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세계에서 ‘법조 기자’라는 타이틀은 계급장과 같다. 법원과 대검 그리고 지검 기자실은 아무 기자나 들어갈 수 없다. 기자실을 출입하려면 법조기자단이 정해놓은 자격을 갖춰야 하고 기자단 가입 투표를 통과해야 한다. 법조 기자단의 ‘승인’을 받지 못하면 일원이 될 수 없다. 법조 기자들이 묘한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 것도 기자단 가입의 벽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기 때문이다.

법원과 대검, 그리고 지검 기자실을 출입하기 위해서는 우선 6개월 동안 최소 3명의 인력으로 법조팀을 운영해 법조 관련기사를 어떻게든 써내야 한다. 6개월 동안은 기자실을 출입하지 못하고 기자단을 통해서 자료도 제공받을 수 없다. 정보가 부족하고 취재원 접근이 어려워도 법조 기사를 쓰고 투표라는 ‘심판’을 기다려야 한다.

6개월이란 인고의 시간을 보낸 뒤에는 그동안 썼던 법조 기사를 묶어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법원, 지검, 대검 기자단은 자료를 바탕으로 각각 기자단 가입 투표를 실시한다.

기자단 가입 투표 통과 요건은 재적인원 3분의 2 이상 출석에 과반수 찬성이다. 6개월 동안 기자 3명이 달라붙어 법조기사를 쓰고 투표를 해서 통과돼 끝이라고 하면 오산이다. 재적인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해야 하는데 투표 당일 기존 매체 기자단의 참석을 보장할 수 없다. 이슈가 터지면 투표는 연기된다. 다음 투표일까지 시간은 끝없이 기다려야 하는 인고의 시간으로 또다시 바뀐다. 6개월이 될지, 아니면 1년이 될지 3년이 될지 알 수 없다.

 

▲ ⓒgettyimagesbank
▲ ⓒgettyimagesbank

 

지난 2015년 6월부터 법조 기자단에 가입하기 위해 법조기사를 써온 A매체 경우를 보면 기자단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다.  A매체는 3명으로 된 법조팀을 꾸리고 주요 판결과 공판 내용, 검찰 수사 브리핑을 챙겼다. 팀을 만든지 6개월이 된 시점인 2015년 12월 기자단 가입 투표를 요청했지만 출입규약 변경을 논의하고 있다는 이유로 투표가 연기됐다. 해를 넘겨 2016년 다시 투표를 요청했지만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투표일조차 잡지 못했다. 그리고 올해 드디어 기자단은 A매체의 투표 요청을 받아들였다.  A매체는 투표일인 12월 8일까지 기자단 소속 기자들의 참여율을 높이고 찬성표를 받기 위해 일주일 전부터 기자단 기자들과 접촉해 투표 참여를 독려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30개사 기자단 소속 기자 중 투표에 참여한 매체는 20개사로 투표 요건이 됐지만 찬성 8표, 반대 12표가 나와 기자단 가입이 좌절됐다. 3년의 시간이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투표가 통과되더라도 그걸로 끝이 아니다. 대법원 출입 기자단은 1진 기자실로 불린다. 2진은 지검을 출입하고, 3진은 대검을 출입한다. 대검과 지검 기자단 가입 투표에 통과됐더라도 대법원 출입 1진 기자실은 한차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1진 기자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기자실을 출입할 수 없다. 그러면 또다시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 ⓒ연합뉴스
▲ ⓒ연합뉴스

 

투표가 통과되고 최종 승인을 받아 기자실을 출입하게 되면 법원과 검찰, 그리고 기자단이 설정한 엠바고를 준수해야 한다. 기자단은 법원과 검찰의 주요 브리핑을 들을 수 있다. 주요 기자회견 참석도 일순위다. 브리핑 직전이나 직후 검사와 티타임을 가지면서 관련 정보를 묻기도 한다. 사실확인을 주로 하지만 검찰발 정보를 가장 빠르게 알 수 있다.

대검과 지검을 '뚫었다면' 마지막 코스는 1진들이 모여 있는 대법원 기자단이다. 3명 이상의 기자들이 법조 기사를 써야하는 기간 6개월을 포함해 무려 3년 동안 똑같이 법조팀을 운영해야지만 대법원 기자단 가입 투표 자격이 주어진다.

지난 9월 기자 세계에서 '핫'한 소식이 있었다. JTBC, 연합뉴스TV, 채널A, TV조선, 뉴스토마토, 아시아투데이, 파이낸셜뉴스 등 7개사를 대상으로 한 법조 1진 기자단(대법원) 가입 투표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결과는 냉혹했다. 모두 오랜 시간 동안 법조기사를 쓰며 인고의 시간을 보냈지만 투표를 통과한 매체는 JTBC 한 곳뿐이었다.

▲ 기사와 무관한 사진입니다. 사진=이치열 기자
▲ 기사와 무관한 사진입니다. 사진=이치열 기자

 

법조 1진 기자단 27개사 중에 20개사가 투표해 JTBC는 과반수 찬성(11표)을 얻어 겨우 기자단에 가입했다. 하지만 TV조선과 채널A는 한표 차로 탈락하는 등 나머지 6개 매체는 눈물을 머금어야 했다. 이들은 언제 투표를 할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기약 없이 법조기사를 쓰고 있다. 법조기자단에 들어가는 것을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고 말하는 이유다.

영세한 매체나 취재 인력이 부족한 매체는 3명 이상 법조팀조차 만들 수 없기 때문에 기자단 가입 투표 대상 자격 조건을 충족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기자단의 높은 벽에 가로막히면서 취재가 어려운 점도 많다. 법원과 검찰을 오가며 취재하고 있는 한 매체 기자는 “대법원에서 중요한 판결이 있어 판결문을 받으려고 했다. 출입사는 공보과에 들러 출력된 판결문을 가져오면 되는데 비출입사는 출력 서비스를 받지 못해 읍소하거나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비출입사들은 간단한 공판 일정을 파악하는 것도 어렵다. 일정을 요청해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언론사의 취재 일정을 통해 알아내거나 재판장을 찾아 공판 일정을 직접 보는 방법밖에 없다.

지난 2월 부산지역 민영뉴스통신사 소속의 한 기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기자는 부산지역 법조기자단에 가로막혀 제대로 된 취재를 하지 못해 괴로워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한국기자협회는 논평을 통해 “부산에서 법원과 검찰을 출입하던 그는 법조기자단 소속이 아니라는 이유로 기자실 출입을 못했고, 브리핑은 물론이고 공소장, 판결문조차 제대로 제공 받지 못했다고 한다. 알음알음 판결문을 받아 기사를 썼는데 기자단이 법원 관계자에게 왜 자료를 주느냐 항의했다는 얘기도 들린다”고 비판했다.

대한민국에서 법조기자가 되고 싶다고? 그래서 법원과 검찰을 휘저으며 취재하고 싶다고? 어쩌면 당신은 순진한 꿈을 꾸고 있는지 모른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