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대통령 직속기구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이하 개보위)의 반대 의견을 수용하지 않은 채 개인정보 EU 적정성 평가를 추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달 20일(현지시각) EU(유럽연합) 사법총국에서 EU와 한국 간 개인정보보호와 정보유통에 대한 ‘상호협력강화’를 골자로 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며 EU ‘적정성 평가’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개인정보 보호 수준이 높은 EU는 외부로 개인정보를 이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제3국이라도 ‘적정성 평가’를 거쳐 개인정보 보호가 EU와 동등한 수준이라고 인정되면 해당 국가에 EU시민의 개인정보를 이전, 활용할 수 있게 허용한다.

▲ 지난달 20일 한-EU 개인정보보호 협력을 위한 공동성명 발표 현장. 왼쪽이 유럽연합 사법총국 담당 베라 요로바 집행위원, 오른쪽이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 사진=방통위 제공.
▲ 지난달 20일 한-EU 개인정보보호 협력을 위한 공동성명 발표 현장. 왼쪽이 유럽연합 사법총국 담당 베라 요로바 집행위원, 오른쪽이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 사진=방통위 제공.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유럽에 진출할 경우 유럽 국민의 개인정보를 수집할 권한이 없어 현지 기관을 거치게 되면서 시간이 많이 들고 비용이 발생하는데, ‘적정성 평가’를 통과하면 유럽 시민들에 대해서도 국내 개인정보처럼 취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강력한 ‘반대’의견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13일 개보위는 “‘부분적정성 평가’ 추진은 개보위 적격성 보완, 국제사회의 흐름, 국정목표에 배치된다”며 “방통위원장은 부분적정성 결정 추진을 중단할 것”을 골자로 하는 ‘권고’ 결정문을 의결했다.

개보위는 현재 방통위가 추진하는 평가가 정상적인 ‘적정성 평가’가 아닌 제한적인 ‘부분 적정성 평가’라는 점이 문제라는 입장이다. 앞서 2015년 범정부 차원에서 ‘전체 적정성 평가’를 추진했지만 ‘부적격 통보’를 받았다. 그러자 지난 3월 행정안전부는 방송통신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부분 적정성 평가’를 우선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방통위는 포괄적인 개인정보보호법이 아닌 인터넷 상 개인정보를 다루는 정보통신망법을 담당하기 때문에 ‘부분 적정성 평가’는 정보통신망법에 한해 추진된다. 

개보위는 권고문을 통해 ‘부분 적정성 평가’의 문제점으로 △적용되는 기업이 적어 효과가 미미한 점 △행정안전부와 방통위만의 협의로 ‘부분적정성 평가’를 결정한 점은 정당성이 부족한 점 △행정안전부 내부보고를 통해 정책 방향을 수정하는 등 불투명한 행정 문제 △국내에서는 개인정보보호법이 우선 적용되는 일반법이고 정보통신망법은 특별법인데, 정보통신망법 중심으로 추진할 경우 국내 법규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개보위는 ‘전체 적정성 평가’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개보위 독립성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보위는 ‘적격성 평가’ 탈락 이유로 국내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사실상 행자부 산하기관으로 운영되는 데다 직권조사·제재 권한을 갖지 못한 점을 꼽았다. 그러면서 개보위는 개보위가 ‘독립적 조직’으로 구성되고 ‘실질적 제재 권한’을 갖는 게 적격성 판단을 위한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결정문.
▲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결정문.

그러나 방송통신위원회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권고’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4일 방통위 이용자정책국 관계자는 “개보위의 일방적 의견”이라며 “개보위는 권고기능이 있는 것인데, 우리는 신경 쓰지 않는다. 이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개보위의 ‘반대 권고문’이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보통 사업자 처분을 하면 사전 의견을 듣고 문제에 대해 소명을 하도록 하는데 그런 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개보위 결정문이 나온 배경에 대해 “개보위에서는 정보통신망법을 중심으로 부분 적정성 평가를 추진하게 되면 자신들의 기관 독립이 어렵다고 보기 때문에 이런 결정문을 낸 것 같다”고 말했다.

‘개보위 독립’이 전체 적정성 평가를 받는 데 도움이 된다는 개보위측 주장에 대해 방통위 관계자는 “과거 부적격 통보를 받은 건 개인정보 기구의 독립성이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인 건 맞다”면서도 “그러나 이는 첫 단계였을 뿐 개보위 권한이 강화되면 통과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EU는 국가기관이 감청을 하는지를 비롯해 그 나라의 개인정보 제도 전반을 따진 후 적정성 결정을 내린다”고 말했다.

방통위 이용자정책국측은 또한 △행자부와 방통위가 개인정보 관련 중심 기관이고 개보위는 협력기관이기 때문에 방통위 주도의 정책 추진은 부당하지 않고 △부분 적정성 평가의 효과가 상대적으로 낮더라도 기업 활동을 위해 추진할 당위성이 있고 △개인정보 이슈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온라인 문제를 규정한 정보통신망법 적용은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처럼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는 이걸 하는 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개인정보 보호도 중요하지만 활용도 대단히 중요하다”면서 “개보위는 기관 독립이 우선인지 국익이 우선인지 의문스러운 면이 있다”고 밝혔다.

개보위가 ‘권고 결정’ 외에 권한이 없어 방송통신위원회의 정책 추진에 제동을 걸기는 힘든 상황이다. 다만,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로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격상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2018년으로 예정된 조직개편을 앞두고 개인정보보호 권한을 둘러싼 논란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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