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한국e스포츠협회 명예회장이었을 당시 롯데홈쇼핑으로부터 후원금을 받은 것이 뇌물수수 혐의가 있다고 보고 검찰이 수사에 돌입하자 청와대는 ‘정무수석 재임 이전에 벌어진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결국 전병헌 전 수석이 문재인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자진사퇴하고 검찰 소환에 응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청와대로서도 적폐청산 기조에 자칫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이었는데 전병헌 전 수석이 현직에서 사퇴하면서 한숨을 돌리게 됐다. 전병헌 전 수석에 대한 구속영장이 한차례 기각된 것도 청와대 입장으로 보면 다행스런 일이다. 청와대에 들어오기 전 벌어진 일이라고 하지만 현직 권력이 검찰 수사를 받아 구속됐다고 하면 청와대의 인사시스템에도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영장이 기각된 후 다른 변수가 생겼다. 검찰이 수사를 확대해 전병헌 전 수석이 정무수석 재임 당시 한국e스포츠협회 신규 예산을 편성하기 위해 기획재정부에 요구한 것을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보고 구속영장 재청구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직권남용 혐의가 추가돼 전병헌 전 수석이 구속되면 ‘청와대 오기 전 일’이었다는 청와대 입장이 무색해지기 때문이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검찰은 구윤철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다. 검찰은 구 실장이 전병헌 전 수석이 현직으로 있었던 지난 7월 청와대 정무수석실로부터 전화를 받고 1~2차 정부예산안에 편성되지 않았던 e스포츠 관련 예산이 편성된 경위를 캐물었다.

e스포츠 활성화 지원 사업 예산은 올해보다 18억원 2600만원 증액돼 편성됐는데 예산 산출 근거가 다섯 줄에 불과해 예산 편성 부실 논란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신규 사업 예산 규모의 산출 근거가 구체적인 집행 계획에 근거하지 않은 채 추상적 방향만 제시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으로 나왔다.

▲ 전병헌 전 정무수석. 사진=민중의소리.
▲ 전병헌 전 정무수석. 사진=민중의소리.


예산 편성 명분이 부실함에도 전병헌 전 수석이 ‘외압’을 넣은 게 아닐 수도 있다. 게임업계의 요청과 활성화를 위한 차원에서, 절차상 문제없이 관련 예산이 편성됐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검찰이 이 같은 내용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체가 청와대 입장에선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검찰이 기재부 예산실장 뿐 아니라 문화체육관광부 실무자를 소환 조사한 것 자체가 전병헌 전 수석의 직권남용 혐의를 무겁게 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전병헌 전 수석의 수사 사항과 관련해 말을 아끼고 있다. 전병헌 전 수석 검찰 수사 소식이 알려진 이후 청와대는 줄곧 수사와 관련해 어떠한 내용도 검찰과 조율하지 않았고 관련 사실을 사전에 공지 받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전병헌 전 수석 직권남용 혐의의 경우 청와대에서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가 참모진에 대한 관리 감독 기능이 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e스포츠 예산 편성 과정에서 전병헌 전 수석이 개입해 압력을 넣은 것이 사실로 드러나 직권남용 혐의가 추가돼 구속되면 최순실의 미르-K 재단 모금 과정을 연상케하면서 적폐청산 기조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권력을 손에 쥔 인사가 시스템을 흔든 사건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청와대가 입장을 내놔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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