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고용노동부 늑장 대응에 백혈병 피해자 소송 중 숨을 거두고…”

미흡한 역학조사 꾸짖은 법원, 구글링으로 거짓 잡아낸 변호사

반올림은 지난 10년 간 어떻게 산재 소송을 이끌어왔을까. 정보 접근이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반올림은 작업장 위험성을 드러낼 수 있는 간접사실들을 최대한 끌어모으고 삼성 측 거짓말과 근로복지공단 측 주장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임 변호사는 산재 신청 접수 시 산보연이 작성하는 ‘역학조사보고서’를 꼼꼼히 살피는 것부터 시작한다. 재해자 측이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역학조사 자료다. 이들은 현장 조사 입회를 요청해도 사업주가 거부하면 할 수 없다. 반올림의 변호사, 노무사 등은 삼성전자 공장 안에서 이루어진 조사에 참여해본 적이 없다.

▲ 반올림 상임활동가 임자운 변호사.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반올림 상임활동가 임자운 변호사.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임 변호사는 보고서에서 ‘산보연이 하지 않은 것’을 주요하게 살핀다. 예를 들어 산보연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질에 대한 조사 요청을 받아도 조사를 하지 않고 ‘위험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린 경우다. 삼성전자 온양사업장 노동자로 뇌종양에 걸려 숨진 고 이윤정씨(33세 사망) 사건에서 일부 역학조사평가위원이 ‘배출가스와 검댕의 성분, 위험성에 관한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냈으나 산보연은 이를 규명하지 않고 조사를 종결했다. 이씨는 1심에서 승소, 2심에서는 패소했다.

이윤정씨는 지난 14일 대법원 판결을 통해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최초로 뇌종양을 산재로 인정받은 노동자가 됐다. “산보연이 역학조사 당시 포름알데히드, 납 등 일부 발암물질 노출수준을 측정하지 않았고 고온테스트를 마친 직후 기계에서 배출되는 고무가 탄 듯한 냄새의 원인물질과 검댕의 성분에 관해서도 조사하지 않았다.” 재판부가 판단 근거로 명시한 내용의 일부다.

임 변호사는 ‘구글링’을 해서 삼성전자 측 허위주장을 규명하기도 했다. 달리 말하면 구글링을 해서 알 수 있는 수준의 정보를 산보연이 검증하지 않은 것이다. 1·2심에서 산재를 인정받은 난소암 피해사망자 고 이은주씨(35세 사망)의 경우 유족은 ‘EN-4065’, ‘8351C’라고 불리는 물질을 에폭시수지 접착제로 사용했다고 밝힌 반면 삼성전자는 ‘EN-4066’을 썼다고 답했다. 산보연은 유족이 주장한 물질은 어느 납품업체 사이트에서도 검색이 안된다며 사측이 주장한 물질만 분석했다.

임 변호사는 ‘8351C semi conductor’ 등의 검색어로 직접 웹사이트를 뒤져 이 물질이 반도체 공정에 쓰이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납품업체에 확인 결과 ‘EN-4065’와 ‘8351C’를 삼성전자에 납품한 게 맞고 삼성이 밝힌 ‘EN-4066’은 알지 못했다.

법원이 문서제출명령을 내려도 회사가 ‘보관하지 않는다’거나 ‘영업비밀’이란 이유로 제출을 거부하면 방법이 없다. 이럴 경우 임 변호사는 ‘자료를 비공개 혹은 은폐한다’는 사실 자체를 강조했다. 법원을 통해 거듭 자료 제출 요구를 했고 끝내 불응해 공개되지 않은 자료는 목록으로 정리해 재판부에 제출했다.

간접 증거를 찾아 헤매다 삼성전자 홍보 웹사이트에서 되레 도움 자료를 얻는 경우도 있었다. 삼성전자 건강연구소는 다발성경화증 피해자 이소정씨(33)가 일했던 공정에 관한 연구 결과를 홍보하며, 해당 공정에서 37종의 화학물질 부산물이 발생했으나 그 안에 발암물질은 없다고 했다. 정작 그 부산물의 목록은 공개하지 않았다. 당시 임 변호사에게 필요한 건 발암물질이 아닌, 유기용제 및 신경독성물질 존재 여부였다. 그는 법원을 통해 목록을 받아냈다. “당연히 그 목록 중엔 신경독성물질이 있었다.”

‘다발성경화증’ 피해자 3명 모두 직업병 인정

한 피해노동자는 존재 자체로 ‘다발성경화증’ 직업병 소송을 승소로 이끄는데 도움이 됐다. 다발성경화증은 인구 10만명당 3.5명이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진, 발병율이 낮은 희귀질환이다. 유기용제 등이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있으나 역학적·실험적 근거가 부족해 원인 물질, 발병 기전 등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노동자가 방진복을 입은 모습. 사진=반올림
▲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노동자가 방진복을 입은 모습. 사진=반올림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임 변호사는 다발성경화증 산재 소송에서 패소만 거듭했다. 당시 반올림이 파악한 다발성경화증 피해자는 이희진씨, 이소정씨, 김미선씨(37) 세 명이었다. 희진씨의 1·2심과 소정씨의 1심이 패소로 끝난 후인 2015년 12월, 또다른 다발성경화증 재해자 은영씨(37·가명)가 반올림으로 메일을 보내왔다. 자신의 치료 방법이 효과적이어서 다른 피해자에게 방법을 알려주고자 연락을 해 온 것이다.

임 변호사는 “희귀질환이므로 삼성 반도체 기흥공장에서 다발성경화증 환자가 나온 것 자체가 중요했다”며 “설득 끝에 직접 만나 이 분의 의무기록, 진술서 등을 받았고 다발성경화증 피해자는 3명에서 4명으로 추가됐다”고 말했다.

“반격이 시작됐다.” 2017년 2월 김미선씨가 1심에서 승소했다. 이어 5월 소정씨가 2심에서 승소했다. 소정씨의 2심은 임 변호사가 “할 수 있는 건 다 쏟은” 소송이었다. 미선씨의 2심, 희진씨의 3심이 남은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많은 화학물질을 다뤘던’ 소정씨가 패소하면 비관적 전망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7월과 8월, 미선씨와 희진씨가 연이어 승소했다. 근로복지공단은 미선 씨와 소정 씨에 대해 상고하지 않았다. 2017년 세 피해노동자는 모두 직업병 재해자임을 확인받았다. 네 번째 피해자 은영씨는 지난 10월31일 반올림의 지원을 받아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접수했다.

“10년 간 변하지 않은 것은 ‘모르쇠’ 삼성 태도”

지난 8월 대법 판례는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선고가 아니다. 전반적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유사한 취지의 판결 수가 늘어났고 직업병 인용 해석의 수준도 보다 적극적으로 변해왔다. 임 변호사는 이 흐름을 만든 건 지난 10년 간 피해 당사자들의 지난한 싸움과 노동자 건강권을 위해 활동한 모든 사람들의 노고라고 말했다.

2013년 백혈병 피해자 김경미씨(28세 사망)의 1심 재판부는 삼성전자의 비협조적 자료공개 태도를 지적하며 “이런 상황에서 업무관련성에 대한 엄격한 증명 책임을 노동자 측에 부담시키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 임자운 변호사.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임자운 변호사.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2016년 1월 난소암 피해사망자 이은주씨의 1심 재판부는 “망인이 노출된 유해 물질의 농도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지만 농도가 낮다 해도 장기간 지속적으로 노출됐다면 유해성을 가볍게 부인해선 안된다”고 판시했다.

2017년 8월 삼성반도체 납품업체인 QTS의 한 유방암 산재 피해자 1심 재판부는 산보연의 미흡한 역학조사를 지적하며 “산재보상 제도 목적에 비춰보면 노동자에게 책임이 없는 사유로 사실관계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사정에 대해선 증명책임에서 열악한 지위에 있는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인정할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

임 변호사는 “피해 가족분들이 다른 피해자 보상 문제를 외면해 합의하지 않고 고생하고 버티고 싸워왔고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사회 여론이 판결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면서 “이는 변호사 능력과 아무 관련이 없다. 그 이전에 쌓아 온 운동의 힘”이라고 말했다.

그는 10년 동안 변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 삼성전자의 태도를 지적했다. 단적으로 지난 22일 국제환경단체 IPEN과 베트남 시민단체 CGFED가 베트남 삼성전자 휴대전화 공장 작업자 45명을 인터뷰해 정리한 노동환경 보고서에 대해 삼성전자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보고서는 현장 조사와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는 것으로, 모두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내용”이라고 밝혔다.

임 변호사는 “활동가들이 어렵게 삼성전자 공장 노동자를 한명씩 만나서 인터뷰를 해 보고서를 냈으면, 미심쩍더라도 ‘조사해보겠다’고 말해야 했다”면서 “무조건 아니라거나 의도를 가지고 거짓 보고서를 냈다는 식인데 10년 전 황상기 아버지가 유미씨 이야기를 했을 때 반응과 같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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