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첫 특별 사면 대상자에 양심수를 포함시켜 석방하는 문제에 대한 찬반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과 이석기 전 의원 등을 포함한 양심수 전원 석방을 요구하는 시민사회와 이에 반대하는 보수 세력이 충돌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선택에 따라 공방이 커지면서 이념 대립의 성격을 띄는 ‘사면정국’으로 돌입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양심수석방추진위원회는 지난달 20일부터 각계 민주인사와 민주시민사회단체를 대상으로 ‘적폐청산과 인권 회복을 위한 양심수 전원석방 1210 시국선언 참가 요청’ 공문을 보냈다. 추진위는 오는 3일까지 시국선언에 동참할 참여자 및 참여단체를 받고, 10일 시국선언문을 발표할 계획이다.

추진위는 제안서에서 “박근혜 정권 적폐청산은 과거 청산의 일종”이라며 “모든 과거 청산은 피해자에 대한 회복구제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이 땅의 양심수는 박근혜 적폐의 대표적 피해자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감옥에 있어서는 정의가 바로 세워질 수 없다. 올바른 적폐 청산을 위해서라도 양심수 석방은 즉각 실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추진위는 “현재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 통합진보당 이석기 전 의원을 비롯해 정치활동과 노동운동과 사상을 이유로 구속돼 있는 양심수는 전국적으로 19명에 이른다”며 “양심수 석방을 뒤로 돌려서는 제대로 된 적폐 청산을 실현할 수 없다. 적폐 청산을 약속하는 정부라면 양심수 석방을 나중의 과제로 돌려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양심수 전원 석방 요구가 문재인 정부에 부담이 되고 보수 세력에 공격의 빌미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적폐청산이 정치보복 프레임으로 공격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양심수 석방 문제가 떠올라 이념 공세로 몰아붙일 경우 오히려 적폐청산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이석기 전 의원을 사면할 경우 지지층 사이 이견이 표출되고 보수층의 반발이 커지면서 정권 초반 적폐청산 작업 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다. 하지만 시민사회는 문재인 정부 출범 취지를 고려했을 때 양심수 전원 석방 결단을 내려 정면돌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1일자 신문에서 양심수석방추진위가 지정한 양심수 17명 명단을 공개하며 국가보안법 위반자와 폭력사범을 풀어주면 안된다고 보도했다. 양심수석방추진위의 요구는 현행법을 어기고 실형을 살고 있는 피의자를 석방시키라는 무모한 주장에 가깝다는 식이다.

조선일보는 이석기 전 의원을 포함해 ‘왕재산 간첩사건 주동자’, ‘김정은 찬양글 국가보안법 위반자’ 등이 양심수 명단에 포함돼 있고,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해서는 “‘박근혜 대통령 퇴진’ ‘국정원 해체’ ‘이석기 석방’을 요구하며 경찰 버스를 부수는 등 폭력 시위를 주도했던 인물”이라며 폭력사범을 양심수에 포함시켰다고 비난했다.

최순실 게이트 수사가 부실하다며 굴착기를 타고 대검찰청 정문으로 돌진한 정석만씨도 양심수 명단에 올랐다며 양심수석방추진위가 폭력시위자에 대해서도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양심수추진위 박진 활동가는 1일 통화에서 “양심수의 개념은 고정 불변의 것이 아니라 시대나 사회의 상황에 따라 정리돼 왔다”며 “조선일보 주장처럼 양심수를 대하는 시선은 곧 조선일보의 관점으로 보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진 활동가는 “한상균 위원장의 경우 법리적으로 따져도 폭력을 주도하고 지시한 적이 없다. 차량을 훼손했다고 해서 폭력 사범으로 규율할 수 없다”며 “가치의 차이가 있는데 이를 폭력사범 프레임으로 매도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양심수 개념은 항상 불화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마땅히 관용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굴착기를 타고 대검찰청에 돌진해 경비원에 부상을 입힌 정석만씨의 경우에도 양심수에 포함될 수 있느냐는 의문이 나올 수 있다. 이에 대해서도 박진 활동가는 “그분이 한 행위를 두둔할 생각은 없다. 자력구제 방식이 올바르지 않았지만 양심과 신념에 의해 벌인 일로 보면 행위 동기는 국정농단에 대한 분노였기 때문에 1년 정도 실형을 살았고 정상 참작해 사안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박진 활동가는 “양심수 석방 문제는 매번 정치적 고려 대상이 됐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풀어준다는 저항이 있었다. 하지만 사면 복권 내용은 곧 정부의 성격을 드러내는 징표 중에 하나”라며 “어떤 정부라도 집권 초반 양심수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석방이 있었다. 왜 주저하는지 모르겠다. 힘을 갖고 있는 정부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는 빚이 없는 정부이고 빚이 있다면 촛불에 빚을 지고 있다. 국민을 믿고 과감한 개혁을 하고 개혁의 일환으로 양심수 석방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결정권을 가진 문재인 정부는 여론의 눈치를 보는 듯한 모습이다. 동아일보는 법무부가 지난달 22일 검찰청에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집회 △경남 밀양 송전탑 반대 집회 △서울 용산 화재 참사 관련 시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반대 집회 △세월호 관련 집회 등 5가지 집회 참가자들에 대한 특별사면을 검토하라는 공문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관련 보도가 나오자 법무부는 성탄절 이전 특별사면은 물리적으로 쉽지 않고, 공문 내용은 실무적인 검토 단계라며 사면 대상이 결정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성탄절 이전에 사면할 계획이 있느냐고 묻는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질의에 “현재 단계로는 12월 달에 사면이 예정돼 있지 않다”며 “(공문 내용은)실무 차원의 검토에 불과하다. 그 대상자들을 사면 대상으로 포함을 시킨다거나 하는 그런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디어오늘이 여론조사기관 (주)에스티아이에 의뢰해 지난 24일부터 25일까지 이틀 동안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양심수 석방 찬반 여부를 물을 결과 찬성은 48.7%, 반대는 35.2%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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