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화라고 말은 하는데 KBS는 정상화된 적이 있었습니까? 뭐가 정상화인가요? 70여 년의 KBS 역사에 노무현 정부 아주 짧은 5년을 제외하고는 청와대에서 기사 청탁이나 압력성 전화를 받지 않았던 적이 없는데, 대체 우리가 말하는 정상화는 어떤 정권, 어떤 시절의 과거를 말하고 있는 걸까요?”

최경영 뉴스타파 기자는 ‘뉴스는 어떻게 조작되는가’(바다출판사, 2017)에서 ‘2017 공영방송 파업 이후’를 말한다. 그는 KBS든 MBC든 많은 언론이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한순간 ‘정상화’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책에서 KBS의 출발부터 짚는다. KBS는 원래 정부의 한 부처로, 문화공보부의 일개 국(局)으로 시작했다. 정부의 한 부처는 당연히 공무원 역할을 수행했고 대통령 말씀은 곧 왕의 칙령처럼 보도됐다.(71p) KBS가 한국방송‘공사’가 된 것은 1973년인데, 출범 당시에도 사장은 문화공보부 차관이었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한국방송공사에 ‘유신이념의 구현’이라는 친필 메시지를 건넸다. 당시 한국방송공사가 이에 저항했을 리는 만무하다고 최 기자는 전한다. 박정희가 사라지자 전두환 대통령이 왔고, 시간이 흘러 KBS 사장은 ‘전두환 대통령 취임 1주년 리포트’를 한 김인규 기자가 됐다. 최 기자가 “짧은 노무현 정권을 제외하고, KBS가 정상인 적이 없었다”고 단언하는 이유다.

▲ '뉴스는 어떻게 조작되는가' 본문 중.
▲ '뉴스는 어떻게 조작되는가' 본문 중.
최 기자는 정권이 바뀌었다고 언론이 저절로 정상화되진 않을 거라고 지적한다. 또한 기자들의 구태의연한 행태, 즉 수십 년 동안 사용해 온 △한 면만 부각시키기 △기계적 균형 맞추기 △서민 이용하기 △숫자로 말하기 △신화적 믿음에 기대기 △관점을 생략하기 △애국주의에 호소하기 △낙인찍기라는 전통적 ‘기사 작성 방식’도 한순간에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관심을 모으는 건 ‘숫자로 말하기’다. 최 기자는 숫자에 의존하다 보면 디테일을 놓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올림픽 유치권을 따내려 할 때도, 대규모 토목공사를 진행할 때도, 경제정책을 만들 때도 고용창출 효과는 얼마고, 경제효과가 얼마라는 보도 자료를 만든다. 보도 자료가 나오면 기자들은 받아쓴다. 그래서 숫자는 남발된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유독 이런 방식을 애용했지만 이는 박정희 정권부터 내려온 전통적인 방식이다.”(160p)

나아가 최 기자는 “이런 경향이 문재인 정부라고 크게 달라지리라 믿는 것은 순진하다”고 했다. 최 기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ICT 경쟁력 지수’ 발언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한국의 ICT 산업 경쟁력이 많이 떨어졌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김대중·노무현 때는 ICT 산업 경쟁력이 세계 3위였는데 지금은 25위”라고 말한다.”(161p)

최 기자는 문재인 캠프에서 작성한 이 자료에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다. 기준이 다른 지표를 비교 선상에 둔 오류를 범했다는 얘기다. 좀 더 설명하면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에서 순위를 매겼을 때 기준은 인터넷 인프라 등 하드웨어적 요소에 중점을 둔 것이었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EIU가 발표한 ICT 산업경쟁력 지표에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에는 없었던 ‘노동시장 유연성’ 기준이 추가됐다.

“한국이 ICT 산업경쟁력을 올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을 쉽게 자를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재인 후보가 그런 의미로 말했던 것인가? 전혀 아닐 것이다.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대선 공약 첫 번째가 ‘일자리 창출’인데 ICT 경쟁력 지수가 뭐라고 자신의 첫 번째 대선 공약을 파기하면서까지 노동시장 유연성을 강화하겠는가. 그러나 문 후보는 홍보 동영상을 통해 결과적으로 자신의 주요 공약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이야기를 해버렸고, 이를 문재인 캠프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164p)

▲ '뉴스는 어떻게 조작되는가', 최경영 지음.
▲ '뉴스는 어떻게 조작되는가', 최경영 지음.
최 기자가 말하는 ‘권력’에 대한 감시에 문재인 정부도 빠질 수 없다. 최 기자는 “기자들이 게을러 취재하기 싫어하고, 흥행적 기사나 쓰려고 하고, 취재원을 도구로 이용하고, 권력 앞에서 숨죽였던 게 한국 언론”(184p)이라고 비판했다. 한국 언론의 이런 부끄러운 과오는 아직까지 현재진행형이고 여전히 국민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정권이 바뀐 뒤 공영방송 사장이 바뀌어도, 기자들이 ‘권력을 제대로 감시하고 비판’할 수 있을지, 진짜 ‘언론 정상화’가 될 수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지지율이 70%를 넘고 있다. 진보 언론이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실 최 기자 역시 ‘뉴스타파’에서 현재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측을 비판하는 기사를 실었다가 정기 회원 수가 급감한 경험이 있다. 2014년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나선 권은희 후보에 대해 권 후보의 배우자가 수십억 대 상당의 상가 자본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한 것이 대표적이다. 2017년 대통령 선거 당시 문재인 당시 후보를 포함한 후보들에게 제기된 의혹을 팩트체킹 했을 때도 비슷한 상황이 불거지기도 했다. 

최 기자가 말하는 진짜 ‘언론 정상화’는 어쩌면 단순한 지도 모른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것.’(226p) 이 책은 정권이 바뀌고 공영방송의 사장이 바뀌더라도, 언론이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정상화가 아니라는 단호한 메시지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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