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힉! 손이 왜 이렇게 차가워요?”
“헤헤… 마음이 따뜻해서요.”
믿기지 않겠지만 이게 내가 그녀의 손을 처음 잡았던 날의 대화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그녀의 손을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손난로를 팔기 위한 글이다. 연애 소설 첫 페이지 같은 이 글은 온라인 편집샵 29cm ‘[특가]아이뉴 3in1 스마트워머/손난로’ 판매 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연인이 손난로의 기능을 설명하는 등 조금 어색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제품 설명서 대신 소설처럼 제품을 설명한다. 29cm는 이렇게 제품 판매 페이지를 하나의 콘텐츠로 만든다.

▲ 29cm의 '29cm 매거진'. 손난로를 파는 페이지 속 소설.
▲ 29cm의 '29cm 매거진'. 손난로를 파는 페이지 속 소설.
이름부터가 29cm. 누군가가 신경 쓰이는 거리가 29cm 정도일 것 같아서 지은 이름이지만 커머스(commerce, 거래)와 미디어(media)의 첫머리를 딴 것이기도 하다. 이미 29cm는 판매제품을 자신들만의 ‘톤앤 매너’로 재가공해 판매하는 편집샵으로 유명하다.

이들의 제품 하나하나가 콘텐츠처럼 보이는 이유는 제품들의 사진을 29cm의 느낌으로 다시 찍기 때문이다. 직원 중 5명이 사진을 찍고, 2명은 영상을 만든다. 초창기에는 대부분의 제품 사진을 다시 찍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제품의 사진을 다시 찍지는 않는다. 패션 분야는 브랜드에서 제공한 사진이 29cm의 톤과 맞지 않을 경우나 외국인 모델을 사용해 실제 착용 느낌을 알 수 없을 경우에만 다시 촬영을 한다. 하지만 라이프스타일 관련 제품은 여전히 대부분 새로 촬영을 하고 스토리텔링을 한다.

제품 소개는 미디어팀에 속한 에디터들이 쓴다. 총 100여 명의 직원 중 커머스팀은 30여 명, 미디어팀은 35명 정도다. 에디터들은 ‘29cm 매거진’을 통해 제품을 설명하는 소설도 쓰고, 전시 소개와 서평도 쓴다. 말 그대로 ‘잡지 에디터’같은 역할을 한다.

광고와 잡지 업계에서 일하던 김세일 29cm 미디어팀 디렉터는 29cm에 합류한 지 1년 반이 됐다. 올해로 7년째가 되는 29cm는 지난해 초 김세일 디렉터를 포함해 대규모 인사를 단행했다. 그동안 ‘커머스’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미디어’에 더 힘을 실을 것이라는 메시지였다.

“그 전에는 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스토리텔링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콘텐츠 자체가 수익모델이 되고 있다. 미디어 플랫폼으로서, 외부 브랜드의 광고를 대행하는 구조로 가고 있다. 이 시작은 2014년 정도였지만 2016년 미디어 업계 사람들을 여러 명 채용하며 더 적극적으로 변화하려고 했다.”

▲ 24일 서울 합정동 29cm 사옥에서 진행된 인터뷰. 김세일 디렉터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24일 서울 합정동 29cm 사옥에서 진행된 인터뷰. 김세일 디렉터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김세일 디렉터는 “아직까지는 여전히 커머스를 통한 매출 비율이 80%를 차지하고 있지만 3년 후에는 커머스와 미디어의 매출 비율이 각각 50% 정도가 될 것이라 예상한다. 미디어 매출은 브랜드와 협업하며 만드는 광고 매출이 대부분”이라며 “유료 회원에게 더 자세한 콘텐츠를 볼 수 있도록 하는 상품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29cm의 콘텐츠 판매 전략은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한 광고 콘텐츠 판매다. 29cm는 숙박 공유 플랫폼 ‘에어비앤비’나 자동차 브랜드 ‘BMW’와 협업해 성과를 냈다. 이용자들에게 취향에 맞는 에어비앤비 숙소를 추천해주고 바우처를 사용하는 식의 광고를 대행했는데, 바우처 사용률이 90%가 웃돌았다. 보통 광고를 통한 바우처 사용률은 20~30%라고 한다.

BMW mini 광고의 경우 5가지 모델에 맞는 사람들의 성향을 나눠 그 이미지에 맞게 상품 패키지를 만들기도 했다. 김세일 디렉터는 “브랜드와 함께 광고를 하지만 그 광고의 톤 역시 철저히 29cm답게 한다”며 “브랜드들도 우리의 이미지를 활용해 얻을 것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광고를 집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29cm에서는 고객들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라이프스타일 테스트를 제공한다. 이 테스트로 고객의 성향에 맞는 제품을 추천한다. 라이프스타일 테스트는 http://www.29cm.co.kr/lifestyle_test/에서 할 수 있다.
▲ 29cm에서는 고객들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라이프스타일 테스트를 제공한다. 이 테스트로 고객의 성향에 맞는 제품을 추천한다. 라이프스타일 테스트는 http://www.29cm.co.kr/lifestyle_test/에서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스위스 가방 브랜드 ‘프라이탁’의 온라인 전용몰을 유치하기도 했다. 친환경 방식으로 가방을 만드는 ‘프라이탁’의 온라인 전용몰은 29cm가 세계 최초였다. 왜 브랜드들은 29cm를 선택할까.

“우선 개별 브랜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한다. 보통 쇼핑몰들은 브랜드에서 보내오는 제품 사진 그대로를 온라인에 올려 판매한다. 하지만 29cm는 제품 사진부터 다시 찍는다. 여기에는 우리의 톤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별 브랜드의 톤을 드러내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 단순히 제품 사진만 찍는 게 아니라, 이 제품을 좋아할 만한 고객의 유형을 상세하게 설정해서 스토리텔링을 한다. 이 제품은 평소 ‘미니멀’(minimal)하고 까만색을 좋아하는 고객이 좋아할 것이라는 설정을 두고 상세 컷을 촬영하는 식이다.”

철저하게 ‘29cm 다운’ 제품을 선택하고 보여주면서 29cm는 ‘충성고객’들을 만들어왔다. 11월 현재 85만 명의 회원 수를 보유하고 있고, MAU (Monthly Active Users, 한 달 동안 해당 서비스를 이용한 순수한 이용자 수)는 800만 명 정도다. 실질적 구매로 이어지는 비율은 10% 정도라고 본다. 김세일 디렉터는 “이 정도면 충성 고객이 많은 것이라 본다. 충성고객들에게 그만큼의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많은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 29cm매거진 화면.
▲ 29cm매거진 화면.
제품 설명이나 사진 촬영 외에도 ‘29cm 매거진’을 통해 다양한 유형의 고객들에게 알맞은 음악이나 전시, 책, 영화를 추천하기도 한다. 고객의 전체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29cm가 주력하는 것은 시스템 개발이다. 시스템 개발팀에만 20여명이 소속돼있고, 업계에서 입소문난 인재들을 데려와 ‘IT회사냐’는 질문도 받았다. 김세일 디렉터는 “회사 규모에 비해 시스템 개발 인원이 많은 구조다. 인력풀 최고라고 자부한다”며 “자체적으로 솔루션을 만들고 개발할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시스템 개발팀이 여력을 쏟는 것은 쇼핑 관련 AI(인공지능) 시스템이다.

“우선 고객의 데이터를 모으려고 애쓰고 있다. 애니어그램 이벤트를 제공해서 고객의 성향을 파악했다. 고객을 9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그 데이터가 입력되면 옷부터 시작해서 라이프스타일 상품, 노래, 전시까지 추천한다. 또 쇼핑 데이터로 선호하는 색깔이나 소재, 구매하는 시간대 같은 데이터를 모아 최적의 ‘큐레이션’(고객을 위해 상품을 제안하는 것)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시스템이 더 좋아지면, 고객들에게 더 좋은 큐레이션을 제공할 수 있다.”

고객과의 상호작용을 늘리기 위해 ‘천만 원 상품 장바구니에 담기 이벤트’, ‘시티 리포터’ 이벤트들을 추진하기도 했다. 천만 원 어치의 상품을 장바구니에 담으면 1명에게 그 상품을 선물하는 이벤트는 신규 회원들을 끌어 모았고, 세계 곳곳의 도시에 리포터들을 선발해 보내는 이벤트는 고객들과 소통을 늘리고 콘텐츠 제작까지 염두에 둔 것이었다. 내년 상반기에는 오프라인 공간도 만들 예정이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문화 복합 공간’과는 다르다는 점도 강조했다.

▲ 29cm의 시티리포터 모집 공고.
▲ 29cm의 시티리포터 모집 공고.
“고객에 대한 분석 없이 ‘그저 좋은 걸 제공하면 따라오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시대적으로 맞지 않다. 좋은 큐레이션이 되려면, 상대를 알아야만 한다. 그래야 현실적인 제안이 된다. 고객과 상호 작용이 있어야 지속가능한 제안이 되고, 진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브랜드는 미디어다: 2004년 ‘파이낸셜 타임스’의 톰 포렘스키(Tom Foremski)가 “모든 브랜드는 미디어 기업이다”(Every company is a media company)고 말한 지 십여 년이 지났다. 이제는 ‘브랜드 저널리즘’을 하지 않는 기업을 찾기 힘들 정도다. 그렇다면 모든 브랜드가 미디어인 시대에, 기업들은 ‘미디어화’에 얼마나 역량을 쏟고 있을까.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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