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최윤수 전 국정원 2차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당시 최 전 차장은 전주지방검찰청 차장 검사로 있었다. 그는 자신의 신상에 관한 언론보도 문제로 기자와 통화했다. 기자는 당사자 입장을 묻기 위해 수차례 최 전 차장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그런데 최 전 차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현직 검사로서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면서도 변호사를 통해 입장을 밝히겠다고 알려왔다.

그는 당시 억울한 피해자 신분이었다. 아내인 황수경 KBS 아나운서와 파경을 맞았다는 지라시가 돌았고, 지라시 내용을 TV조선이 보도하자 현직 검사 신분으로서 최 전 차장은 이례적으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최윤수 전 차장 측 변호사는 루머를 여과 없이 보도한 TV조선은 물론 지라시의 최초 유포자를 찾아 고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거짓으로 유포된 지라시 때문에 부부가 받은 고통이 크고 인터넷에 확산돼 고통이 가중됐고 언론이 이를 기정사실화해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강도 높은 대응 입장을 밝힌 것이다.

당시 사건은 현직 검사가 피해자 신분이었고, 지라시와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로 인한 '인격 살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소위 검사까지도 지라시와 언론보도의 피해자가 될 수 있을 만큼 허위사실 유포 피해가 심각하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 2016년 10월19일 오전 국가정보원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한 당시 이병호(왼쪽) 국정원장과 최윤수 2차장이 자리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 2016년 10월19일 오전 국가정보원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한 당시 이병호(왼쪽) 국정원장과 최윤수 2차장이 자리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미디어오늘도 관련 내용을 적극 보도했다. 최 전 차장 측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사이버 확산 속도는 빠른데 수사는 상대적으로 따라가지 못한다. 개인명예가 침해되는 상황이라며 통상적인 절차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수사방식인 패스트 트랙 방식도 명예훼손 사건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히면서 지라시 처벌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요청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라시와 언론 보도의 피해자였던 최 전 국정원 2차장은 예술계 블랙리스트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관여하고 부적절한 사찰 정보를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전달한 혐의로 검찰의 포토라인에 섰다.

최 전 차장이 국정원 불법사찰에 개입한 혐의는 자신의 부하였던 추명호 전 국장이 우병우 전 수석을 내사했던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을 사찰한 내용을 보고받아 전달했다는 내용이다.

최 전 차장은 우병우 전 수석과 서울대 법대 84학번 대학동기이면서 절친한 사이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의 사찰 내용을 우병우 전 수석에 전달한 것에 깊숙이 개입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국정원 적폐청산 TF에 따르면 최 전 차장은 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실행 관련 보고를 받아보고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를 찍어내는 데 관여한 혐의도 받고 있다.

국정원은 예술계 블랙리스트 명단을 문화체육부에 전달했는데 최 전 차장이 국정원 2차장으로 올 무렵 국정원의 블랙리스트 작성 및 전달이 시작됐고, 최 전 차장이 보고서 작성에 깊숙이 개입했다고 국정원 개혁TF는 보고 있다. 하지만 최 전 차장은 국정원이 이전부터 해오던 일로 블랙리스트를 보고받은 적은 있지만 자신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 보고했다고 해명했다.

최 전 차장은 26일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면서 관련 혐의를 묻는 질문에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말했다. 검찰 조사에서 최 전 차장은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에 대한 조사가 불법사찰이라고 인지하지 못했고, 통상적인 비위 첩보 업무로서 추 전 국장으로부터 관련 내용을 보고 받아 우 전 수석에게 자료를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하지만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을 조사한 것은 우병우 전 수석 개인의 내사를 방해하기 위한 목적이었고, 이에 관여한 최 전 차장에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불과 3년 전 지라시와 언론보도의 피해자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던 그는 영장청구를 앞두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우병우 전 수석을 내사했다는 이유만으로 사찰을 당했던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과 정부에 쓴소리를 했다고 블랙리스트에 올라 고통을 받았던 문화예술계 인사들 앞에서 최윤수 전 차장은 자신은 ‘몰랐다’라고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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