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퍼스트’는 식상한 구호가 됐다. 하지만 답을 구한 매체를 찾기도 쉽지 않다. 언론이 플랫폼에 끌려다니는 지금, 전통 미디어 영역으로 여겨져 온 ‘탐사보도’가 모바일 시대의 생존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시사주간지 시사IN이 창간 10주년을 맞아 저널리즘 콘퍼런스 ‘언론 독립, 미래를 묻다’를 개최했다. 4일 오후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스페인 민주화 주역으로 꼽히는 ‘엘 파이스’와 ‘뉴스타파’, ‘한겨레21’, ‘시사IN’의 탐사보도 전문 언론인들이 200여 명의 청중과 함께 탐사보도 미래를 논했다.

탐사보도는 ‘생존’ 위한 선택... 이슈를 ‘키핑’할 때

“한 걸음 더 들어가겠습니다.” 손석희의 JTBC는 저녁 메인 뉴스에 탐사보도를 입혔다. 영상을 통해 연사로 나선 손석희 보도부문 사장은 ‘인터넷에서 본 뉴스’를 반복하지 않으려 “필요에 의해, TV뉴스 생존을 위해 ‘한 걸음 더’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기존 뉴스와의 차별화가 궁극적으로 탐사 정신과 맞닿게 됐다는 설명이다. 

▲ 4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된 ‘시사IN’ 창간 10주년 저널리즘 콘퍼런스 ‘언론 독립, 미래를 묻다’
▲ 4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된 ‘시사IN’ 창간 10주년 저널리즘 콘퍼런스 ‘언론 독립, 미래를 묻다’
손 사장은 ‘어젠다 세팅(Agenda Setting)’이 아닌 ‘어젠다 키핑(Agenda Keeping)’을 강조했다. “늘 소비되고 사라지는 이슈 가운데 끝까지 붙들고 갈 이슈”를 추적한다는 의미이다. 손 사장은 세월호 참사, 국군 사이버사령부와 국가정보원의 정치 개입 등을 어젠다 키핑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이명박 전문기자’로 불리는 주진우 시사IN 탐사보도 전문기자는 ‘키핑’을 넘어 이슈를 끌어올린 사례다. 2007년 “에리카 김을 인터뷰하면서 MB에 관심을 가졌다”는 주 기자는 같은 해 “(BBK수사팀 검사가) 이명박 이름 빼면 구형을 3년으로 맞춰주기로 했다”는 김경준 씨 메모를 입수했다. 이러한 취재는 MB와 기독교·재벌의 결탁, 내곡동 사저, 청계재단 관련 보도로 이어졌다.

그렇게 10년. ‘다스(DAS) MB소유’ 의혹을 담은 시사IN 표제 “다스는 누구 것?”은 유행어처럼 퍼져 각종 패러디를 낳았다. 지난 8월부터 본격적인 ‘MB프로젝트’를 시작한 주 기자는 이날 “다스 관련자가 ‘한 다스’”라며 지속적인 탐사보도를 예고했다. 손석희 사장 말처럼 “다매체 시대에 저널리즘이 살아남는 방법이 탐사보도에 있다”는 대표 사례가 된 셈이다.

탐사보도는 ‘사회 바꾸고 사람 살리는’ 저널리즘

스페인 엘파이스(El País) 탐사보도팀은 3년에 걸친 추적 끝에 18살 소녀를 살해했던 극우파 경찰이 ‘신분세탁’을 한 뒤 경찰청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스페인 특수 경찰 조직이 분리주의 단체 ‘에타(ETA)’의 조직원들을 납치하거나 살해했다는 보도 역시 엘파이스를 통해 알려졌다.

1976년 독재자 프랑코 사망 직후 창간된 엘파이스 원칙은 ‘정치부패 고발’이다. 호세 마리아 이루호 탐사보도팀장은 “(독재 치하) 40년간 공공치안 책임자들이 저지른 사건들이 굉장히 많았다”고 말했다. “의회가 군부에 장악됐을 땐 생명의 위협도 받았지만, (지속적인 탐사보도) 노력에 힘입어 민주주의를 수호할 수 있었다”며 언론의 역할을 강조했다.

엘파이스는 현재 스페인어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이다. 이루호 팀장은 “독자들이 어느 나라에서 어떤 종류의 기사를 읽고 있는지, 낮에 읽는지, 밤에 접속하는지, 어떤 기사를 흥미로워하는지 볼 수 있었다”며 “전 세계 2400만 명 이상의 독자가 있고, 1억 명 정도가 다른 매체를 통해 엘파이스 기사를 읽고 있다”고 말했다.

고비용 보도, 콘텐츠-수익성 선순환 가능성은

탐사보도는 ‘고비용’으로 인식된다. 오랜 시간 고정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호세 마리아 이루호 팀장은 신문판매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광고 수익만으로는 월급과 취재 비용을 충당하기 부족하다고 전했다. 탐사보도가 수익으로 연결되는 선순환은 프랑스의 메디아파르나 네덜란드의 코레스판던트를 제외하곤 사례를 찾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의 경우 후원 회원 4만 명 이상을 유지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안심할 수만은 없다. 이날 ‘생존전략’을 묻는 청중 질문에 김용진 대표는 “재원이 부족해서 광고를 받게 된다면 문을 닫아야지, 그렇게까지 연명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독립언론 설립 취지를 위해 비영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수익과 별개로 장기간 팀 유지가 어려울 수도 있다. ‘국정농단 보도’ 주역 중 한 곳인 한겨레 ‘최찾사(최순실을 찾는 사람들)’팀은 이미 해산됐다. 당시 팀원이었던 하어영 한겨레21 이슈팀장은 “탐사보도팀이 생길 때마다 팀의 존폐를 고민한다”고 말했다. 매일 일정한 보도 ‘물량’을 채워야 하는 매체의 경우 사내 분위기, 성과 압박 등이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데이터로 확장된 탐사보도 영역… 매체 간 협업해야

“저널리스트들은 사육사가 던져주는 정보의 편린을 받아먹으며 사육되는 동물원 안의 동물과도 같았다. 좋은 저널리스트들은 원 정보(Original Information)를 보고 싶어한다.”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 말이다. 김 대표는 “탐사보도에서 데이터저널리즘은 눈으로 잘 보이지 않는 팩트를 찾아내는 훌륭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대규모 내부 자료들이 빈번하게 유출되고 있다”며 매체 간 ‘협업’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최근 ICIJ(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에서 폭로한 대규모 조세회피처 자료 ‘파라다이스 페이퍼스’는 1.4TB 규모. 이를 분석하기 위해 뉴스타파·뉴욕타임스·BBC 등 67개국 96개 언론사의 취재진 382명이 동원됐다.

김 대표는 협업을 위한 원칙으로 비영리·비당파·독립을 꼽았다. “상업언론은 자사 영향력 극대화를 우선하고 좋은 자료가 들어오면 독점하려 할 것이고, 역량이 없으면 덮어버릴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 대표는 주류 상업매체들에게 미디어 생태계를 맡겨선 안 된다며 “(비영리 매체들을 향한) 연대와 협력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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