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의 귀순 소식이 국민 최대 관심사가 됐다. 포털, 페이스북 타임라인과 카카오톡 대화방 등 곳곳에서 관련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이 뉴스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일까. ‘이국종 vs 김종대’의 싸움이 중계되고 북한군 병사가 아이돌 노래를 틀어달라고 했다는 등의 뉴스들이 쏟아지고  어김없이 ‘종북몰이’도 등장했다. 본질과는 무관한 사안들로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1. 싸움 붙이고 부추기는 ‘vs 저널리즘’

가장 큰 이슈는 ‘이국종 vs 김종대’다. 논란은 병사의 몸 속 ‘분변’ ‘옥수수’ ‘기생충’까지 언급하며 북한군의 건강 상태를 알려야 했냐는 김종대 정의당 의원의 비판에서 시작됐다. 김종대 의원은 강력한 역풍을 받았다. 환자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의사에게 ‘인격테러’라는 표현을 쓴 게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김종대 의원은 이국종 교수가 아닌 군 당국과 언론 등을 향한 비판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발언 자체의 대상이 모호했고 표현의 강도가 높았기 때문에 오해의 소지는 있었다.

그럼에도 문제제기의 본질은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브리핑까지 하며 ‘옥수수’와 ‘기생충’까지 알려야했는지, 이런 세세한 정보까지 언급하게 한 배경에는 군 당국의 정치적 배경은 없는지 등의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언론의 역할은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맥락을 충실하게 담아 본질을 전달하는 것’이 돼야 한다. 김종대 의원의 발언 속 부적절한 대목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그의 지적 자체가 합당한지 따지고 조명하는 일이 필요했다.

▲ 22일 동아일보 포털 네이버 보도 화면 갈무리.
▲ 22일 동아일보 포털 네이버 보도 화면 갈무리.

그러나 적지 않은 언론은 김종대 의원의 발언이 나오자 ‘이국종 저격’으로 묘사했고 ‘반박’멘트를 담아 싸움을 붙였다. 지난 21일 채널A 종합뉴스 “단독/인격 테러라니 견디기 힘들다” 기사를 시작으로 22일 이국종 교수가 브리핑을 하자 “‘내가 적폐냐’ …인권 논란에 격정 토로”(TV조선 종합뉴스9) 등 대결구도의 기사가 쏟아졌다.

원문을 보면 ‘북한군의 인권’ 문제를 제기한 김종대 의원과 ‘열악한 의료환경’을 강조한 이국종 교수의 발언은 다른 맥락인데도 동일선상에서 뒤엉켰다. 김종대 의원은 여러 차례 이국종 교수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고 해명했고, 22일 JTBC 뉴스룸에서 이국종 교수 역시 브리핑 내용이 김종대 의원에 대한 반박이 아니라고 밝혔다. 오히려 두 인물은 언론의 책임과 중요성을 여러차례 강조하기도 했다.

결국 ‘환자인권’과 ‘의료계의 열악한 환경’ 두가지 이슈의 본질을 조명하기 보다는 유명 의사와 정치인의 ‘싸움’ 그 자체만 부각한 것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환자 인권침해’라는 문제의 본질은 지워버리고, ‘설전’과 ‘항의’ ‘사과’라는 키워드만 남긴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국종 대 김종대’의 갈등 구도에서 다른 유명인사들이 발언을 보탤 때마다 ‘참전’시키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의 기사가 쏟아지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연예인 홍석천씨가 관련 문제에 대해 언급하자 “홍석천, 김종대 의원에 일침 ‘찬물 끼얹는 행동...제가 위급할 땐 이국종 교수님이”기사를 썼다. SBS funE, 매일경제, MBN 등이 홍석천씨의 발언으로 ‘어뷰징 경쟁’을 했다.

2. “왜 북한 비판 안 하냐” 종북몰이

문제를 제기한 김종대 의원을 향한 ‘종북몰이’ 보도도 쏟아졌다. ‘불필요한 자극적인 정보를 알리는 언론’과 ‘이를 통해 북한과 북한군의 낙후성을 강조하는 군 당국의 태도’에 대한 문제제기는 “왜 북한은 비판하지 않고 우리 당국만 문제 삼느냐”는 답으로 돌아왔다.

지난 23일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정의당 의원이 이 교수를 비난한 진짜 이유는 귀순병의 인권이 아니라 그로 인해 북한 실상이 드러난 점이었을 것”이라며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썼다. 중앙일보 역시 “정작 인격 테러를 한 것은 젊은이의 몸에 그렇게 많은 기생충을 자라게 한 북한 아닌가”라며 김종대 의원을 겨냥했다.

24일 중앙일보 강찬호 논설위원은 ‘시시각각’ 칼럼에서 이번 논란이 “(NL식) 물타기의 본질을 확실히 알게 된 사건”이라고 소개했다. 강찬호 논설위원은 김종대 의원의 발언이 “북한에 불리한 뉴스가 터지면 ‘우리가 잘한 건 뭐 있나. 북한만 욕하지 말자’ 식으로 물타기를 하는 전형적 수법”이라고 주장했다.

해당 기사가 NL을 악의적으로 묘사한 것도 문제지만 이를 떠나 김종대 의원은 NL성향이라고 보기 힘들다. 강 논설위원은 “김 의원이 골수 NL은 아니다. 하지만 군축 운동을 하다 보니 NL 비슷한 성향을 갖게 된 듯하다”고 밝혔다. 근거 없는 가정이라는 걸 시인한 셈이다.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가세해 비판을 쏟아내자 22일 언론의 ‘따옴표 저널리즘’도 이어졌다. “김진태, 김종대 의원 저격 ‘깡패 정권엔 말 못하면서...너희들이 인격테러범’”(동아일보)기사를 비롯해 MBN, 헤럴드경제, 이데일리 등이 김진태 의원의 스피커를 자처했다.

3. 가십거리 찾는 언론 ‘현빈 닮은꼴’이 중요한가

‘옥수수’ ‘기생충’같은 선정적인 정보가 브리핑에 담겨있긴 했지만 여러 브리핑 현안 중 해당 대목을 부각해 자극적으로 장사를 한 건 언론이다.

정치시사 블로거 아이템피터는 브리핑과 보도 내용을 비교하며 “이국종 교수는 환자 복부에 있는 분변과 기생충 등의 각종 원인으로 발생할 수 있는 감염을 우려했다”면서 “그러나 언론은 합병증 대신에 기생충만 강조해서 보도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환자를 수술한 의사가 한 말에 중요한 부분을 지우고, 언론이 관음증을 유발하는 식의 보도를 이어가면 본질인 생명은 사라지게 된다”고 꼬집었다. 

▲ 채널A와 TV조선의 시사토크 및 뉴스 프로그램 화면 갈무리.
▲ 채널A와 TV조선의 시사토크 및 뉴스 프로그램 화면 갈무리.

브리핑 때 병사의 인상착의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현빈을 닮았다’는 표현은 스쳐갔지만 종편에서는 집중적으로 분석해야 할 이슈가 됐다. 채널A 정치데스크는 판을 만들어 해당 병사와 현빈의 키와 몸무게 등을 비교했다. “실제 키는 차이가 많이 난다” “두 사람이 비슷한 게 있는게 현빈씨가 영화 공조에서 특수부대 출신 형사로 역할을 했다” 등의 발언이 이어졌다. 22일에는 “베일에 싸인 귀순병사 알고보니 미남?” 자막을 내보내기도 했다.

귀순병사의 ‘한국 아이돌’에 대한 관심이 주목받기도 했다. 23일 브리핑 때 소녀시대 노래를 틀어준 점이 언급되자 소녀시대를 좋아한다는 식의 보도가 쏟아졌다. 동아일보가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 병사가 깨어난 직후 “여기가 남쪽이 맞습네까. 남한 노래가 듣고 싶습네다”라고 말했다는 점을 22일 단독보도하며 관심을 끌기도 했다.

4. 어김없이 등장한 오보

그러나 북한군 병사가 ‘남한 노래를 틀어달라고 했다’는 뉴스는 오보였다. 이국종 교수는 “일부 언론 보도와 같이 환자가 남측 노래를 틀어달라고 한 적은 없고, 의료진이 정서 안정 차원에서 노래를 틀어줬다. (환자 상태 등의) 보안 유지가 안 됐던 것은 나도 혼란스럽다”고 밝혔다.

YTN은 지난 19일 내부 증언을 토대로 북한군 탈출 과정에서 JSA 대대장이 직접 구출작전에 나섰다는 ‘영웅담’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을 제기해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23일 공개된 구출 영상에는 대대장이 있었다.

그러자 YTN은 23일 문제를 시인했다. 그러면서도 YTN은 “대대장이 부사관들과 함께 직접 포복으로 접근해 귀순 병사를 구조했다는 군의 발표 역시 일부 과장된 것으로 확인됐다”며 보도의 문제점을 시인하는 동시에 군 발표가 과장됐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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