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이요? 60대 이상만 봅니다. 그래서 민영방송에 대한 규제가 필요합니다.”

지난 23일 방송통신위원회가 주최하고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가 주관한 ‘미디어 다양성 증진의 모색’ 국제 컨퍼런스 참석차 방한한 게오르기오스 구날라키스 독일 KEK 위원장을 23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만났다. 독일 KEK(미디어영역집중조사위원회, Kommission zur Ermittlung der Konzentration im Medienbereich)는 방송사의 시청점유율을 판단하고 상업방송에 대한 규제 권한을 행사하는 기구다.

역설적으로 상업방송 규제 기구인 KEK에겐 공영방송의 현실이 중요했다. 구날라키스 위원장은 “독일 공영방송의 주 시청층은 60세 이상”이라며 “젊은 층인 14~49세 대부분은 유튜브 등을 통해 동영상을 보거나 TV를 보더라도 민영방송을 주로 본다. 공영방송은 독일의 전 계층 전 세대에게 충분히 시청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따라서 대다수의 젊은 층을 상대하고 전 계층에게 보급되는 상업방송에 대한 규제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게오르기오스 구날라키스 KEK 위원장. 사진=이치열 기자.
▲ 게오르기오스 구날라키스 KEK 위원장. 사진=이치열 기자.

일각에서는 한국도 독일처럼 무료 지상파 채널을 늘리는 다채널서비스를 활성화하는 것이 ‘공영방송의 대안’처럼 여겨지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 구날라키스 위원장의 견해다. “공영방송에 전문채널이 있고, 청소년 등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도 하는데 1%도 안 되는 시청률을 수십 개 만들어도 소용없다”는 것이다.

독일은 막강한 ‘시청점유율’ 규제를 갖고 있다. 시청점유율은 시청자들이 미디어를 시청하고 읽는 등의 현황을 점유율로 환산한 수치다. 상업성에 치중한 민영방송에 대한 통제 수단으로 ‘과도한 점유율’을 규제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KEK는 2005년 8월 독일의 출판 그룹 악셀 슈프링어(Axel Springer AG)가 독일의 양대 방송 그룹의 하나인 프로지벤자트아인스(ProSiebenS)의 인수시도에 ‘불허’ 결정을 내리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구날라키스 위원장은 “다원주의 보장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 독일 공영방송은 위원회 시스템을 통해 종교, 정당 등 모든 사회그룹의 의견이 방송 프로그램에 반영되도록 한다”면서 “이처럼 공영방송에서는 내부적 장치로서 다양성이 확보되지만 민영방송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외부적인 방법으로 규제를 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2010년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독일처럼 시청점유율 30% 넘는 방송사 소유를 제한하겠다”며 도입한 것이 한국의 ‘시청점유율 규제’다. 그러나 실제 독일 규제 모델은 한국과 달랐다. 구날라키스 위원장은 “시청점유율이 10%, 20%가 되면 의무적으로 지역방송 등 제3자에게 방송시간 일부를 할당하게 두는 예방적 규제가 있다”고 말했다.

가장 큰 차이는 ‘규제의 현실성’이다. 한국은 신문과 방송의 합산 시청점유율을 책정할 때 단순히 유료신문 구독자수를 반영한다. 그러나 유료신문 구독자수가 과장돼 있는 데다 이들이 실제 신문을 읽는다는 보장도 없다. 반면 독일의 시청점유율 합산 방식은 소구력, 파급력, 시의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온라인 매체, 잡지의 점유율까지 합친다. 실제 악셀 슈프링어는 일간신문 17%, 텔레비전 프로그램 가이드 잡지 4%, 대중잡지 1%, 온라인 매체 3% 등 총 25% 점유율에 프로지벤자트아인스 그룹의 시청자 점유율 22%를 더해 인수합병이 불허됐다.

구날라키스 위원장은 “민주주의는 다원성, 다양성이 없다면 불가능하다”고 지적하며 미디어 다양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철학이 규제의 바탕이라고 강조했다.

“기업이 기술혁신해서 좋은 제품 싸게 팔면 괜찮은데 방송은 그렇지 않다. 방송이 파는 상품은 정보고 그 정보를 기초로 해서 사람들은 선거에 영향을 받는다. 이 정보가 획일적이면 여론이 하나로 편중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상당히 위협적일 수 있다. 따라서 예방적 조치로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연방헌법재판소는 여론형성에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민영방송사업자가 등장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막기 위해 KEK를 만들게 했다.”

독일은 ‘보도’ 기능이 없는 채널에 대해서도 ‘규제 체계’를 갖고 있다는 점이 한국과 다르다. 한국에서는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채널에 한해서만 시청점유율 규제를 두고 있다. 반면 독일에서는 모든 장르의 프로그램이 여론형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점유율에 합산한다. 구날라키스 위원장은 “모든 시청자와 국민이 뉴스 프로그램을 시청하지는 않는다”면서 “대다수 국민은 연예, 오락프로그램을 많이 보는데 여기에서 시사적인 내용을 접하거나 암시받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 게오르기오스 구날라키스 KEK 위원장. 사진=이치열 기자.
▲ 게오르기오스 구날라키스 KEK 위원장. 사진=이치열 기자.

특히 구날라키스 위원장은 “상업방송은 뉴스를 직접 제작하는 것보다 인포테인먼트를 더 강화하고 있다”고 우려하며 “인포테인먼트 분야를 포함시키는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 연방헌법재판소 판결 요지”라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독일 양대 민영방송은 뉴스를 제작하지 않고 같은 언론사로부터 구입하고 있다. 기자를 고용하고 취재하는 데 비용이 드는 뉴스는 상업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민영방송은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을 대거 편성하고 있다. 이는 종편의 시사토크 프로그램과 유사하다. 한국은 ‘시사토크’를 ‘보도’와 같은 범주로 넣지만 독일에서는 취재행위를 통한 보도와 취재가 없는 토크 프로그램이 별도의 장르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있다.

유튜브, 페이스북, 넷플릭스가 인기를 끄는 등 매체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시청점유율을 측정할지는 도전적인 과제다. 구날라키스 위원장은 “지금도 여전히 선형으로 실시간으로 운영되는 매체의 영향력은 크다고 본다”면서 “방송은 불특정다수에게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여전히 방송을 더 중요하게 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새로운 플랫폼들이 등장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건 사실이기 때문에 위원회 차원에서 어떻게 규제에 편입시킬지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통역=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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