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 간 5%도 되지 않는 언론사가 전체 기사량의 51%를 생산했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산재’로 검색된 기사를 통계낸 결과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가 2007년 3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를 제외한 국내 44개 신문·방송사를 대상으로 검색한 결과 한겨레와 경향신문의 기사량이 전체 389건 중 200건(51.4%)을 차지했다.

심 교수는 이를 ‘광고주 효과’를 드러내는 간접 증거라고 분석했다. 광고주 자금에 의존적인 언론이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광고주에 불리한 기사를 보도하지 않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국내 최대 광고주란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크로스미디어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15년 7월 한 달 간 17억2천만 원을 광고비로 집행하며 광고비 지출 기업 1위를 기록했다. '재벌닷컴'은 2012년 삼성전자 광고선전비가 전체 기업의 14.4%에 달하는 2조7727억 원이라고 밝혔다.

“일단 국민이 소유한 언론사가 중심을 잡아야 하는 건 분명하다.” 삼성전자 반도체 직업병 왜곡보도와 관련된 손해배상 소송을 맡은 김성순 변호사는 수익 구조를 당장 해결할 수 없다면 광고주에 덜 의존적인 ‘공영방송’부터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의 보도 환경에서는 “도저히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의 본질을 알 수 없다”고도 말했다.

공영방송은 ‘5%가 50%를 담당하는’ 삼성 직업병 보도 환경에서 이를 보완하는 역할을 맡아왔을까. 지난 4년 간의 방송사 KBS, MBC, SBS, JTBC 리포트(1분20초 분량의 방송보도)를 비교 분석한 결과 ‘그렇지 않다’는 답이 나왔다. 보도량이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심층 취재 시도도 부족했다.

MBC의 보도량은 타 방송사에 비해 확연히 적었다. 2014년 7건, 2016년 1건 등 총 8건이 검색됐다. 2014년 7건 중 3건은 동일한 주제를 반복 보도한 리포트다. 2015년엔 단신 기사만 보도됐고 1분20초 분량의 리포트는 생산되지 않았다. 총량 8건은 JTBC 37건 보도와 비교하면 5분의 1을 겨우 넘는다.

보도량은 종합편성채널 JTBC가 제일 많았다. JTBC(37), SBS(18), KBS(15), MBC(8) 순이다. JTBC는 11월 중순부터 시작된 탐사기획 보도 8건을 제외해도 2014~2017년 동안 29건의 리포트를 만들었다. KBS와 MBC는 2순위를 차지하지도 않았다.

JTBC 보도량이 많은 이유는 다양한 쟁점을 지속적으로 보도했기 때문이다. 난소암, 유방암, 뇌종양 등 2016~2017년 간 법원의 산재 인정 판결을 꾸준히 보도했다. 2014~2015년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과 삼성전자 간 교섭이 진행되던 중엔 고 황유미씨 부친 황상기씨를 직접 인터뷰하거나 ‘직업병 문제가 해결됐다’는 삼성 측 주장을 검증해 허점을 지적했다. JTBC가 “삼성전자, 백혈병 피해 첫 보상…독자 보상위 '불씨’” 리포트를 통해 삼성전자의 일방적인 보상 절차를 지적할 때 KBS는 “8년여 만에 삼성전자 백혈병 예방대책 합의” 리포트를 보도했다.

JTBC의 보도량이 급격히 증가하는 시기는 2017년 8월이다. 2017년 8~11월 3달 간 20건(54%)의 리포트가 보도됐다. 2017년 8월 이전 JTBC의 보도추이는 KBS, SBS와 유사하다. 2017년 8월은 “산재 보험 제도로 노동자를 보호할 현실적·규범적 이유가 있다”며 근로복지공단의 책임을 강조한 대법원 판례가 나온 때다. 노동자 건강권 운동 진영 일각에서는 ‘역사적인 판결’이라고 환영했다.

이후 전자산업 노동자의 유방암, 다발성경화증, 뇌종양이 산재로 인정됐고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협력업체 노동자의 백혈병이 직업병으로 최초로 인정받았다. 삼성이 가족대책위원회의 변호사에게 공연 티켓을 선물하는 등 '관리'를 한 정황도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의 압수 휴대전화에서 발견됐다. 가족대책위원회는 삼성전자와의 교섭 과정에서 입장 차이 문제로 반올림으로부터 분리된 피해당사자 모임이다.

MBC의 경우 같은 기간 단 한 건의 리포트도 검색되지 않았다. 2017년 KBS 리포트 3건은 8월에만 집중돼있다. JTBC 시청자에게 주어진 정보가 KBS·MBC 시청자에겐 전달되지 않은 셈이다.

▲ 방진복 사진. 사진=반올림
▲ 방진복 사진. 사진=반올림
보도 가치 판단은 언론사 별로 다를 수 있다. 문제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만들어진 한국 언론 지형 안에서 공영방송의 위치다. 반올림이 제보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10월 기준 삼성전자 반도체·LCD 부문 피해자는 236명, 사망자는 80명이다. 삼성전자 측은 ‘작업환경과 질환과의 인과관계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정말 삼성반도체의 작업 환경과 그의 희귀병 사이에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일까요.” 지난달 21~23일 간 탐사기획 리포트 8건을 보도한 임진택 JTBC 기자가 취재후기에 쓴 질문이다. 김성순 변호사는 지난 11월28일 열린 ‘반올림 언론보도피해소송 판결의 의미’ 토론회에서 “막강한 광고주의 존재가 언론으로 하여금 사회적 책임을 완수하기 어렵게 할 정도에 다다른건 분명하다”면서 “광고수입, 협찬 등의 이익에 좌우되지 않을 수 있는 언론이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 통계 자료는 2014년 1월1일부터 2017년 12월1일까지 네이버 뉴스검색 페이지 및 KBS·MBC·SBS 뉴스 홈페이지에서 ‘삼성 직업병’, ‘삼성전자 산업재해’, ‘삼성 반올림’을 검색어로 넣어 얻은 결과다. 단신 기사를 제외한 1분 20초 가량의 리포트 개수만 반영했다. 2회 이상 보도된 동일한 제목과 내용의 리포트는 1회 보도로 계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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