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내년도 예산안 처리 관련 쟁점 사안에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결국 법정시한을 넘기게 됐다. 특히 자유한국당이 공무원 증원·기초연금 인상 등을 ‘문재인 정부 7대 퍼주기 예산’이라며 반드시 삭감하겠다고 협상에 임한 게 예산안 처리 지연을 불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2일 의원총회에서 “가장 큰 문제는 공무원 혈세증원과 최저임금 문제, 예상했던 대로 이 두 가지 점에서 의견 접근이 잘 안 되고 있다”며 “공무원 수는 줄여도 아주 미미한 수로 줄이겠다고 (여당이) 고수하고 있어서 합의가 안 되고 있고, 최저임금 (인상분 보전) 문제 역시 기존에 기업이 부담하던 7.4%에 9%를 세금으로 보전하겠다는 것은 우리가 도저히 받을 수 없다”고 밝혔다.

정 원내대표는 아동수당 도입과 기초연금 인상에 대해서도 “기초연금은 4월1일부터 시행하는 것으로 가져왔는데 내년 6월13일 지방선거에 악용될 소지가 있어서 도저히 안 된다”며 “아동수당 도입도 7월1일부터 해왔지만 (지방선거와) 불과 보름 사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이야기하고, 10월부터 하는 것으로 우리가 현재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왼쪽)와 정우택 원내대표가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왼쪽)와 정우택 원내대표가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이처럼 한국당이 지방선거와 연계해 기초연금 지급 시기 지연을 주장하면서 국민 생계 지원을 위한 예산까지도 정략적 이해득실에 따져 반대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비판이 나온다.

기초연금은 만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하위 70%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제도로 현재 월 최대 20만6050원이 지급되고 있다. 정부는 내년 4월부터 이를 월 최대 25만 원으로 올린다는 계획이다. 한국당 역시 지난 19대 대선공약에서 2022년까지 소득하위 70% 노인 대상 기초연금을 30만 원으로 인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여당은 기초연금 인상 시기는 정치적 고려 사항이 아니라고 일축했다. 현행 기초연금법에 따르면 기초연금의 기준연금액 조정 시기는 매년 4월인데 이 원칙에 따라 4월로 인상 시기를 정한 것이지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추혜선 정의당 대변인은 “입만 열면 어르신들을 모신다고 하는 한국당이 기초연금 인상 시기를 늦추자고 하는 것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라며 “OECD 최고의 노인 빈곤율을 보이는 나라에서 진정 어르신들을 위한다면 기초연금 인상은 내년 4월 반드시 시행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추 대변인은 또 “아동수당 지급에서 상위 10%를 제외하는 것은 보편적 복지의 원칙을 흔드는 일”이라며 “국가가 전체 우리의 아이들을 책임진다는 입장에서 반드시 정부 원안으로 통과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앞서 지난 1일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실상 야당의 쟁점 사안은 모두 지난 대선 공통 공약인데, 국민에게 약속한 민생정책 실현 예산임에도 가로막혀있다는 점이 매우 안타깝다”며 “복지와 일자리 예산인 기초연금 5만 원 인상, 경찰·소방 공무원 등 공공부문 일자리 충원은 한국당 대선 공약집에도 모두 있는 것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제윤경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3일 “새해 예산을 제때 통과해야 한다는 주장은 정·여당만의 주장이 아니라 경제회복과 민생, 국민 안정을 위한 정부의 역할을 갈망하는 국민의 목소리”라며 “한순간이라도 빨리 국회가 예산안 합의를 마무리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남은 협의 과정에서도 야당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는 오는 4일 본회의를 열고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다시 시도할 계획이다. 지난 2012년 5월 18대 국회에서 국회법 개정안(국회선진화법)이 통과, 2014년 시행된 후 예산안이 법정 처리 시한을 넘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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