 SBS 본사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공식 업무 첫날인 지난 4일 서울 양천구 SBS 보도본부장실에서 심 본부장을 만났다. 그는 “SBS가 그동안 많은 풍파를 겪으면서 조직 내부에 자괴감과 상처가 남아있다”며 “‘다시 잘해보자’ ‘원래 하고 싶던 뉴스를 해보자’고 독려하며 서로 아픔을 치유하고 자신감을 회복하는 게 1번 과제”라고 말했다.

SBS가 여전히 특종을 만들며 탄탄한 뉴스를 보도하고 있지만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는 몇 가지 큰 사건 탓이다. 지난 4일 ‘논두렁 시계 보도 경위 진상조사위원회’ 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당시 SBS 취재 기자는 검찰 관계자의 말을 신뢰해 보도했고, 이 과정에서 국정원 개입 여부는 드러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심 본부장은 “사건 당시 보직도 없던 선배 입장에서 내가 (논두렁 시계 보도를 한 기자에게) 물었을 때와 (진상조사에서) 같은 얘기를 한 걸 보면 후배 기자 말은 사실이라고 생각한다”며 “주요 내용은 ‘대통령 가족이 고가의 시계를 받았다가 버렸다는 것’이지 어디에 버렸는가가 아니”라고 말했다. 저널리즘 원칙상 기자에겐 기사를 생생하게 전달할 의무도 있다. 시계를 버린 장소가 대통령의 죽음이라는 정치적 상황과 겹쳐 해당 보도를 지칭하는 이름으로 변질된 것이다.

과거를 교훈삼아 현재 보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심 본부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전 수사 보도를 비판했던 기준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관련 SBS 보도를 본다면, 우리 보도가 모두 온당했다고 볼 수 있을까”라며 “돌이켜보면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 싶은 보도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법조 취재 6년 경험을 바탕으로, 취재원으로부터 이용당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할 것”며 “공급자 시각을 버리는 것도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 4일 오후 서울 양천구 SBS 보도본부장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심석태 신임 보도본부장의 뒷모습. 6개의 TV화면에는 YTN, JTBC, TV조선, EBS1, tvN, MBN(시계방향)을  켜놨다. 사진=김도연 기자
▲ 4일 오후 서울 양천구 SBS 보도본부장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심석태 신임 보도본부장의 뒷모습. 6개의 TV화면에는 YTN, JTBC, TV조선, EBS1, tvN, MBN(시계방향)을
켜놨다. 사진=김도연 기자

공급자 중심의 뉴스를 수용자 관점으로 바꾸는 것은 그가 뉴미디어국에서 끊임없이 고민해온 것이다. 심 본부장은 “1분40초 리포트를 백화점식으로 나열하면 공급자 입장에서는 모든 영역을 다 커버해 만족하기 쉽지만 사실 아무런 영향력도 주지 못할 수 있다”며 “뉴미디어는 즉각 피드백이 오는데 방송은 그게 덜하니 뉴미디어국과 보도국의 교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뉴미디어국에서 함께 일하던 권영인 기자를 보도본부장 직속 뉴스혁신부에 배치했다. 뉴스를 만드는 과정을 바꾸겠다는 뜻이다. 국장 회의 등에 참여해 뉴미디어국과 보도국에서 어떤 아이템이 올라오는지 살펴보고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는 게 심 본부장이 권 기자에게 기대하는 역할이다. 예를 들어 보도국에서 올라온 1분40초짜리 아이템을 비디오머그용으로도 준비하거나 뉴미디어국 발제를 리포트로도 만들어 보도하는 식이다.

다양한 플랫폼에 적응하는 건 기자 역량 제고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심 본부장은 “팟캐스트 제작의 경우 참여하는 사람들이 재밌어 하고, 정제된 리포트를 만드는 훈련만 돼 있는 기자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를 만드는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산이 높지 않아서 이 산(SBS)이 높아보였던 것”이며 “후배들이 적극적으로 같이 하자고 했다”며 공을 동료들에게 돌렸지만 회사 안팎에선 심 본부장이 이끌었기에 SBS 뉴미디어 분야의 성과가 돋보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다만 ‘열정페이’ 인턴을 이용했다는 비판이 있었다. 심 본부장은 “이용자와 생산자 사이의 협업 모델이라고 생각했고, 강제로 야근을 시키는 등의 문제는 없었다”며 “현재는 산학 협력 인턴만 받고 있고 뉴미디어 자회사를 만들어 정규직으로 채용하려는 고민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략뉴스부도 심 본부장의 고민이 묻어나는 부서다. 심 본부장은 “고참 기자들이 맡았던 보직이 끝나면 젊은 기자들과 함께 현장에서 부딪히는 게 이상적인데, 서로 어려워할 뿐 아니라 세대 간 호흡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26~32년차 고참 기자들이 전략뉴스부에 모여 자신의 전문 분야 혹은 새롭게 해보고 싶은 분야를 스스로 공부하도록 시간을 주고 싶다”며 “나도 본부장이 끝나면 현업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가 갈 곳이라고 생각하고 만든다면 그분들도 만족하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심 본부장은 임명 직후 사내 게시판에 뉴스를 어떻게 만들면 좋을지, 그가 바라는 조직문화, 인사 원칙 등을 게시했다. 조직과 개인이 함께 성장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심 본부장은 곧 보도본부 전체 회의를 열어 구성원 의견도 들어 볼 생각이다.

▲ 심석태 SBS 신임 보도본부장이 4일 오후 서울 양천구 SBS 본사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심석태 SBS 신임 보도본부장이 4일 오후 서울 양천구 SBS 본사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앞으로 SBS 뉴스는 어떻게 달라질까. 심 본부장은 “그동안 ‘웰 메이드 뉴스’(잘 만든 뉴스)를 했지만 임팩트 있는 뉴스는 만들지 못한 것 같다”며 “취재도 잘하고 단독도 많이 했는데 우리끼리 좋아해서 무슨 의미가 있나. ‘SBS는 이걸 했어’라는 임팩트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정파적으로 한쪽으로 휩쓸리진 않되 사회 전체를 보는 눈을 갖고 사건 하나를 보도했다면, 그 다음날에도 그 보도를 이어가야 의미가 있다”며 “표 안 나는 시청자들을 꾸준히 모으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기사를 쓰는 기준이 흔들린 부분도 있는데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면 된다”며 “기자는 뭐든 취재하고, 데스크는 그걸 기사로 만들어 내면 된다”고 말했다.

방송계 일각에선 기존보다 긴 시간을 할애해 해설성 리포트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심 본부장은 “정치적 상황으로 뉴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뉴스로 엔터테이닝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늘어났다”면서도 이런 이례적 상황에 휩쓸려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그는 “우리 식구들이 가장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소화할 수 있는 포맷을 찾는 게 답”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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