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사이언스 소속 PD가 독립PD(VJ업무 담당)에게 ‘갑질’한 사실이 드러나 인사위원회에 회부될 예정이다. VJ 몫으로 나온 출장비 112만원을 PD가 유용한 것과 VJ와의 계약·스텝 관리 등의 내용을 상사에게 부실하게 보고한 것 등의 이유다.

독립PD A씨는 지난달 23일 YTN 사이언스 TV국 소속 K팀장과 특집 프로그램 도급업무 계약을 맺었다. 실제 해당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이는 K팀장의 부하직원인 홍아무개PD로 A씨는 홍PD와 촬영을 나가는 등 함께 업무를 수행했다.

A씨에 따르면 홍PD와 감정 다툼이 있었고, 금요일인 지난 10일 홍PD로부터 ‘주말까지 일을 더 할지, 그만둘지 생각해보고 전화 달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A씨는 일요일인 지난 12일 채용공고 사이트에서 자신의 후임 자리를 찾는 게시글을 발견했다. A씨는 “홍PD 뿐 아니라 계약당사자인 K팀장에게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채용공고를 올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A씨는 “홍PD가 ‘페이는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건 정규직 PD라는 지위를 이용한 갑질”이라고 말했다.

A씨는 계약당사자인 K팀장을 찾아갔고, 이 과정에서 홍PD가 K팀장의 동의 없이 채용공고를 올린 것을 확인했다. 또한 회사에서 A씨, 카메라감독, 작가 등에게 지급하는 ‘당일 출장비’를 홍PD가 제대로 주지 않은 사실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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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사이언스는 외주 인력과 도급계약을 체결하는 데 이번 프로그램처럼 실질적으로는 담당 PD와 함께 업무를 해야 하는 경우 도급금액(A씨가 프로그램을 완성한 뒤 받아야 할 돈) 이외의 출장비를 지급한다. 수도권을 벗어나는 당일 출장에 대해 3만1000원이 나오는데 이 금액이 YTN 사이언스 PD의 통장으로 들어온다. 이 당일 출장비 사용은 PD의 재량이기 때문에 회사에는 영수증 등을 꼼꼼하게 보고할 의무가 없다. A씨는 도급계약 시점에 출장비 관련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A씨가 K팀장을 찾아 출장비 관리에 대해 문제제기 하고 언론사에도 제보했다. 그러자 K팀장은 홍PD에 대해 조사했고, 홍PD가 지난해 3월부터 이번 달인 11월까지 여러 프로그램 제작 과정에서 출장비 112만원을 유용한 사실을 확인했다. 

미디어오늘 확인 결과 A씨 뿐 아니라 해당 기간 동안 일했던 이들에 대해 홍PD가 미지급했던 출장비가 최근 입금됐다. A씨는 “들어온 금액이 내가 받아야 할 몫은 맞는지, 어떻게 계산돼서 온 돈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라고 말했다.

홍PD는 지난 2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출장비 미지급은 저의 과오가 맞다”며 잘못을 시인했다. K팀장은 A씨에게 사과한 뒤 일한 만큼은 일급 형태로 임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K팀장은 이날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출장비 관련) 제도의 허점이 드러난 사건”이라며 “회사에 당일출장비를 PD 재량에 맡겨 온 ‘구습’에 대해 개선해달라고 건의했다”고 말했다. A씨는 “YTN사이언스 PD가 전달하되 철저하게 영수증 처리를 하거나, VJ에게 직접 주는 방식으로 바꾸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K팀장은 “출장비 유용, 스텝 부실관리, 회사 이미지 실추 등을 이유로 홍PD에 대해 징계절차를 밟게 될 것”이라며 “계약당사자이자 홍PD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나 역시 인사위에 회부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적 문제 남아, 도급계약 vs 근로계약

이번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방송사가 외주 인력을 상대로 도급계약을 체결해 온 관행 문제가 남는다. 근로계약의 성격이 있는 외주 인력을 회사가 직접 고용하지 않고, 간접고용(파견)하거나 도급계약을 맺는 건 방송가에서 관행처럼 굳어져있다. 

특히 이번 사건처럼 도급계약을 맺을 경우 퇴직금·4대 보험·문제 발생 시 손해책임 문제 등에서 방송사가 자유로울 수 있다. 홍PD가 A씨를 마음대로 쫓아낼 수 있는 것을 보더라도 엄밀한 의미에서 도급계약으로 볼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도급은 한쪽이 어떤 일을 완성할 것을 약속한 뒤 기한에 맞춰 자유롭게 만들어 완성물을 넘기면 상대방은 도급금액을 주는 계약방식이다. 한경수 방송사 불공정행위 청산과 제도개혁을 위한 특별위원회(방불특위) 미디어연대분과장(독립PD)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도급계약이라면 촬영·제작 과정에선 방송사가 관여하지 않고 마지막 검수 정도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많은 방송사에서 형식상 도급계약을 맺지만, 방송사 측의 지휘감독이 있는 근로계약의 성격의 외주 인력이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K팀장은 “원래 프리랜서에게는 출장비를 안 줘도 되고, 도급금액만 주면 된다”며 “하지만 같이 촬영을 갔는데 PD가 야박하게 ‘너넨 도급금액으로 밥 먹고 숙박비 써’라고 할 수 없고 그러기엔 도급금액도 부족하니 회사가 배려하는 차원에서 출장비를 지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A씨 등이 도급계약 당사자였지만 현실적으로 방송사의 관리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홍PD는 “A씨가 제작 기간 중 자리를 비워야 되는 날이 있어 배려해줬다”고 말했다. K팀장과 홍PD가 도급계약 취지에 맞게 A씨의 편의를 봐준 측면도 있지만 근로계약의 성격도 발견된다. A씨는 “실제 현장에서 홍PD와 내가 PD대 PD로 동등한 입장은 아니었다”며 “조연출로 일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YTN 사이언스 뿐 아니라 다른 방송사에서도 많이 일했는데 외주 인력은 정말 ‘을 중의 을’”이라고 지적했다.

방송통신위원회 등 5개 정부부처는 방송사업자와 외주제작사를 대상으로 지난 8일부터 22일까지 방송 외주제작 실태를 위해 현장점검을 실시했다. 또한 현재 YTN 사장 내정절차가 진행 중이다. 정부와 YTN을 비롯한 방송사들이 외주인력에 대한 불공정 문제를 개선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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