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웃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언론계 모임인 관훈클럽이 이낙연 국무총리를 초청해 국정 현안을 묻는 토론회 자리였다. 좀처럼 웃음이 나올 수 없는 자리였지만 예상을 깬 것이다. 기자들은 논란이 될 수 있는 쟁점을 거듭 캐물었다. 적당히 피해갈 수 없도록 덫을 놓고 먹잇감을 포착하는 언론인 특유의 질문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 총리의 답변은 거침이 없었다.

특히 이 총리가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기조와 대립되는 정치보복 주장에 대해 답변할 때 장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메시지는 가볍지 않았다. 언론 보도의 속성을 꼬집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이 총리는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문재인 정부 적폐청산 작업을 정치보복이라며 반발하고 있는데 정치보복과 적폐청산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언론들이 즐겨 다루는 굵직한 수사가 크게 보면 두 가지다. 국정농단 사건에서 파급된 여러가지 수사들이 한줄기가 있고, 또 하나는 이른바 댓글 사건이다. 이명박 정부 때 벌어진 일들이다. 문재인 정부가 기획했던 게 아니지 않느냐. 국정농단 사건은 탄핵 이전 드러난 것이고 수사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고 보는 게 정당하다. 댓글 사건은 몇년 전 조사됐는데 조사가 충분하지 않아서 기존 조사와 다른 증언들이 나오고 있다. 그것을 덮는다고 하면 정부라고 할 수 있느냐고 되묻고 싶다. 수많은 위법 사례를 조사하고 처벌하는데 굳이 이걸 덮어야 하는 게 옳은 것이냐. 오히려 정부의 길을 포기하는 것이다.”

장내에서 웃음이 나온 것은 바로 이어진 질문에 대한 답변 때문이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상대적으로 미래비전을 제시하고 혁신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위축돼 있다. 과거 청산 작업과 미래비전을 제시하고 기업 활력을 제시하는데 무게 중심이 후자 쪽으로 가는 흐름으로 반전될 필요성이 없느냐’라는 질문을 받고 이 총리는 “언론인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정색을 하고 드리는 말은 아니지만 언론이 즐겨 다루기에, 미래지향적인 정책 이런 것보다는 누굴 조사하는 걸 (언론이)훨씬 즐겨 다루지 않느냐”고 답했다. 언론 보도의 속성을 비틀면서 적폐청산 작업의 정당성을 주장한 셈이다. 장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이 총리의 얼굴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이 총리는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20여년 동안 언론계에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연을 맺어 정치에 입문했고 대변인 역할을 맡아 호평을 받았다. 언론 보도의 속성을 꼬집는 답변을 내놓을 수 있는 것도 이 총리가 언론계 출신이면서 대언론 업무에 능숙했던 정치 이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이 총리는 국회 본회의에서도 야당 의원들의 공세적인 질문을 정면 돌파하는 화법으로 주목을 받았는데 이날 관훈클럽 토론회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 이낙연 국무총리. 사진=이치열 기자
▲ 이낙연 국무총리. 사진=이치열 기자

이 총리는 구속적부심에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 등 댓글사건 피의자들을 석방시킨 법원 판결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이 총리는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안했다라는 건 구속 필요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지 유무죄의 판단은 아니다”면서 “법원을 존중하지만 법원의 판결이 매번 옳은 것도 아니다. 똑같은 재판부가 똑같은 사람들에 대해서 특별히 사전변경도 없는데 영장을 냈다가 구속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걸 보면 둘 중 하나는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다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국정원 개혁에 대한 반작용으로 흔히 제기되는 안보 우려 프레임에 대해서도 이 총리는 반문하는 특유의 화법으로 국정원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총리는 “그렇다면 댓글을 조사하지 않았던 시기에 국정원이 본연의 업무에 충실했던가를 반문하고 싶다. 청산 과정을 거치면서 국정원 본연의 업무에 전념하도록 바로 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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