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강연프로그램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세바시)이 성소수자 강연을 비공개 처리해 논란이 일고 있다. 강동희 강연자는 “재공개 해야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세바시는 25일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최근 공개한 강동희 강연자의 ‘성소수자도 우리 사회의 분명한 구성원입니다’ 강연은 세바시 채널에서 비공개 처리됐다”며 “강동희씨와 그 강연에 공감해준 모든 분들께 사과 드린다”고 밝혔다.

세바시는 “강연의 취지는 성소수자를 포함한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에 대한 인권과 그들에게 가해지는 언어적, 정신적 폭력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며 “그러나 이 강연으로 인해 CBS가 한국교회 일부 집단과 교인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고 밝혔다.

강연에서 강씨는 “젠더 민감성을 갖는 것은 상당히 피곤할 일일 수 있다. 민감해 지는 일이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포기하지 말라. 젠더 감수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성찰하고 그것을 지향할 때 조금 더 평등해지고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연 비공개의 근거가 ‘한국교회 일부 집단과 교인들로부터의 거센 항의’라는 것이 알려지자 곳곳에서 비판이 터져 나왔다. 성소수자를 섭외했을 당시부터 그 정도는 예상하지 않았냐는 것이다. 세바시에 출연했던 강연자 몇몇은 자신의 영상도 비공개 처리 해달라고 요구했다.

▲ 세바시에 출연한 강동희씨. 해당 영상은 현재 비공개 처리된 상태다.
▲ 세바시에 출연한 강동희씨. 해당 영상은 현재 비공개 처리된 상태다.

세바시 848회 ‘차별은 비용을 부른다’ 편에 출연한 손아람 작가는 25일 저녁 자신의 페이스북에 “세바시 제작진에 유감은 없고 성소수자 섭외 결정 자체로 진심은 증명되었다고 생각하며 일이 어떻게 돌아갔는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도 손 작가는 “제가 대응 압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음을 양해 부탁드리며 역대 최단 기간 2만 공유를 눈 앞에 두고 있는 제 강연 영상을 함께 내려주셨으면 좋겠다”며 “스스로 결정하시기 어려울테니 도와드립니다. 저도 성소수자입니다”라고 썼다.

이선희 다큐멘터리 감독은 25일 저녁 페이스북에 “차별과 폭력에 맞선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고 인권에 대해 전하고자 세바시 출연을 감사하게 생각했다”며 “그런데 차별의 증거가 되고 있는 곳에서 제가 전한 말들은 아무 의미 없는 것이 됐다. 제 영상을 내려달라”고 썼다.

모델 김지양씨도 26일 페이스북에 “세바시에 섰던 이유는 세상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외모, 신체적 특성, 성적지향 등을 막론하고 누구든 그대로 아름다우며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세상을 바꾼다는 슬로건이 무색해진 이상, 제 이야기를 세바시에서 더 이상 공유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썼다.

논란이 커지자 세바시 측은 26일 오후 1시30분께 페이스북 페이지에 다시 입장을 밝혔다. “차별과 폭력을 거부하기 위한 강연회를 열어왔던 우리가 거꾸로 강연자와 그 강연에 공감해준 분들에게 차별과 폭력을 저질렀음을 고백한다.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는 내용이다.

이어 세바시 측은 “이 고백과 사과가 현재 세바시와 세바시 모든 구성원의 기본 입장”이라며 “강연 재공개는 내부 절차에 따라 부득이하게 월요일(27일) 정오까지 결정해 알려드리겠다. 그동안 저희는 여러분의 마음과 댓글 하나 하나를 겸허히 경청하겠다”고 밝혔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당사자인 강씨는 영상이 재공개 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강씨는 26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세바시가 영상을 비공개 처리한 이유가 ‘혐오’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타협하거나 논의할 여지가 없다”며 “다시 공개하는 것 외는 답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씨는 “제 강연 영상이 올라간 이후, 혐오세력 진영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이후 세바시 측에서 상황을 설명하며 영상을 내린다고 양해를 해달라는 내용의 메일을 받았다. 메일을 받고 들어가보니 이미 영상이 비공개처리 되어 있었다. 너무나 일방적이었다”고 말했다.

강씨는 “제가 세바시 측에 원고를 보여주지 않은 것도 아니고 강연 내용에 대한 협의를 안 했던 것도 아니다. 기독교가 성소수자에 대해 예민하다는 걸 알고 있었을텐데…”라며 “당혹감과 더불어 이렇게 내 말과 기록, 성소수자의 기록이 지워진다는 서러움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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