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이사들에 대한 감사원 감사결과가 발표됐다. 11명 이사들 전원이 업무추진비를 사적으로 사용했거나 사적으로 사용한 의혹이 제기됐다. 감사원은 이 같은 감사결과를 공개하면서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에 ‘해임건의’를 포함해 적절한 인사조치 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일부 이사들은 표적 감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사적으로 사용한 금액이 수백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구여권 추천이사들은 ‘불복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물론 이들의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업무추진비 특성상 100% 영수증을 증빙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KBS 업무연관성을 어떤 기준을 가지고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역시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 나름이다. 김서중 이사(성공회대 교수)처럼 그 금액이 ‘경미한’ 수준이면 몰라도 사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의심받는 금액이 수백만 원을 넘는다면? 그것은 논란이 아니라 의혹 대상이 된다.

사기업에서 업무추진비를 이런 식으로 사용해도 문제가 될 수 있는데 하물며 감사원이 조치를 요구한 이들은 공영방송 KBS 이사들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의 경영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이사들이 업무추진비를 이렇게 ‘자의적으로’ 썼다? 어떤 국민이 이를 흔쾌히 납득할 수 있을까. 표적감사 주장 이전에 자신의 행태를 먼저 반성하고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감사원이 방통위에 적절한 조치를 요구했지만 경중과 책임은 정확히 가려야 한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KBS새노조)가 지적한 것처럼 “KBS이사는 대통령이 임명한 신분으로 금품 관련 범죄에 대해서는 공무원으로 의제될 수밖에 없다.” 공무원은 공금을 300만 원 이상 유용했을 경우 고의든 과실이든 묻지 않고 해임이나 중징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런 기준과 원칙을 KBS이사들에게 적용하면 문제가 될 수 있는 이사는 차기환·강규형 이사다. 감사원 감사 결과 11명의 이사 중 법인카드 사적사용 금액이 ‘300만 원 이상’인 것으로 확인된 이사가 두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적유용이 의심되는 금액이 더 많은 이사들도 있지만 차기환·강규형 이사는 감사원 감사에서 ‘의심’이 아니라 사적사용이 ‘확인’된 이들이다. 새노조가 이들의 즉각적인 해임을 요구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유한국당과 일부 보수언론은 감사원이 ‘정권의 흥신소’로 나섰다고 맹비난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런 비난을 할 자격이 없다. 이명박 정부가 정연주 전 KBS사장을 해임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비열한 행태에 대해 눈을 감거나 적극 옹호했기 때문이다. MB정부 출범 초기인 2008년 3월, 당시 동의대학교 총장 등은 신태섭 교수에게 KBS 이사직을 자진 사퇴할 것을 요구했다. 신 교수가 이를 거부하자 같은 해 5월 동의대 이사회는 신태섭 교수를 교수직에서 해임했다. 총장의 승인 없이 KBS 이사로 활동했다는 게 이유였다. 그전까지 특별히 문제 삼은 적이 없던 동의대에서 갑자기 신 교수에게 이사직 사퇴를 요구한 이유가 뭘까. 교육부의 동의대에 대한 ‘감사 압박’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신태섭 이사는 KBS이사직에서 해임됐다.

사실 감사원의 이번 감사결과와 신태섭 교수 건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전자는 공영방송 이사들의 업무추진비 사적유용인 반면 후자는 정권의 압박 등에 의한 강압적인 해임조치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더구나 2009년 11월17일 대법원은 동의대의 신태섭 교수 해임이 부당하다는 원심을 확정 판결했다. 당시 해임 조치가 얼마나 부당했는지 사법부도 확인해 준 셈이다.

당시 신태섭 교수를 교수직과 이사직에서 몰아내는데 앞장섰던 이들은 지금까지 신 교수에게 사과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랬던’ 그들이 이젠 ‘정권 흥신소’ 운운하며 언론자유의 수호신이라도 된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공영방송 KBS를 망치는 주역들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