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회사 한샘에서 발생한 일련의 성폭력은 사내 성폭력 해결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피해자가 ‘몰카’를 회사에 알린 이후, 이를 도와준 교육담당자는 피해자를 두 차례 성폭행했다. 심지어 해당 성폭행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또 성폭력이 발생했다.

언론은 한샘사건과 뒤이어 폭로된 현대카드 사건 등을 빠르게 기사화했다. 대안을 제시하는 기사도 많다. 하지만 정작 언론사 내부는 어떨까. 한샘사건과 마찬가지로 사내에서 문제제기를 한다 해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시는 그런 일 없도록 하겠다”고 한 다음날도…

A기자는 수습을 뗀 직후부터 직속 선배로부터 상습적인 성폭력에 시달렸다. 성폭력의 수위는 다양했다. 먼저 성적 발언으로 인한 성희롱이다. A기자에 따르면 선배는 1:1 술자리에서 “나는 어떤 체위가 좋다”고 했으며 심지어 “너도 말해보라”고 말했다.

올해 2월에는 강제추행이 발생했다. A기자가 선약이 있다고 수차례 말했음에도 선배는 1:1 술자리를 만들었다. A기자는 “너무 힘들어서 술을 한잔이라도 건너뛰려고 하면 억지로 마시게 했다”고 말했다.

이날 A기자는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모텔 방이었다. A기자는 “옷은 흐트러져 있는 상태였는데 급하게 추슬러서 얼마나 흐트러져있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며 “입에 담기도 싫지만 선배는 아침에 스킨십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선배는 A기자를 찾아와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한 달 동안 ‘그런 일’은 반복됐다. A기자는 “주변에 말하지 않을 애라고 생각해서인지 대놓고 모텔에 가자고 하는 등 수위가 더 심해졌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술 들어가니 예뻐보였다”며 뽀뽀하고 만지고

한 방송사 문화사업국 직원 B씨는 입사 한 달도 되지 않아 직속상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문화사업국 직원은 B씨와 직속상관, 단 둘 뿐이었다. B씨에 따르면 지난 7월 이들은 술자리를 가졌고 이후 노래방으로 향했다.

상관은 노래방에서 B씨 입술에 뽀뽀를 하고 팔뚝을 두 번 쓰다듬었다. B씨는 휴대전화만 챙긴 다음 노래방을 빠져나왔다. 가방을 챙길 시간은 없었다. 다음 날 상관은 “술이 한 두잔 들어가니 여자로서 예뻐 보였다”며 “용서해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쉽게 잊힐 일이 아니었고 용서하기 어려웠다. 직원이 둘 밖에 없었기 때문에 B씨는 매일 가해자와 마주쳐야 했다. B씨는 소화불량 등 위통에 시달렸고 제대로 잠 들지 못했다. 결국 B씨는 지난 8월 정신과를 찾았다.

한 방송사 PD C씨는 수습기간 중 보도국장으로부터 수차례 성희롱 발언을 들었다. 보도국장은 C씨와 여성 아나운서가 있는 자리에서 “독서실에 오래 앉아있는 여자들은 엉덩이가 안 예쁘다” “피아노 치는 여자들은 엉덩이가 크다”고 말한 다음 C씨에게 “조심해야겠지?”라고 말했다.

이에 C씨가 “그만하시라. 발언 조심해달라”고 대응했지만 이후에도 성희롱 발언은 이어졌다. 가령 보도국장은 얼마 뒤 C씨가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성기에 뭐가 났다”고 말해 불쾌감을 줬다. 술자리에서 자리를 지정하거나 음주를 강요하는 일도 잦았다.

“술자리 못가겠다고 하면 협박을 일삼았다”

D기자는 2016년 6월 입사 직후부터 1년 내내 편집국장의 폭행과 성폭력에 시달렸다. D기자에 따르면 편집국장은 술에 취하면 주먹으로 D기자의 팔과 허벅지를 수차례 때렸고 심지어 소주병으로 D기자의 팔을 치기도 했다. 깨물려 멍이 든 적도 있다.

입사 6개월째 되는 시점부터는 성추행이 발생했다. D기자에 따르면 편집국장은 지난해 12월 업무상 술자리에서 폭행과 더불어 “내 셋째 아이를 가져달라”고 말했고 술자리 도중 D기자가 화장실에 다녀온 뒤 의자에 앉으려 하자 D기자의 엉덩이를 만졌다.

음주를 강요하는 일도 잦았다. D기자는 “주량이 약한 편이라 술을 못 마시겠다고 하면 편집국장은 ‘그럼 그만두라’고 말했고 저녁 회식자리에 참석하지 못하겠다고 하면 ‘너 진짜 그럴래? 알아서 해라’ 고 협박해 술자리에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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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표쓰고 다른 언론사로 가버린 가해자

피해자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몇 달에 걸쳐 성폭력이 이어지자 A기자는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상황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구했다. 가해자는 셋이 만난 자리에서 “여러 번 그렇게 한 것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렇게’는 모텔에 가자고 강요한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가해자의 괴롭힘은 끝나지 않았다. 결국 A기자는 사직서를 들고 부장을 찾아갔다.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졌고 가해자는 징계위원회가 열리기 전에 사표를 썼다. 성폭력으로 인한 징계해고가 아니라 ‘권고사직’으로 처리됐다.

초기에 A기자는 이 정도면 외부로 알려지지 않고 나름대로 잘 해결됐다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성폭행 당한 것도 아니지 않냐. 좋게 넘어가자”는 식의 말을 듣긴 했지만, 2차 가해인줄은 몰랐다. 얼마 뒤 가해자가 다른 언론사로 이직했다는 이야기를 듣게됐다.

가해자가 언론계에 발 붙이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몸 곳곳에 두드러기가 났다. 곧 나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두드러기는 4개월 이상 지속됐다.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 갔고 두 차례 응급실을 찾았다. 결국 A기자는 회사를 관뒀다.

가해자가 피해자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일도

소화불량 등에 시달리던 B씨도 회사에 성추행 사실을 알렸다. 직원들이 나서 상관의 공개사과를 추진했다. 지난 8월 상관은 본부장실에서 “이런 일이 있어서 창피하고 부끄럽고 B씨에게 미안하고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사과했다.

사과를 받은 이후에도 B씨의 고통은 계속됐다. 여전히 소화가 되지 않았고 악몽에 시달렸다. B씨는 공개사과 이후에 경찰에 가해자를 고소했다. 그러자 회사는 문화사업국과의 계약을 해지해버렸다. B씨도 자동으로 계약이 해지됐다.

더 황당한 일은 이후에 벌어졌다. 가해자의 잘못을 인정했던 본사 이사장이 이번 달 초에 B씨를 고소한 것이다. 혐의는 명예훼손이다. B씨를 추행했던 상관은 오히려 억울하다며 탄원서를 제출했다. 회사를 관둔 B씨는 의지할 곳도 없는 상황이다.

C씨는 수습기간이 끝나자마자 ‘잘렸다.’ 명목은 수습기간 만료였지만 C씨는 “업무 외적인 부분의 비협조적인 태도 때문에 불이익을 받은 것 같다”고 주장했다. 가령 술자리에서 술을 거부한 것 등이다. 실제 지방노동위원회는 C씨가 ‘부당해고’ 라고 판정했다.

황당한 일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C씨가 부당해고 판정을 받고 회사에 복귀하자 보도국장은 C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C씨가 ‘혐의 없음’을 받자, 그제서야 회사는 보도국장에 대한 징계위를 열었다. 감봉 3개월과 보직 변경 처분이 내려졌다.

하지만 징계성 인사로 보기 어려워 보인다.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가해자는 보도국장에서 특임국장으로 발령났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C씨에게 사과문을 보내기도 했는데 성희롱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인정이나 대책 등은 담기지 않았다.

▲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사진=이치열 기자

함께 폭행 당했던 동료들의 ‘침묵’

D기자는 차곡차곡 증거를 모았다. 편집국장의 폭행이 빈번했던 만큼 목격자도 많았다. D기자는 회사를 관둔 직후, 편집국장을 강제추행, 성희롱, 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근로기준법 제8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어떠한 이유로도 근로자에게 폭행을 행사하지 못한다.

D기자는 고소장이 접수되고 언론에 사건이 보도되면 사건이 해결 될거라고 생각했다. D기자는 “그런 사람이 언론계에 있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언론의 취재가 시작되자마자 동료들부터 등을 돌렸다. “그런 일이 없었다”고 말한 것.

고소를 당한 편집국장은 오히려 “D기자가 술 취하면 더 지저분한 이야기를 많이했다. 불쾌해서 내가 자리를 나와 버렸다”며 D기자를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여전히 발행인 겸 편집국장 직을 유지하고 있다.

가해자는 남고 피해자만 떠나야했다

피해자들이 사건을 해결하려고 했음에도 네 사례 모두 가해자는 남고 피해자만 떠났다. A기자는 아예 언론계를 떠날 생각도 하고 있다. D기자도 “문제를 제기해도 가해자는 여전히 잘 버티고 있다”며 “여성단체쪽에서 일하는 것도 생각중”이라고 말했다.

C씨의 경우 회사에 병가를 신청한 상황이다. 업무에 복귀하게 될 경우 성희롱 발언을 하고 C씨를 고소했던 보도국장과 마주칠 수밖에 없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는 기본인데 방송국에서 이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가해자와 마주쳐야 할 상황이 되면 심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다. 실제 과거 직장 상사의 성폭력에 시달렸던 한 기자는 당시 사건을 공론화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가해자가 찾아와서 해코지 할까봐 무서워서”라고 말했다.

해결 어려운 사내 성폭력, 그래도 일단 회사에는 알려라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2차 피해 없이 사내 성폭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증거확보가 우선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속옷, 정액, DNA, 가해자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피해장소 사진, 주변 사람들의 진술, 블랙박스 등이 증거가 될 수 있다.

류하경 변호사(법률사무소 휴먼)는 “전국 중소도시 이상 거점에 위치한 ‘해바라기 센터’를 찾아서 전문 상담원에게 피해 사실을 진술하고 ‘증거수집키트’를 만들어야한다"며 ”즉시 찾아가야 법적 대응을 위한 증거 수집이 가능하므로 아주 중요한 절차“라고 말했다.

장영석 전국언론노동조합 노무사는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아 진단서를 발급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필요하다면 정신과 치료도 병행해야 한다”며 “당사자간 합의도 할 수 있지만 금액이 부각되면 본질이 희석되는 경우도 있으니 전문가 도움을 구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사건 직후 회사에 통보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류 변호사는 “나중에 회사로부터 ‘왜 그때 말 안 했나. 동의하에 한 관계여서 그때는 말 안 한 것 아니냐’ 는 말을 들을 위험이 있으므로 일단 회사에는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류 변호사는 “하지만 회사는 원래 대부분 성폭력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다”며 “자사의 이미지가 손상되고 사내분위기가 어지러워지기 때문이다. 만족스럽지 못한 내부징계로 종결될 가능성이 높으니 크게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조언했다.

▲ 출판사 샘앤파커스 사옥. 사진=언론노조 이기범 기자
▲ 출판사 샘앤파커스 사옥. 사진=언론노조 이기범 기자

사과문은 최대한 촘촘히 받아야 한다

사내에서 해결되지 않을 경우, 수사기관에 고소를 해야한다. 류 변호사는 “형량이 큰 범죄이므로 초기부터 변호사의 조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가해자와 그 지인들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필요도 있고 추후 민사소송도 제기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언론이나 시민단체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실제 출판사 샘앤파커스 성폭력의 경우 공론화하면 사건을 해결됐다. 장 노무사는 “개인이 인터넷 등에 직접 호소하는 경우 자칫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법적 대응을 하지 않더라도 사과문은 촘촘하게 작성하는 게 좋다. 장 노무사는 사과문에 △가해 사실에 대한 정확한 경위 △당사자의 인정 △형사처벌 의사 △가해자의 향후 조치 △피해 회복에 관한 합의 사항 등이 담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연락을 하거나 찾아가는 경우, 법원을 통해 접근금지 신청을 하거나 경찰을 통해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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